오카다 다케오 대주교 선종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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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다 다케오 대주교 선종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
  • 방진선
  • 승인 2020.12.23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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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다 다케오 대주교 12월 18일 선종
사진출처=kakublog.blogspot.com

존경하는 오카다 다케오 베드로(岡田武夫) 명예 대주교께서 12월 18일 79세로 선종하셨습니다. 놀랍게도 대주교님은 2000년-2017년 동안 사목한 도쿄 대교구 교구장직분에서 은퇴한 뒤에 혼고본당의 협력사제로 올 6월까지 낮은 자리에서 봉사하셨습니다.

작년 9월23일에는 프란치스코 교종의 일본 방문에 맞추어 교황청의 과감한 쇄신을 촉구하는 개인 서한을 발표하면서까지 교회에 순정한 충정을 보여주시고, 블로그•페이스북에 깊이있는 글을 꾸준히 올리시며 하느님 품에 드시기까지 하느님의 백성에 전심전력으로 봉사하신 참 목자였습니다.

● 善終 6일전 블로그•페이스북에 남기신 임종게 같은 말씀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
(2020/12/12 16:01:20/대림제3주일 2020年12月13日)

오늘은 대림제3주일입니다. 대림 셋째 주일은 옛날부터 "기쁨의 주일"이라 부릅니다. 입당송이 오늘 미사의 취지를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주님께서 가까이 오셨습니다"(필리 4,4-5)라는 말씀으로 설명하기 때문입니다. (…) 우리는 현대의 광야인 대도시에서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께 기도 드리는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며 또한 외로운 이, 기댈 데 없는 이, 질병이나 장애로 고통을 겪는 이들과 함께 가는 그리스도인, 위로하고 격려하는 그리스도인, 부활의 희망의 빛을 밝히는 그리스도인으로 걸어 갑시다."

 

● 이날 강론 전문을 번역해 옮깁니다.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

오늘은 대림제3주일입니다.  대림 셋째 주일은 옛날부터 "기쁨의 주일"이라 부릅니다. (미사 봉헌하는 사제는 기쁨을 나타내는 장미빛깔의  장백의을 입을 수 있습니다)

입당송이 오늘 미사의 취지를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주님께서 가까이 오셨습니다"(필리 4,4-5)라는 말씀으로 설명하기 때문입니다

또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같은 취지로 간결하게 설명합니다.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5,16-18)

이 말씀이야말로 궁극의 복음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바오로 사도의 생애는 어려움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이 이런 말씀을 하신다는 건 짜장 놀랍기만 합니다. 정말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나신 바오로 사도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고 내 영혼은 나의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리니" (이사61,10)라고 말씀합니다 

또 화답송은 유명한 <마리아의 노래>(마니피캇)입니다.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루카1,47)

이처럼 오늘 독서의 주제는 <기쁨>입니다.

<기쁨>은 매우 행복하다는 감정, 좋은 것을 만나 아주 만족하고 즐거워하는 라는 느낌이라고들 합니다. 기쁨은 인생에서 맛보는 행복한 감정이지만 happy라는 영어단어가 나타내듯이 우연히 주어지는 덧없는 기쁨이란 뜻도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에서 이따금 기쁨을 체험하지만 대부분 곧 덧없이 사라질 불확실한 기쁨에 지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생에는 슬픔이 더 많은 게 아닐까요.  "항상 기뻐하라."(1테살 5, 16)라고 해도 "농담이 아니라 도저히 그렇게는 안 된다"는 심정이 듭니다.

이 세상은 엄혹하고 인생은 고해와 같습니다. 이 세상은 살아가기 힘든 황야가 아닐까요. 이 세상이 마치 큰 어둠으로 뒤덮여 있는 것처럼 느낄 때가 자주 있습니다.

그래도 예외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늘 기분이 좋고, 명랑하고 즐거운 사람입니다. 정말 부러운 성품이지만,  '천하태평'이라고 야유를 받기도 합니다. 이 낱말에는 인생의 진실은 엄혹한 것이다, 느긋할 수는 없다는 뜻이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말씀의 기쁨은 사람의 자연스러운 기쁨이 아니라 신앙의 기쁨, 엄혹한 현실에서도 주어지는 기쁨입니다.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당신 자신을 드러내신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의 샘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흘러나오는" (<복음의 기쁨>7) 신앙의 기쁨입니다.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면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향해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라고 단말마처럼 외치시며 숨을 거두셨습니다. 불교를 세우신 석가모니 부처님과는 사뭇 다릅니다. 부처님은 태연자약, 열반의 경지에서 입적하셨다고 전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교는 순교자의 종교이며, 순교자들 가운데는 큰 기쁨 속에서 목숨을 바친 분이 적지 않습니다. 주 예수님은 모든 인생의 고뇌를 말하자면 빨아들여 주신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부활이란 연약한 인성(人性)이 영원한 기쁨의 상태로 드높혀지는 겁니다. 주님의 성탄을 준비하는 이 시기에 주님의 부활도 묵상하는 것은 뜻깊은 일입니다.
 
황야에 샘물이 솟는 것처럼 이 세상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샘이 솟고 있습니다.  밤 하늘에 별이 보이듯이 세상의 어둠 속에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빛이 빛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황야의 샘이요 어둠 속에 반짝이는 빛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우리 교회는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 부활의 빛을 보여주며 전하는 증인이며, 사람이 되신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져오신 영원한 생명, 부활의 생명을 증거하기 위해 파견된 겁니다.

우리는 현대의 광야인 대도시에서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께 기도드리는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며,  또한 외로운 이, 기댈 데 없는 이,  질병이나 장애로 고통을 겪는 이들과 함께 가는 그리스도인,  위로하고 격려하는 그리스도인, 부활의 희망의 빛을 밝히는 그리스도인으로 걸어 갑시다.

 

방진선 토마스 모어
남양주 수동성당 신자
Senex et Operarius Studens 窮究하는 늙은 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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