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죽어감에 관한 실질적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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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죽어감에 관한 실질적 안내
  • 조용종
  • 승인 2020.12.06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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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종의 하루 책 한 권 읽고 두 문단 고르기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죽음과 죽어감에 관한 실질적 조언》/《ADVICE FOR FUTURE CORPSES》, 샐리 티스데일Sallie Tisdale 지음/박미경 옮김, 비잉 펴냄.

"죽어가는 사람은 상징적 표현을 즐겨 쓴다. 특히 '여행을 떠난다'는 말을 많이 한다. 흥분하거나 정신이 오락가락할 정도로 혼미할 땐 여권과 가방을 찾거나 얼른 기차를 타러 가야 한다고도 말한다. 이런 표현은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실제로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은 한 번도 안 가본 곳으로 떠나는 여행을 준비하는 방식과 흡사하다.

우리는 일단 여행을 준비할 때 길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고 여행 안내서를 구해 읽어본다. 안내서에 떠나려는 나라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지도가 들어 있다. 나라 전체가 나오는 지도와 우리가 방문할지도 모를 동네의 지도도 있다. 아울러 현지 풍습과 인사법, 도움을 청하는 방법도 나와 있다. 해서는 안 될 말과 피해야 할 행동 등 주의할 점도 자세히 나와 있다.

우리는 안내서를 읽은 다음 언어를 공부한다. 지도를 살펴보고, 필요할지도 모를 용품을 미리 준비한다. 우리가 떠났을 때 나무에 물을 줄 사람도 미리 찾아둔다. 이렇게 준비를 했지만, 낯선 곳에 도착하면 현지어를 몇 마디 할 줄 알더라도 어디가 어딘지 몰라 조금은 두려울 것이다. 우리는 낯선 타인의 친절에 의지하고, 사람 사는 데는 어디나 똑같을 거라는 기대와 이곳 사람들도 우리를 알고 싶어 할 거라는 희망에 의지한다.

우리는 낯선 거리를 걷고 새로운 냄새를 맡으며 한 번도 못 봤던 풍경에 눈길을 보낸다. 그러면서 긴장을 풀고 그곳에 자연스레 녹아든다. 아니면 몸을 돌리고 물러난다. 우리는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기 전에 온갖 상상을 펼친다. 죽음이라는 미지의 세계로 떠나기 전에도 상상의 나래를 펼쳐야 한다. 그 여행이, 그 여정이 어떨 것 같은가? 어떤 옷을 입고 싶은가? 미리 생각하고 가방도 싸야 한다."(30~31 쪽)

"캐롤이 떠나고 몇 달 뒤, 여느 때처럼 봄이 찾아왔다. 봄이 되자 캐롤이 더 생각났다. 오리건주의 봄은 눈길 돌리는 곳마다 숨 막히게 아름답다. 나는 캐롤이 살던 곳에서 멀지 않은 언덕배기에 가서 며칠을 머물렀다. 그런데 잠시 조용히 지내려던 계획과 달리 세상이 나를 끈질기게 불러냈다.

온갖 소리가 나를 깨웠다. 샤워를 하는데 연녹색 개구리가 툭 튀어나왔고, 풀밭 위에선 흰머리독수리가 유유히 날아 다녔다. 상추를 뜯다가 갓 부화한 개미들을 봤다. 눈앞에 보이는 것들이 저마다 소리쳤다. 꽃과 개미, 풀밭과 새와 사람들이 소리쳤다. 나 여기 있어 하고.

집에 돌아왔더니 데이비드가 보낸 편지가 있었다. 캐롤의 무덤에 새가 둥지를 틀어 자그맣고 하얀 알을 네 개나 낳았다는 소식이었다. 둥지는 캐롤의 묘석 바로 옆에 자리 잡았다고 했다. 캐롤의 묘석이 둥지가 되었다.

"캐롤이 무척 좋아했을 텐데."

다음 순간, 캐롤이 진짜로 좋아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우리를 보고 환히 웃으며 이렇게 말하고 있을 것이다.

"나 여기 있어."

캐롤은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지만, 그 대신에 다른 게 찾아왔다. 개미, 개구리, 독수리, 알."(298~299 쪽)

 

 

조용종 프란치스코 바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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