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성찬에 초대받은 이는 복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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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찬에 초대받은 이는 복되도다
  • 서영남
  • 승인 2020.10.26 11: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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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남의 민들레국수집 일기]
사진=서영남
사진=서영남

노숙하는 우리 손님은 언제나 배고픔과 목마름과 추위에 시달립니다. 배고픔과 목마름이 제일 무섭다고 합니다. 사나흘 굶는 것은 보통입니다. 어떤 손님은 아흐레를 굶었다고 합니다. 밥 한 그릇 제대로 먹는 게 참으로 어렵습니다. 쓰레기통을 뒤지기도 합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처음 보는 새로운 음식은 손을 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노숙을 하면서 배탈이 나면 참으로 난감하기 때문입니다.

무료급식을 먹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언제 어디서 무료급식을 먹을 수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 기다리는 순서도 운이 좋아야합니다. 무료급식을 기다리는 줄의 끝에 있다가는 허탕을 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앞에서 음식이 동이 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물로 배를 채울 수밖에 없습니다. 다음 날에는 더 일찍 가서 줄을 서야만 밥 한 그릇 먹을 수 있습니다. 밥을 먹자마자 다음 끼니를 찾아서 서둘러 다른 무료급식소에 가서 줄을 서야만 하루에 두 끼나마 배를 채울 수 있습니다.

운 좋게 무료급식을 먹을 수 있어도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주는 대로 먹어야 합니다. 밥을 조금만 더 달라고 하면 모진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얻어먹는 주제에 주는 대로 먹지, 다른 사람도 먹어야 하는데 혼자만 욕심 많게 먹으려 한다는 등 끝없는 잔소리를 듣습니다. 밥이나 반찬을 조금만 남겨도 모진 소리를 듣습니다. 치아가 부실해서 씹을 수 없는 반찬을 조금 남겨도 혼이 납니다. 민들레국수집에 오신 손님에게 왜 조금만 드시는지 물어보면 음식을 남기면 안 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왜 음식을 남기면 안 되는지 물어보면 혼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민들레국수집을 찾아오는 손님 중에는 배가 고픈 분이 많습니다. 접시에 밥과 반찬을 담는 것을 보면 깜짝 놀랄 때가 많습니다. 그것을 정말 다 드실 수 있는지 물어보면 아침도 못 먹었다고 합니다. 한 번 더 먹어도 되는지 되물어보는 손님도 있습니다. 접시에 산처럼 가득 담아서 세 번이나 먹는 손님도 있습니다. 어느 날은 여섯 번이나 와서 밥 먹는 손님도 있었습니다. 돈 한 푼 없는 어느 손님은 두 시간이나 걸어서 왔습니다. 밥을 먹고 고맙다고 인사하고 갔습니다. 그런데 삼십 분 만에 다시 돌아와서 밥을 또 먹고서야 돌아갔습니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니 이 성찬에 초대받은 이는 복되도다."

어제 저녁도 굶은 사람이, 아침도 못 먹은 사람이 식사에 초대받으면 얼마나 좋아할까 생각해 봅니다.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노숙하는 우리 민들레국수집 손님들은 적어도 하루에 두 끼는 제대로 식사할 수 있어야만 힘든 생활을 버티면서 살아갈 힘을 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식당을 열어서 두세 번이라도 편안하게 식사할 수 있게 자율식당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난 신종 플루나 메르스 때에도 민들레국수집은 식당 문을 닫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노숙하는 우리 손님들이 병에 걸리기 전에 굶어 죽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코로나 19에도 처음에는 문을 닫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손을 깨끗하게 씻고 소독을 철저히 하면서 버텼습니다. 그러다가 식사하던 손님이 기침이라도 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기침을 하는 손님에겐 편의점에서 도시락이라도 사서 드시라고 돈을 드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19가 진정될 기미가 보이질 않습니다. 주변의 눈총도 심했습니다. 지난 2월말에야 도시락으로 대체하기로 하고 문을 닫았습니다.

서둘러 도시락 용기를 주문했습니다. 김밥을 말았습니다. 김밥을 두 개씩 드렸지만 우리 손님들에게는 너무 모자란 것 같았습니다. 밥을 많이 담을 수 있는 5칸 돈까스 용기에 밥을 꼭꼭 눌러서 담았습니다. 반찬도 눌러서 담았습니다. 그래도 모자랄 것 같아서 도시락 김도 넣었습니다. 국도 담았습니다. 컵라면도 넣었습니다. 음료수도 넣고 빵도 넣고 귤도 하나 넣었습니다. 도시락 꾸러미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스크도 넣었습니다.

손님들에게 도시락꾸러미를 나눈 지 어느새 여덟 달입니다. 겨울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그저 따뜻한 밥 한 그릇 손님에게 대접하고 싶습니다.

 

서영남 베드로
민들레국수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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