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대 위에서, 용서하고 또 용서받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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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대 위에서, 용서하고 또 용서받고 싶었다
  • 헨리 나웬
  • 승인 2020.10.20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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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나웬의 [자유의 길] -2
사진출처=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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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날 아침에 많은 검사가 진행된 후 외과의사인 반즈 박사가 말했다. “당신의 비장에서 아직도 출혈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걸 떼어내야겠습니다.” “언제요?” 나는 물었고 그는 말했다, “수술실이 마련되는 대로 곧 하겠습니다.” 조금 후에 프라사드 박사가 나를 보러 왔다. 다시 한번 나는 죽음의 위협을 느꼈다. 프라사드 박사는 매우 솔직했으며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나에게 말해 주었다.

나는 죽을 가능성이 꽤 높다고 느꼈으므로 나 자신과 친구들을 준비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안의 깊은 어느 곳에서 나의 삶이 참으로 위험에 처해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그래서 전에 결코 들어가 본 적이 없는 곳으로, 바로 죽음의 문턱 속에서 나 자신을 보아야 했다. 나는 그곳을 알고 싶어했으며 그 주변을 걸어보고 지금의 삶 너머의 삶에 대해서 나 자신을 준비시키고 싶었다.

이 두렵게 보이는 곳으로 의식적으로 나 자신을 들어가게 하는 것, 새롭게 존재하는 것이 어떤 것인가 알아보기 위하여 앞을 내다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는 나에게 익숙한 세계, 나의 역사, 나의 친구들, 나의 계획들을 지나가게 하려고 노력했다. 뒤를 돌아다보지 않고 앞을 보려고 노력했다. 나에게 열릴지도 모르는 그 문을, 지금까지 보아온 것 너머의 무엇인가를 나에게 보여줄지도 모르는 그 문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그때 내가 경험했던 것은 전에 결코 체험하지 못했던 어떤 것이었다. 즉 그것은 순수하고도 무조건적인 사랑이었다. 더군다나 더 좋은 것은 내가 체험한 것이 철저하게 인격적인(개인적인) 현존이며, 그 현존은 나의 모든 두려움을 밀어내고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오너라,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너를 사랑한다.” 매우 온화하고 판단하지 않는 현존이며, 그저 나에게 믿고, 완전히 믿기를 요청하는 현존이었다. 그것은 내가 따스한 빛이나 무지개, 혹은 열린 문을 본 것이 아니라, 인간적이지만 거룩한 현존을 내가 느낀 것이었으며, 이 현존은 더 가까이 오고 모든 두려움들을 놔두라는 초대를 나에게 하고 있었다.

나의 전 삶은 부모들, 친구들, 그리고 선생들을 통해서 알게 된 예수를 따르기 위하여 무척이나 애썼던 삶이었다. 나는 수많은 시간을 성서를 공부하며 보냈고, 강의와 설교를 들었으며, 영적 독서를 했다. 예수님은 나에게 매우 가까이 계셨으나 동시에 매우 멀리 계셨다; 친구였지만 동시에 낯선 존재였다; 희망의 원천이었으나 또한 두려움, 죄책감, 수치의 원천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내가 죽음의 문턱에서 걷고 있을 때에 모든 모호함과 모든 불확실함은 사라졌다. 나의 삶의 주님, 그분이 그곳에 계셨고 말씀하시고 계셨다, “나에게 오너라, 오너라.”

죽음은 나를 그렇게나 친밀하게 감싸주고 있는 생명과 사랑 속에서 그 힘을 잃고 움츠러들었다. 마치도 나에게 길을 터 주기 위하여 파도가 뒤로 물러서고 있는 바다를 걸어가고 있는 것과 같았다. 다른 편의 해안을 향해 가면서 나는 안전하게 옮겨지고 있었다. 모든 질투와 회한, 그리고 분노들이 부드럽게 사라지고 나에게는 사랑과 생명이 지금껏 걱정해왔던 그 어떤 힘들보다 더 크고 더 깊게 보여졌다.

한가지 느낌이 매우 강하게 일어났다 - 집에 돌아간다는 느낌이. 예수님은 당신의 집을 나에게 열어주시며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여기는 바로 네가 속한 곳이다.” 당신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던 그 말들-“나의 아버지의 집에는 살 곳이 많다... 나는 지금 가서 너희들을 위한 자리를 준비하겠다”(요한 14,2)-이 바로 실제가 되었다. 부활하신 예수님, 지금은 그분의 아버지와 함께 살고 계시는 예수님이 긴 여정 후에 집에서 나를 환영하고 계셨다.

이 체험은 나의 가장 오래되고 깊은 갈망들이 실현된 것이었다. 처음 의식하는 순간부터 나는 예수님과 함께 있고 싶은 갈망이 있었다. 이제 나는 마치 나의 전 삶이 한데 모아져서 사랑 속에 감싸진 것처럼, 그분의 현존을 가장 확실하게 느끼고 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참으로 돌아가는 것이며, 하느님의 움 속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나를 비밀 속에서 지으셨던 하느님, 지구의 심연 속에서 나를 빚으셨던 하느님, 나의 어머니의 움에서 함께 나를 결합시키셨던 하느님이 긴 여정 후에 나를 부르고 계시며, 아이로서 충분히 사랑 받을 만큼 아이가 되었던 나를 다시 받아들이시려고 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오로지 나 자신에 관해서만 이야기하는데, 내가 죽음 앞에서 매우 선명한 비젼을 보았다고 그저 단순히 신뢰할 따름이다.

 

사진출처=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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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집에 돌아오라는 부르심에는 저항이 있었다. 나는 라르슈 공동체 친구들 중의 한 사람인 쑤가 만나러왔을 때 이 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내가 죽는 것을 방해하는 가장 큰 것은 끝나지 않은 일, 내가 과거에 함께 살았거나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과의 사이에 있는 해결되지 않은 갈등이었다. 나 자신에 의해서거나 상대방에 의해 용서가 보류되어 가지게 된 고통이 나의 상처받은 존재에 들러붙어 있었다. 마음의 눈으로 나는 내 안에 분노, 질투 그리고 심지어 증오의 감정까지 일으켰던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은 나에게 이상한 힘을 행사하였다. 그들은 아마도 나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그들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나는 내적인 평화와 기쁨을 상실했다. 그들의 비판, 거부 혹은 개인적인 혐오의 감정들이 아직도 나 자신에 대한 나의 느낌들에 영향을 주었다. 그들을 진심에서 우러나와 참으로 용서하지 못함으로써, 나는 그들이 나로 하여금 낡고 부서진 실존에 계속 얽매이도록 힘을 행사하게 만든 것이다. 또한 나는 나에게 아직도 화가 나있는 사람들, 나에 대해 생각할 때나 말할 때에 큰 적대감을 느끼는 사람들을 알고 있다. 나 자신은 그들에게 내가 무엇을 했는지, 무엇이라고 말했는지 알지 못할지도 모른다. 나는 그들이 누구인지조차 알 수 없다. 그들은 나를 용서하지 않고 계속 나에 대한 그들 자신의 분노 속에 매달려있는지 모른다.

죽음 앞에서 나는 내가 계속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것이 사랑 때문이 아니라 풀어지지 않은 분노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랑, 나로부터 혹은 나를 향하여 흘러오는 진짜 사랑은 나를 죽도록 자유롭게 만든다. 죽음도 그러한 사랑을 막을 수 없다. 반대로 죽음은 그런 사랑을 심화시키고 강화시킨다. 내가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들과 내게 너무나 지극한 사랑을 주었던 사람들은 나의 죽음을 슬퍼할 것이지만, 그들과 나의 결속은 죽음 후 더 강해지고 더 깊어질 것이다. 그들은 나를 기억할 것이고 그들 구성원들 가운데 하나로 나를 생각할 것이므로 그들의 여정에 나의 정신을 함께 가져갈 것이다.

아니다, 진정한 투쟁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는 따위의 일이 아니었다. 참다운 투쟁은 내가 용서하지 못했던 사람들 그리고 나를 용서하지 못했던 사람들을 뒤에 남기고 떠나는 문제이다. 이러한 감정들이 계속 낡은 몸 주위에 맴돌았고 나에게 큰 슬픔을 가져다주었다. 갑자기 나는 나에게 화난 사람들 그리고 내가 화를 낸 사람들을 모두 내 침대 옆에 불러모아 그들을 포옹하고 용서해달라고 청하거나 그들을 용서해 주어야겠다는 큰 갈망을 느꼈다.

그들에 대해 생각하면서 나는 그들이 일련의 의견들, 판단들, 그리고 나를 이 세계에 속박시켰던 단죄 같은 것들을 표현한다고 깨달았다. 그것은 나 자신과 다른 이들에게 어떤 사람들은 믿을 수가 없고 또 다른 이들은 나를 이용하거나 나를 한 쪽으로 밀어붙이려고 하며 온갖 그룹과 온갖 유형의 사람들이 표준에 못미치고 있다는 나의 확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많은 나의 에너지가 다 소모되는 것 같았다. 이처럼 나는 내가 인간행동의 평가자이며 판관으로 운명지어졌다는 착각에 계속 매달려왔던 것이다.

생명이 내 안에서 약해지고 있는 것을 느끼면서 나는 용서하고 용서받으며, 모든 평가들과 의견들을 내어놓고 판단이라는 짐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은 깊은 갈망을 느꼈다. 나는 쑤에게 말했다, “나에게 상처 준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내가 그들을 용서한다고 말해주세요. 그리고 내가 괴롭혔던 모든 사람들에게도 나를 용서해달라고 청해주세요.”

이렇게 말하면서 나는 대위라는 계급의 종군 신부로서 둘렀던 폭이 넓은 가죽벨트를 벗어버리는 느낌이었다. 이 벨트는 내 허리를 조였을 뿐만 아니라 내 가슴과 어깨도 가로질렀다. 벨트는 나에게 특혜와 권력을 주었다. 벨트는 나에게 사람들을 판단하고 그들의 자리에 집어넣으라고 격려했다. 비록 군대에는 짧게 있었지만 내 생각에 결코 이 벨트를 완전히 벗어버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나는 이 벨트에 묶인 채 죽고싶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나는 벨트 없이, 판단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게, 무력하게 죽어야 했다.

이런 시간동안에 나를 가장 걱정하게 했던 것은 나의 죽음이 어떤 이들에게 죄책감, 수치스러움, 혹은 영적으로 공중에 매달려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나는 어떤 사람이 “우리들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하여 기회가 있기를 바랬는데, 내가 진짜로 느끼는 것을 말하고 내 진짜 의도를 표현하기 위하여 기회가 오기를 바랬는데... 나는 원했는데, 이제는 너무 늦었어” 라고 말하거나 생각할까봐 무서웠다. 하지 못한 말들 그리고 억제된 태도를 갖고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나는 안다. 그런 것들은 우리의 어둠을 짙게 만들고 죄책감이라는 짐이 된다.

나는 나의 죽음이 다른 이들에게 좋은 것이나 나쁜 것이 될 수 있음을 알았다. 그것은 죽음 앞에서 내가 취하게 되는 선택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한번 쑤에게 말했다, “내가 죽을 경우, 모든 이들에게 내가 알게된 모든 이들을 얼마나 지극히 사랑하는지, 또한 내가 갈등하며 지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많이 사랑한다고 말해주세요. 그들에게 불안해하거나 죄책감을 느끼지 말고, 나로 하여금 나의 아버지 집에 들어가도록 해주고 그곳에서 그들과 나 사이의 친교가 더욱 더 깊어지고 강해질 것임을 믿으라고 말해주세요. 하느님이 나에게 주신 모든 것에 감사하고 함께 기념하자고 그들에게 말해주세요.”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쑤는 매우 열린 마음으로 내 말을 받아들였고, 나는 쑤의 도움으로 이 말들의 결실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쑤는 나를 아주 부드럽게 바라보면서 모든 것이 좋다고 말했다. 그 순간부터 나는 나 자신을 예수님께 드리고 어미 닭의 날개 밑에서 작은 병아리가 안전하게 있는 것 같은 느낌을 가졌다. 그 안전함의 감각은 고통이 끝나가고 있다는 의식과 관련이 있었다: 내가 받고자 원했던 사랑을 받을 수 없을 때에, 그리고 내가 가장 주고싶은 사랑을 줄 수 없을 때에 일어났던 고통; 거부와 방치의 느낌들 때문에 일어나는 고통들이.

너무나 많이 잃어가고 있었던 피는 오랫동안 나를 괴롭혀왔던 이러한 번민들을 상징하고 있었다. 번민 역시 내 안으로부터 흘러나오고 있고 나는 온 마음을 다해 그토록 원해왔던 사랑을 알게 될 것이었다. 예수님은 그곳에서 그 분 아버지의 사랑을 나에게 주실 것이었다. 그 사랑은 내가 가장 받기를 원했던 사랑이며, 또한 내가 모든 이에게 주고자 원했던 사랑이었다. 예수님 자신도 이러한 번민 속에 사셨다. 그분은 당신이 가장 귀중하게 여기는 것을 줄 수 없고 받을 수 없는 고통을 알고 계셨다. 그러나 그분은 당신을 보내신 아버지께서 절대로 혼자 내버려두지 않으시리라는 것을 믿으면서 그 번민을 이겨내셨다. 그리고 이제 예수님은 그곳에 계셨고, 모든 번민을 넘어 계시면서 나를 “또 다른 나라”로 부르고 계셨다.

두줄떼기 간호사들이 수술실로 나를 옮기고 수술대위에 묶어 놓았을 때 나는 한없는 내적 평화를 느꼈다. 마스크를 쓰고 있는 그들 가운데에서 나는 프라사드 박사를 알아보았다. 그가 있을꺼라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매우 기뻤다. 아는 사람들이 있어서 잘 돌봐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나는 그들이 어떻게 마취시킬 것인지 궁금했다. 나는 물었고, 한 간호사가 주사를 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이 마지막으로 내가 기억한 것이었다.

 

헨리 나웬(Henri Jozef Machiel Nouwen, 1932-1996)은 네덜란드 출신의 사제이며 영성작가. <상처받은 치유자로서의 사목자> <돌아온 아들> 등을 지었고, 마지막 10년동안 라르쉬 새벽공동체에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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