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은 내가 무너진 곳에서 다시 시작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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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은 내가 무너진 곳에서 다시 시작하십니다
  • 서영남
  • 승인 2020.09.20 10: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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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남의 민들레국수집 일기]
사진=서영남
사진=서영남

정든 수도원을 나온 지 어느새 이십여 년이 지났습니다. 나이도 예순 여섯이나 되었으니 늙은이가 되었습니다. 세월은 유수처럼 흘렀습니다. 이십여 년 전인 2000년에 수도원을 나와서 참으로 살 길이 막막했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빈털터리면서도 조그만 셋방 하나 얻어서 출소자 형제들 몇 명에게 밥을 해 주면서 틈틈이 교도소를 찾아가 갇힌 형제들을 만나면서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2003년에는 민들레국수집을 열었습니다.  돈을 마련할 길도 없으면서 하느님의 섭리에 기대어 무작정 시작했습니다. 도로시 데이의 '환대의 집'을 흉내 냈습니다. 정부의 지원이 아닌 개인들의 도움만 받기로 했습니다. 프로그램 공모도 하지 않고, 후원회도 만들지 않았습니다. 생색내는 도움도 거절했습니다. 

배고픈 손님은 점점 많이 찾아오는데 돈은 없고 쌀도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기찻길 옆 공부방에 백만 원만 빌려 달라고 사정했습니다. 그런데 빌려 줄 수 없다고 합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놀랍게도 그냥 준다고 합니다. 그 덕분에 위기를 넘겼습니다.

2005년에 KBS TV <인간극장>에 민들레국수집 이야기가 방영되고부터 점점 찾아오는 손님들이 늘었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은 민들레의 집, 민들레꿈 공부방, 민들레 희망센터, 민들레 진료소, 민들레꿈 어린이밥집, 민들레 책들레(어린이 도서관), 민들레 옷가게, 겨자씨의 집, 어르신을 위한 민들레국수집으로 손님들의 필요에 따라서 조그맣게 나누었습니다.

2013년부터는 필리핀의 가난한 아이들을 도울 방법을 찾다가 필리핀 요셉의원의 고 최영식 신부님 도움으로 마닐라 칼로오칸 교구와 연결이 되었습니다. 겸사겸사 인천교구도 민들레국수집의 활동을 도와주기로 했습니다. 

그러다가 2014년에 인천교구의 박모 신부가 민들레국수집이 교구에 피해를 줄 우려가 있다면서 딴지를 걸기 시작했습니다. 교구와 관련된 건물은 넘기고, 교구 사회복지 가입시설에서 나왔습니다. 필리핀 계획도 인천교구와 무관하게 진행했습니다. 

 

사진=서영남
사진=서영남

2014년 4월에 민들레국수집은 가족에게 맡기고 나이 육십이 된 기념으로 혼자 필리핀으로 들어가서 필리핀 민들레국수집을 '라 로마 가톨릭 공동묘지' 안에서 열었습니다. 이어서 말라본과 나보타스에도 무료급식소를 열어서 가난한 아이들 공부도 거들고 밥도 나누면서 재미있게 지냈습니다. 

그러면서 인천 민들레국수집에서도 어렵게 살아가는 필리핀 여성들을 위한 모임도 시작했습니다. 노숙 손님들을 위한 민들레 희망센터를 다시 마련하고, 민들레 꿈 공부방을 다시 마련하면서 겨우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2016년 사순절에 인천교구의 박모 신부가 터무니없게도 인천주보에 '민들레국수집에 대한 인천교구의 입장'이란 말도 안 되는 글을 올렸지요. 그러면서 아무런 관련도 없는 필리핀 칼로오칸 교구에까지 영향력을 발휘해서 그곳  교구로부터 무상으로 빌려서 운영하던 건물을 돌려주고, 교구와 관계된 나보타스와 말라본에서 무료급식 하던 건물도 사용할 수 없게 되어서 장학금 지원만 남겨 두고 물건들은 가난한 이웃들에게 나눠주고 2017년 초에 인천으로 돌아왔습니다.  

배고픈 아이들이 계속 눈에 어른거렸습니다. 다시 더 가난한 지역인 GMA 카비테와 마닐라의 나보타스 시티의 탱고스 마을에 민들레처럼 다시 필리핀 민들레국수집을 조그맣게 마련했습니다. 산위의 마을 박기호 신부님의 도움과 아우구스티누스 형제님의 도움이 컸습니다. 이제 매일 밥도 나누고,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는 작은 라이브러리도 마련하고 장학금도 나눠주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필리핀 현지 봉사자들이 잘 운영하고 있습니다. 일 년에 네 차례 정도 필리핀으로 가서 장학금을 나누고 그곳의 모자라는 것들을 채워주곤 합니다. 

가난해지기로 작정하면 하느님이 일을 하시기 시작합니다. 하느님은 없는 데서 큰일을 하십니다. 하느님이 하시는 일은 놀랍기만 합니다. 집짓는 사람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기도 합니다.

 

서영남 베드로
민들레국수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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