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다미아노의 클라라 "우리는 어떤 소유권도 포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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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다미아노의 클라라 "우리는 어떤 소유권도 포기한다"
  • 방진선
  • 승인 2020.08.11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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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클라라 선종 767주년

"가난"의 성녀 클라라 St. Clara of Assisi (1194년 7월 16일– 1253년 8월 11일) 善終 (축일) 767주년 

딸 경은 클라라의 주보 성녀 축일 !

● 사부 프란치스코 성인의 정신이 오롯이 담긴 가난의 클라라 수녀회 회칙 !

☞ 교회로부터 승인을 받아야 했던 그 무소유, ‘가난의 특권’ !

"… 클라라는 가난의 특권을 그리스도의 신비 안으로 들어가는 길이라고 여겼다.… 클라라는 그리스도의 가난을 따르겠다는 단호한 일념으로 모든 재물을 받지 않겠다고 교황청에 청했다. 클라라는 산 다미아노에 공동체를 시작한지 겨우 삼년 후인 22살의 나이에 교회 정책의 근본적인 개혁을 요청했던 것이다!"…(월리암 J. 쇼트<산 다미아노의 클라라 "우리는 어떤 소유권도 포기한다">가톨릭일꾼 2017.10.30)

● 교회가 가르치는 <가난의 우선적 선택>이라는 정언명령(定言命令) 

☞ 수백년이 지나도록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난의 가르침"은 추상 명사(名詞)의 메아리로만 울려 퍼지고, 수동(受動)형 동사(動詞)로만 맴돌며 변방으로 나가지 못하는 "가난의 실천"!

● 성녀께서 가르치는 준주성범 

☞ 우리는 사랑하는 것이 되어 가고, 사랑하는 분이 되어 가는 그 모습을 만듭니다. 물건을 사랑하면 물건이 되고 없음를 사랑하면 없음이 됩니다. 모방은 그리스도를 글자로 흉내내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분의 모상이 된다는 뜻입니다. 모상은 변형을 통해 드러납니다. 바로 다른 이를 위한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을 담는 그릇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We become what we love and who we love shapes what we become. If we love things, we become a thing. If we love nothing, we become nothing. Imitation is not a literal mimicking of Christ, rather it means becoming the image of the beloved, an image disclosed through transformation. This means we are to become vessels of God's compassionate love for others.

 

Clare of Assisi Tending to Plants by Eleanor Fortescue Brickdale
Clare of Assisi Tending to Plants by Eleanor Fortescue Brickdale

● 이 극단의 정글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예언적 사상가 고 김종철 선생(1947-2020.6.25)이 줄기차게 외친 <공생공락(共生共樂)의 가난>은 실천 불가능한 이상인가

…그러나, 다시 한번 왜 우리가 ‘선진국’이 되어야 하는가? 선진국이 된다는 게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가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지금 여기’가 아니라, 어떤 다른 ‘높은 곳’으로 가야 한다는 것은 정말 옳은 생각일까?…
…실제로, 따져보면, 오늘날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부르는 사회는 자연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수탈에 근거한 테크놀로지와 시스템에 의하여 유지, 관리되는 사회이다. 따라서 그 사회의 풍요와 안락은 진실로 인간다운 자유와 행복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도 그러한 풍요와 안락의 삶은 인간간의 유대를 상실하고, ‘대지(大地)와의 접촉’이 단절된 깊이 소외된 삶이다. 그런 반면에, 이른바 후진국이라고 하는 사회는 물질적인 자본과 기술의 결여에도 불구하고, 인간다운 삶에 보다 본질적인 의미를 갖는 ‘사회적 자본’―가족, 친구, 이웃, 공동체―을 풍부히 소유하고 있고, 식민지적 착취에 따른 손상과 파괴에도 불구하고, 자연세계와의 교감이 아직도 살아있는 토착적 문화를 유지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오늘날 후진국에서의 대부분의 민중의 삶은 호혜적 관계를 원리로 하는 ‘공생공락의 가난’에 의해서 지탱되고 있는 것이다.…(<공생공락의 가난’을 위하여>, 2007.11.02. 녹색평론 통권 제97호)

● 클라라 성녀님 !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가난의 참 뜻을 새기면서 이 시대의 징표를 지혜롭게 식별하여 늘 기쁘고 활기차게 가정과 일을 가꾸어 가도록 하느님께 빌어 주십시오 !

☞ 40년전 마리아니스트 수도원에서 딸 클라라의 유아 세례식을 주례하신 원 원장신부님 (Fr. Jim Mifsud. S.M.2010년 9월 29일 선종)과 김종철 선생님을 기억하며 영원한 안식을 기도드립니다.

 

방진선 토마스 모어
남양주 수동성당 신자
Senex et Operarius Studens 窮究하는 늙은 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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