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완, 군사쿠데타에 저항한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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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완, 군사쿠데타에 저항한 장군
  • 방진선
  • 승인 2020.07.27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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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완 다미아노 장군 선종 10주기

 

존경하는 참 군인 고 장태완 다미아노 장군님 (1931. 9. 13. ~ 2010. 7. 26.) 善終 10주기 

아침 산책길에 만난 노랑원추리꽃을 영전에 올리며 천상 복락을 하느님께 기도드립니다.

● 장군의 탄원은 과연 실현되었는가 

“우리 내외의 인생은 사랑하는 성호(아들)가 이 세상을 떠났던 1982년 1월 9일로 끝난 것이다. 이제 남은 인생은 더부살이로서 우리 일가 3代(대)를 망친 12·12사건을 저주하면서 불쌍한 외동딸 현리 하나를 위해서 모든 것을 참고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군사반란 주모자는 군형법에 따라 반드시 처형해야 한다”

“군인 본연의 임무를 수행해 군사반란을 진압하던 사람들은 강제로 전역을 당해 비참한 삶을 살고 있고, 반란군에 가담한 군인들은 수경사령관, 보안사령관, 군사령관, 참모총장을 다 해먹었으니 이렇게 불공평한 세상이 어디 있어요?”

“이명박 정부는 강제 예편된 군인들의 공과를 따져 명예회복 작업을 서둘러야 하고, 국방부도 전사자·전상자·강제예편자들을 돌봐야 한다”

“12·12사건의 전말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싶지 않소. 난 오직 묵묵부답으로 답하고 싶을 따름이오. 난 국가와 민족과 역사 앞에 속죄받을 수 없는 죄인이에요. 이유야 어떻든 자결해도 모자라겠지만, 국가가 맡겨준 수도경비사령관과 비상계엄하의 수도계엄사무소장의 책무를 완수하지 못했습니다. 속죄를 비는 마음으로 생을 이어갈 뿐입니다.”(장태완 장군 인터뷰<월간조선>2010년1월호)

● 또 다른 내우외환을 겪고 있는 국가 위기 상황에 다시금 절실한 장군의 호통소리 

☞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 등 신군부 쿠테타, 그날 장태완 당시 수도경비사령관과 이건영 3군 사령관 통화:

… 헌병감이 턱 들어오더니 총장님이 피습당한 것 같다..... 육군총장 공관에서 총소리가 났기 때문에 자기네는 무조건 안 내보낸다 이거죠. … 30단에 유학성 장군이 와 있다… “왜 유 장군님 남의 부대에 와서 왜 이럽니까?” 제가 예감이 이상해서 물으니까 “에이 장 장군 거 알면서 왜 그래 이리와…”, “이리 오기는 어딜 와. 당신 왜 그래요. 왜 남의 (부대에) 한밤중에 와서 무슨 지랄하고 있어. 쏴 죽인다” 이렇게 했더니 황영시 장군한테 전화를 바꿔요. 황영시 장군이 있다가 “장태완이 너 왜 그래. 알 만한 사람이 나하고 다 통할 수 있는 처지인데 왜 그래 이리 와…”, “아니 왜 이라십니까. 왜 그 우리 좋은 총장님을 어쩌자고 납치해 가지고 왜 이라요. 정말 그러면 내 죽여” 했더니 “차규헌이도 와 있고 다 와 있는데 마 이리 와…”, “무슨… 혼자 다 해먹어. 임마 난 죽기로 결심한 놈이야…” 해놓고 바로 출동준비를 갖추고 있는 중인데 말입니다. …보니깐 조그만 이놈들이 장난하는 것 같습니다. … 참모차장하고 모두 저짝에서 전화가 오기를 "어떻게 됐느냐", "어떻게 되긴 나는 딴 것 없다. 쳐들어간다. 30단이고 다 쏴 죽인다" 했더니… 하여튼 3군사령관님하고 상의를 하셔 가지고 나쁜 놈들 썩어빠진 놈들 사단이 들어오는 것 있으면 차단하도록 해주십시오. 서울 내부는 내가 하겠습니다. 이렇게 정병주 장군한테 제가 전화를 걸었습니다. "거 우리가 같이 왔는데 임마들이 장난하는 건데… 당신하고 나하고 꾐에 빠진 것 같은데…." "OK, 장태완이 무슨 소리 하느냐. 이놈의 새끼들 다 죽이자…" 이렇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제 본의를 얘기했습니다. 제가 당장 돌파하겠다고 하니 “상황을 좀 봐 가지고 하라” 하여튼 그건 제가 아까 부대 출동 준비가 덜 돼서 그런데 그건 당신들 명령도 받지 말고 해결된다… 앞으로 저에게 명령이 필요 없습니다. 지가 알아서 할 테니까요. 이놈의 새끼들 다 죽여야 되겠어요.

…그런데 거기에는 제가 자극을 안 하는데요. 거기에 몽땅 모여 있는 것 같은 데 말입니다. 그 새끼들 거기 모여 있으면 뭐합니까. 제가 단장한테 전화를 걸어가지고 이리 오너라 하든지 지시하든지…. 처음에는 단장보고 금마들 당장 쏴 죽이라 했거든요. 그런데 단장이 모두 그놈아들한테 누질려 있는 것 같아요.

…지가 알아서 할 테니까요.… 그까짓 거 충돌이고 뭐고 몇 놈 죽어도…하여튼 내부에선 제가 죽든 살든 할 테니까요. 사령관님은 바깥을 좀 해주십시오.

예, 완전히 장난이라요. 전두환이하고 이놈아들이 모두 ○○해 가지고 장난인 것 같아요.…안에선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요. 사령관님은 바깥에서 잘 해주십시오.

…저는 안에서… 이놈의 새끼들 다 죽이든지 해버릴 테니….
( <12·12 사건 관련 장군들의 육성증언>월간조선1995년 9월호)

 

☞ 1979년 12월 13일 0430분 : 장태완 수경사령관 체포, 서빙고로 연행 !

…그때 우리가 있는 접견실 문이 열리며 하소곤 육본 작전참모부장이 옆구리를 움켜 쥐고 “야! 이놈들이 나를 쏜다” 하면서 피를 흘리며 곧 쓰러질 듯이 들어왔다. 참모들에게 곧 인근 병원으로 모셔가도록 지시하고 그 방으로 들어갔더니, 내가 제일 처음에 총장님 구출 특수 임무를 주어 총장님 공관으로 파견했던 바로 우리 사령부의 헌병 부단장인 신윤희 중령이 장료·사병 10여명과 함께 M16 소총을 장군들에게 겨누고 있는 것이 아닌가? 너무도 기가 막혀 “야! 이 놈들아!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이야? 연행하려면 나를 연행하든지, 쏠 것이지 장군님들께 이런 군기 문란죄가 어디 있어” 하고 호통을 쳤더니, 신중령이 머리를 숙였다.

“사령관님! 죄송합니다.”

“누구 명령이냐? 부단장은 누구 명령을 받게 되어 있나?”

“보안사령관님 명령입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이제부터 제가 사령관님을 모시겠습니다.”

“이놈아! 전두환이한테나 가!”

소리치고 나서 현관 앞으로 내려갔다. 나는 대기하고 있는 경호차에 의해 서빙고라는 곳으로 실려 갔다. 그때가 아마 13일 새벽 4시30분 쯤이었을 것이다. …

"내가 아무리 부덕하고 무능한 지휘관이라 할지라도 … 직속 부하들이 지휘관실에 완전 무장하여 침입, 총격을 가하며 일부 고급 장성들을 희생시키는가 하면, 직속 상관을 체포 연행한다는 것은 군율상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일 뿐 아니라, 자라나는 군 후배들에게 그러한 악습을 남겨주어 어떻게 군을 이끌어 나갈 것인지 옥중에서도 너무나 서글펐다."
(<12·12 당시 수도경비사령관 장태완 장군 육필 수기-진압 실패 10시간-“반역자들을 사살하라”>시사저널2006년5월16일)

☞ 이날까지도 호가호위•호의호식하는 반란의 무리들을 기억합니다.

● 다미아노 장군님 !

온갖 환난에 시달리고 있는 저희들에게 참과 거짓 그리고 정치인과 정상모리배를 식별하는 지혜와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용기를 하느님께 빌어 주소서!

 

방진선 토마스 모어
남양주 수동성당 신자
Senex et Operarius Studens 窮究하는 늙은 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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