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모어, 하느님의 종다운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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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모어, 하느님의 종다운 종
  • 방진선
  • 승인 2020.07.06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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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모어 순교 485주년

공경하올 주보 토마스 모어 성인(St. Thomas More, 1478년 2월 6일 -1535년 7월 6일) 순교 485주년 

1535년의 오늘 오전 9시경 전직 대법관(영의정) 토마스 모어 성인께서 런던 타월 힐에서 참수의 순교를 하셨네!

☞ 나는 하느님께 내 희망을 걸고 내 전부를 그분께 맡기겠다. In omni itaque spe et fiducia me ille totum committam.

● 아비의 해골을 평생 간직한 맏딸 마거릿에게 순교 전날 고행용 셔츠•채찍과 함께 보낸 숯조각 편지 

☞ 내가 착한 마거릿 너를 너무 성가시게 한다만, 그때가 내일을 넘겨 조금이라도 길어진다면 내게는 애석한 일이 될게다. 왜냐하면 이날은 성 토마스의 밤이며 성 베드로 8부 축일의 여덟째 날이니 만큼 내일 하느님께로 가고 싶은 마음 간절한데 이유는 이날이 내게 가장 어울리고 알맞기 때문이란다. [딸다운 사랑과 고귀한 자애 때문에 속세의 예절에 눈 돌릴 여유가 전혀 없었을 때야말로 내마음에 쏙 드는 때였고, 그래서 네가 마지막으로 내게 입맞춤을 해준 그 때가 나에게는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단다. I never liked your manner toward me better than when you kissed me last for I love when daughtly love and dear charity hath no leisure to look to worldly courtesy.]
내 사랑하는 아가야, 잘 있거라. 그리고 나를 위해 기도하거라. 나도 우리가 하늘나라에서 기쁘게 만날 수 있도록 너와 네 친구들 모두를 위해 기도하마. Farewell my dear child and pray for me, and I shall for you and all your friends that we may merrily meet in heaven. (1535년 7월 5일자.성찬성 역<성토마스 모어>)

● 당시 유럽 언론의 보도 

[토마스 모어 경]은 왕의 착한 종이지만 먼저 하느님의 종으로 죽음을 맞이했다. He died the King's good servant but God's first.(파리 뉴스레터.1535년 8월 3일)

● 평생의 동무 에라스무스의 추도사 

☞ 이 험난한 시절에 더 없이 충직한 나의 벗들 가운데 내가 강탈당하지 않은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되었던가요 ! 오래전 캔터베리 대주교 윌리엄 워햄의 죽음이 그러했고, 근자에는 윌리엄 마운트조이와 로체스터의 주교(요한 피셔) 그리고 그 나라 최고 법 집행관이었고 마음이 눈보다도 더 깨끗한, 영국이 이제껏 가져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다시는 갖지 못할, 엄청난 천재 토마스 모어의 죽음이 그러했습니다.
Of how many of my most faithful friends have I not been robbed in these stormy days! Long since by the death of William Warham, Archbishop of Canterbury; recently by that of William Mountjoy, of the Bishop of Rochester and of Thomas More, who was the chief magistrate of his country, whose heart was whiter than snow, a genius such as England never had before, nor ever will have again,.….(에라스무스<코헬렛>서문, 1535년 8월.성찬성 역<성토마스 모어>)

● 20세기 토마스 모어 성인의 숭모자 체스터턴 선생의 성찰 

☞ 복자 토마스 모어가 숨을 거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아니 어쩌면 죽음을 맞이하던 그 위대한 순간 보다도, 더 중요한 때가 바로 지금이다. 하지만 앞으로 백여 년에 걸쳐 차지할 비중에 비하면 그다지 소중한 것도 못 된다. 그는 가장 위대한 영국인으로, 아니면 적어도 영국사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로 여겨질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그는 무엇보다도 우선 역사적으로 실재했으며, 하나의 본보기와 하나의 전환점과 그리고 하나의 궁국적인 운명을 동시에 대변했다. 그 특정한 순간에 이런 특별한 인물이 존재하지 읺았더라면, 역사 전체가 달라졌을 것이다. Blessed Thomas More is more important at this moment than at any moment since his death, even perhaps the great moment of his dying; but he is not quite so important as he will be in about a hundred years' time. He may come to be counted the greatest Englishman, or at least the greatest historical character in English history. For he was above all things historic; he represented at once a type, a turning point and an ultimate destiny. If there had not happened to be that particular man at the particular moment, the whole of history would have been different." (G.K. Chesterton <역사의 전환점A turning point in history>1929년. 성찬성 역<성토마스 모어>)

경애하올 토마스 모어 주보 성인이시여!

삶의 일상에서 사소한 불편(불행)에도 안절부절 갈팡질팡하는 제 영육이 성인의 담대한 용기와 섬세한 휴머니즘 그리고 순정한 유머로 채워지도록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정치인들의 주보이신 성인이시여!

코로나 환난에 더하여 권력의 아귀다툼으로 국정문란을 부채질하는 정치인들이 정의와 평등 그리고 절제의 행복이라는 성인의 유토피아 사상을 새겨 진정한 민주공화국을 이 땅에 이루어가도록 양심과 지혜를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

☞ 당신이 나쁜 아이디어를 뿌리째 뽑지 못하고 오래 지속되어온 악폐를 완전히 치유할 수 없다고 해서 이 나라(공화국•Respublica•Commonwealth)를 저버려서는 안 됩니다. 풍향을 조절할 수 없다고 해서 폭풍 속에서 배를 저버리지 마십시오.(토마스 모어 <유토피아>1편 전경자 역)

 

방진선 토마스 모어
남양주 수동성당 신자
Senex et Operarius Studens 窮究하는 늙은 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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