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 향기
-닐숨 박춘식
밭일을 하며 물을 찾다가
눈에 띄는 오이를 손에 쥐어봅니다
괄호 모양의 최신형 수화기 같아
하느님에게 전화하는데 응답이 없습니다
사각사각 먹고 꼭지를 멀리 던지려는데
하느님 말씀이 그때 들립니다
“꼭지로 이마에 십자를 그은 다음
오이 뿌리 옆에 꾹 눌러, 엄마에게 보내주어라”고 하십니다
이마에 십자(十)를 큼직하게 그리니까
오이 향기가 온몸을 감고 또 감는 듯하여
하늘 한번 바라보고
노란 오이꽃을 뜨겁게 눈 맞춤 합니다
<출처> 닐숨의 미발표 시(2020년 6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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