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Essay] 김진숙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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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Essay] 김진숙의 꿈
  • 장영식
  • 승인 2020.06.22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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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장영식
사진=장영식

‘85호 크레인’으로 상징되는 김진숙은 해고 35년을 맞는 노동자입니다. 김진숙은 한진중공업의 대규모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2011년 1월 6일부터 11월 10일까지 85호 크레인 위에서 309일 동안 고공 농성을 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전 세계의 양심적 지식인들과 노동자들 그리고 시민들이 85호 크레인과 함께 했습니다.

김진숙은 아픕니다. 항암 투병 중입니다. 2년 전입니다. 샤워를 하며 병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때 이미 스스로가 “아, 암이구나”를 느꼈습니다. 그 이전부터 밥맛이 없고, 체중이 빠지는 등 기분이 좋지 않은 나날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몸에 불쾌한 변화가 생기는 나날이었지만, 병원을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의심의 여지없이 “암이구나”란 것을 느꼈을 때, 병원에 가서 조직검사를 받았습니다. 일주일 후에 암 확진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투병의 2년이 지나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항암 투병을 하고 있습니다.

김진숙은 항암 투병 기간 중에 오랜 친구인 영남대의료원 박문진 지도위원의 고공농성을 알리기 위해 부산에서 대구까지 무작정 걸어가기로 결심합니다. 2019년 12월 23일 혼자 걸었던 길이 10명이 되고 100명이 되어 영남의료원에 도착했을 때는 수백 명의 ‘소금꽃나무순례단’이 되었습니다.

영남대의료원 고공 위에서 오랜 친구를 만난 그이는 끝내 오열했습니다. 노동자가 길도 없는 고공을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이 서러웠기 때문입니다. 정권이 바뀌어도 노동자가 처한 현실은 바뀌지 않는 현실이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김진숙을 비롯한 ‘소금꽃나무순례단’의 힘을 받아 박문진 지도위원은 땅을 밟을 수 있었습니다.

최근 병세가 확연한 김진숙 지도위원에게 “내일 당장 회사로 돌아간다면 어떤 심정이겠습니까?”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김진숙은 “현장도 많이 달라졌겠지만, 내 눈 앞의 현장은 변함이 없습니다. 박창수도 있고, 김주익과 곽재규도 있고, 최강서도 있습니다. 강씨 아저씨도 허씨 아저씨도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변함없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라며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사진=장영식
사진=장영식

김진숙은 복직을 하면 “용접을 하고 싶다.”라고 망설임 없이 말합니다. 김진숙은 “끌려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내 발로 걸어 나오고 싶습니다. 작업복을 입고, 내 의지로 내 발로 당당하게 공장 정문을 걸어 나오고 싶습니다. 35년의 꿈입니다.”라고 말합니다.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의 ‘마지막 해고자’인 김진숙에게서 2020년은 정년을 맞는 해입니다. 올해 김진숙의 복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김진숙은 영원히 해고자로 남게 됩니다. 김진숙의 복직 가능성은 아예 사라지고 맙니다. 김진숙의 복직은 한 개인의 복직 문제가 아닙니다. 김진숙의 복직은 잘못된 시대에 대한 보상이고, 잘못된 시대에 대한 복원이며 정의의 승리입니다. 김진숙의 복직은 굴절된 그 시대에 함께 살았던 사람들의 복직이며 승리입니다.

내일이면 공장으로 돌아갈 줄 알았던 그 내일이 35년이 지났습니다. 노동존중 사회를 외쳤던 문재인 정부가 김진숙의 복직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한국의 노동계와 종교계가 김진숙의 복직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한국의 시민사회 단체가 김진숙의 복직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노동이 존중 받는 사회이며, 정의이기 때문입니다. 

 

장영식 라파엘로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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