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 결국 민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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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 결국 민중이었다
  • 유대칠
  • 승인 2020.05.06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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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칠의 뜻으로 읽는 교회사-1

“(기원후 61년 어느 날) 페다니우스(Pedanius) 세쿤두스(Secundus) 수도 경비대장이 자신의 노예에게 살해되었다. 노예에게 자유를 주겠다 약속하였지만, 이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거나 혹은 어린 아이를 성추행한 죄를 인정하지만, 그 아이의 주인이 요구한 것을 거절했기 때문일 것이다.” 관습에 따라 죄인과 같은 집에 사는 모든 노예들은 죽임을 받게 될 것이다. 이에 분노한 군중들이 무고한 노예들의 목숨을 보호하고자 소리를 높였다. 원로원에서 조차 이런 조치가 너무나 가혹하다고 격렬하게 반대하는 이들이 있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원로원 의원들은 이 법을 그대로 두고 싶었다…

사형을 지지하는 이들의 수가 점점 많아졌다. 그러나 사형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성난 군중이 돌멩이와 횃불을 들고 지키고 서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황제는 자신의 칙령으로 군중을 비난하며 무장군인으로 도로변을 따라 길게 늘어서게 한 뒤 사형수를 사형장으로 끌고가게 하였다.”

타키투스의 <연대기> 14, 42-45.

장 레옹 제롬의 '노예시장'
장 레옹 제롬의 '노예시장'

예수 이후, 현실의 공간은 지옥이었다. 남편의 폭력으로 부터 이혼할 수 있는 여인은 돈이 많아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그 폭력이 일상이었다. 남편이 죽으면 다른 길이 없어 창녀가 되었다. 그 비극을 일상으로 여기며 사람들은 살았다. 비도덕적 폭력이 만든 슬픔을 다시 비도덕적 폭력으로 아프게 하며, 비도덕적이라 비난하는 이상한 세상, 그곳은 빛이라곤 하나 없는 지옥이었다. 태어난 아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이를 거부하는 아버지도 있었다. 이때 바로 살해되거나 길거리에 버려져 죽임을 당했다. 살아남는다 해도 버려진 이의 운명은 겨우 노예다. 부모가 버린 존재의 비참한 시작은 노예라는 비찬함 결과로 이어진 셈이다. 그러나 부모는 미안한 마음 하나 없이 살았다. 특히 아버지라는 이름의 권력자는 미안함 모르고 살았다. 그냥 그것이 일상이었다. 

타키투스가 우리에게 전하는 기원후 61년의 사건을 보자. 한 남자가 살해를 당했다. 이 말만 들으면 그가 억울하게 죽은 듯이 느껴지지만 어찌 보면 그는 자신의 악행에 자신이 당한 꼴이다. 그는 자유를 주겠다며 노예에게 희망을 이야기했지만, 결국 그러지 않았다. 희망 고문으로 노예를 힘들게 할 뿐, 그에게 노예는 노예일 뿐이었다. 그에게 조롱 당한 노예가 그를 죽여버렸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그가 남의 집 어린 노예를 성추행하였기 때문이다. 성추행은 하였지만, 어린 노예의 주인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아 죽임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하여간 그는 나쁜 놈이다. 노예를 괴롭히며 그것으로 즐거움을 삼던 사람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성추행을 당하게 하던 그런 사람이다. 그 사람이 죽자, 관습에 따라 죽은 이와 같은 집에 살던 모든 노예도 죽임을 당하게 된다.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죄인의 노예는 자기 죄도 아니지만, 그냥 버려진다. 그들은 죄인의 물건 정도였던 것이다. 

부모에게 버려진 아이가 그 집의 노예라면 그의 삶은 얼마나 비참한가. 부모에게 버려지고, 또 다시 부조리의 세상 속 잔인한 관습에 버려지니 말이다. 이것이 잔인하다고 분노한 이들은 군중들이다. 민중들이다. 그들이 돌멩이를 들고 횃불을 들고, 억울함을 소리쳤다. 가진 자에게 그것은 폭동일 것이다. 변하지 않는 세상을 즐기고 있는 이들에게 그들의 그 치열한 외침은 무식한 혁명꾼들의 헛짓이었을 것이다. 한 마디로 가진 자에게 그들은 문제아일 뿐이었을 것이다. 없어야하는 이들 말이다. 이들 민중의 분노로 죄 없이 죽어야하는 노예들이 지켜지는 듯 했지만, 결국 황제의 보호 속에 가진 자들은 결국 죄 없이 죽어야하는 노예들을 죽였다. 

그리스도교는 사회적 혁명의 중심에서 무기를 들고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 무서운 힘이 있었다. 혁명을 강요하지 않았지만, 그 변하지 않을 세상에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었고, 가난하고 약한 이, 버려진 이들의 그 처절한 절망감에 희망으로 다가섰다. 그것은 바로 하느님 앞에서 모두가 평등하다는 바로 그 생각 때문이다. 너는 나에게 남이 아닌 ‘형제’이고 ‘누이’이다.

하느님은 저 멀리 있는 분이 아닌 ‘아버지’다. 창녀를 향한 예수의 관심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사랑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고정된 사회에 대한 분노로 이어졌다. 암브로시오의 <나봇 이야기> 속 그 처절한 분노를 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노예와 가난한 이 그리고 버려인 여인을 그리스도교는 남으로 남겨두지 않았다. 그들은 그리스도교의 편에선 ‘우리’였던 것이다. 철저하게 그 시대로 부터 남으로 있을 것 같던 그들에게 ‘우리’로 다가 섰기에 기꺼이 순교의 고난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오염되고 더려운 종교는 누군가만을 위한 종교다. 특권을 가진 이들끼리 모여서 그들만의 누림을 찬양하고 즐기는 종교, 가진 자들의 권력에 기생하는 종교, 바로 이러한 종교는 사회적 비극과 악에 동조하며 민중의 그 처절한 아픔에 고개 돌린 종교가 될 수 밖에 없다.

타키투스가 우리에게 전하는 2000년 전의 이 비극이 지금 우리에겐 그저 과거의 일인가? 화려한 교회 치장 속에서 민중의 아픔에 고개 돌리고, 자기 부귀와 자기 만족으로 자위하는 동안, 이 시대 새로운 예수는 그곳이 무너질 것임을 예고하고 실현해 낼 것이다. 종이 위에 쓰인 신학 글귀 싸움에 매몰되어 현실의 비극에서는 고개를 돌리고 있는 동안, 죄 없이 죽어야 하는 노예, 사회적 약자를 위해 분노하고 거리에 나와 황제의 그 힘! 가진 자의 그 힘! 그 힘과 다투고 싸우며 결국 지더라도 ‘뜻’을 이룬 이들은 바로 ‘민중’이었다. 

치열하게 너무나 치열하게 더불어 살아가려는 그 민중이었다. 그렇게 절망의 공간에 희망의 횃불을 들고, 희망의 돌멩이를 들고, 변화를 이끌어가는 그 역사의 주체는 바로 ‘민중’이었다. 

 

유대칠 암브로시오
중세철학과 초기 근대철학을 공부한다.
대구 오캄연구소에서 고전 세미나와 연구, 번역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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