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의 장소는 바로 지금 이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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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의 장소는 바로 지금 이 자리다
  • 로버트 엘스버그
  • 승인 2020.02.12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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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엘스버그의 [우리를 행복으로 이끄는 성인들] -고요히 머무는 것을 배우기(4)

선의 대가인 베트남의 스님 틱낫한은 행복과 현재순간에 현존하는 것 사이의 관계를 주시한다. “현재로 돌아가는 것은 생명과 만나는 일이다. 생명은 오직 현재의 순간에서 발견될 수 있다. 왜냐하면 과거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처됨, 해방, 깨달음, 평화, 기쁨, 그리고 행복은 오직 현재의 순간에서만 발견될 수 있다. 생명과의 해후는 현재의 순간에 일어난다. 우리의 약속의 장소는 바로 지금 이 자리에 있다.”

많은 사람들은 현재의 순간에 대한 불교의 강조가 영원한 생명을 추구하는 그리스도교의 희망과 대조를 이룬다고 생각한다. 프랑스의 실존주의 작가 알베르 까뮈 같은 사람들은 그리스도교가 “내세의 삶”에 대한 선입견으로 현재에 대한 우리의 윤리적 참여 능력을 약화시킨다고 비난하였다. 의심할 바 없이, 거룩함을 추구하면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이 비난을 받아 마땅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위대한 성인들과 영적인 대가들 중에 다른 접근 방식을 취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영원한 삶에 대한 희망을 가졌으나, 현재를 무시하는 것과 달리 매순간에 결정적인 중요성을 느끼며 투신한다.

 

그런 사람들 중에 18세기 프랑스 예수회 회원이었던 쟝-삐에르 드 꼬사드가 있다. 그의 명성은 1751년 그가 죽은 후 100년 만에 발간된 책 <거룩한 섭리에의 의탁>에서 왔다. 로렌조 수사의 회상록 「하느님의 현존에 대한 실천」을 성찰하면서 꼬사드는 매일의 과제와 의무를 수행하는 가운데에서 거룩함에 이르는 길을 요약했다.

꼬사드에 의하면 모든 매순간은 하느님으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진 순간이므로 하느님의 뜻을 알려주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피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고, 사랑과 양보로 우리에게 혐오와 권태를 일으키는 것을 견딜 때” 우리는 거룩함의 길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순간”이란 말은 꼬사드의 저서에서 중심이다. 심지어 “현재 순간의 성사”라고 까지 말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그는 주장한다. 성찬례 안에서 빵의 형상아래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신앙의 눈으로 알아볼 수 있는 것처럼, 충실한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느님의 뜻이 비록 숨겨져 있지만 참으로 현존하고 있음이 분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성찬례는 그냥 평범하고 일상적인 예식에 불과할 것이다.

한편으로 꼬사드의 영성은 노동과 다른 행위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측면에서 그의 영성은 우리를 침잠과 깨어있음으로 초대한다. 꼬사드는 우리가 삶의 매순간을 하느님의 뜻이 그 뒤에서 우리의 식별을 기다리고 있는 어떤 베일이나 그림자로 생각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이러한 의식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우리 실존의 거룩한 심연에 깨어 있는 것이다.

현재의 순간에 하느님이 보내신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너무나 작아서 사람들이 거의 알아보지 못하거나, 추수하지 못하는 겨자씨이다. 찾기엔 너무나 잘 숨겨져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이 보물을 찾는 비결은 무엇인가? 그런 것은 없다. 이 보물은 어느 곳에나 있다. 보물은 언제나, 어느 곳에서나 우리에게 주어지고 있다.

삶은 불가피하게 지루한 상황들을 우리 앞에 펼쳐놓는다. 교통혼잡 때문에 정지되어 있다든가, 줄을 서서 기다린다든가 등등. 그러나 이런 일들이 우리의 영적인 실천을 중단시키거나, 산만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하느님의 뜻은 편안하고 기쁠 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 지루한 순간 속에도 있으며, 우리를 더 큰 인내와 겸손, 연민으로 이끌고 있는지 모른다.

상황과 그 적절한 응답이 어떻든지 간에, 꼬사드는 거룩함의 길이 하느님의 뜻에 대한 주의와 복종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행복에 이르는 길이다. 우리 삶에서 보여지는 모든 혼란과 무질서에도 불구하고 그런 정신으로 살려고 노력할 때에 “우리는 거룩한 지혜의 모든 사랑스러움과 완전함을 보게될 것이다.

신앙은 지상을 낙원으로 바꾼다. 신앙에 의하여 우리의 마음은 천국에 가까이 있다는 즐거움으로 고양된다. 모든 순간은 우리에게 하느님을 드러내준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바로 신앙의 의미라고 꼬사드는 주장한다. 신앙은 “장막을 옆으로 치우고, 우리가 영원한 진리를 볼 수 있게 해준다.” 만일 우리가 그런 빛으로 살지 못한다면 “행복도, 거룩함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아무리 신심행위를 열심히 수행한다고 해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로버트 엘스버그 /1955년 미국 잭슨빌에서 태어났다. 존재의 의미와 참된 삶에 이르는 길을 찾던 그는 하버드 대학교를 다니다 2학년을 마치고 1975년 도로시 데이와 함께 5년 동안 일했다. <가톨릭일꾼> 신문 편집장으로 활동하다 1980년 가톨릭으로 개종했으며, 모교로 돌아가 종교와 문학을 공부한 후 라틴 아메리카에서 변화된 가톨릭교회 모습을 체험했다. 도로시 데이의 작품집을 냈으며 하버드 신학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면서 1학년을 가르쳤다. 1987년 신학박사 과정을 마치고 메리놀 수도회 Orbis 출판사 편집장이 되었다. 지은 책으로 <모든 성인들>과 <모든 여인 가운데 복되도다> 등이 있다. 도로시 데이 시성식 추진위원회와 헨리 나웬 재단 위원이며, 현재 세 자녀와 함께 뉴욕 주 오시닝에 살고 있다.

이 글은 2003년, 미국 메리놀 출판사가 발간한 <The Saints' Guide to Happiness>(Robert Ellsberg)를 <참사람되어> 2005년 3월호에서 편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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