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이 돈을 좀 빌려 달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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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 돈을 좀 빌려 달라고 합니다
  • 서영남
  • 승인 2020.02.04 11: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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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남의 민들레국수집 일기 2020년 2월 3일
사진=서영남
사진=서영남

민들레국수집을 찾아오는 손님들은 돈이 거의 없습니다. 아니 아예 없습니다. 돈이 없으니 민들레국수집이 문을 열지 않는 날에도 오는 이도 있고, 저녁 무렵 문을 닫았을 때 오는 이도 있습니다. 문이 닫혀 있으면 더 보채지도 않습니다. 그냥 굶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오후 다섯 시에 문을 닫고 집으로 가려는데 손님 두 분이 헐레벌떡 뛰어왔습니다. 문을 닫고 가려는 저의 모습을 본 손님이 그 순간 망설임도 없이 발길을 돌립니다. 손님을 급히 뒤쫓아 갔습니다. 다른 곳에 가서 저녁을 먹을 곳이 있는지 물어봤습니다. 이제는 어디를 가도 밥을 먹을 곳이 없다고 합니다. 배고프면 물을 마시면 된다고 합니다. 근처 중국식당으로 함께 갔습니다. 짜장면을 곱빼기로 시켰습니다. 참 맛있게 먹습니다.

우리 손님들이 계란 프라이를 참 좋아합니다. 몇 개를 해 드릴까요? 거의 모든 손님이 한 개를 원합니다. '계란 프라이 하나는 오백 원, 두 개는 공짜'라고 해도 하나만 프라이 해 달라고 합니다. 그러면 오백 원 내라고 합니다. 오백 원 동전 하나 있는 손님들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손님들에게 계란 프라이를 두 개씩 해 드릴 수 있습니다.

혼자 사시는 할머니가 식사하러 왔습니다. 할머니는 매일 폐지를 줍습니다. 전기료와 수도료를 내는 데 보태려고 애를 씁니다. 오늘은 얼마를 벌었는지 물었습니다. 천오백 원을 벌었다고 합니다. 달라고 했습니다. 망설임도 없이 그날 번 천오백 원을 저에게 줍니다. 할머니가 좋아하는 달걀 한 판 사서 드렸습니다.

몇 분의 손님이 돈을 좀 빌려 달라고 합니다. 한 분은 25일에 기초연금이 나오면 갚겠다고 5만원만 빌려달라고 합니다. 병원에 가야 한답니다. 드렸습니다. 또 한 분은 20일에 기초생활수급비를 받으면 갚겠다고 2만원만 빌려달라고 합니다. 선불폰 충전도 해야 하고 서울에도 한 번 다녀와야 한답니다. 드렸습니다.

빌려주면서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만약 약속한 날짜에 갚지 못하더라도 반드시 밥은 먹으러 와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옆에 있던 대용 씨에게 얼마를 빌려 드릴까요? 했더니 빌려도 갚을 길이 없다고 거절합니다. 기초연금과 기초생활수급비를 받아서 겨우겨우 질긴 목숨을 이어가는 이들에게 5만원과 2만원은 아주 큰돈입니다. 만약에 갚는다고 해도 다음 달 살아갈 일이 까마득합니다. 아무래도 빚을 탕감해 드려야겠습니다.

민들레희망센터에서는 손님들이 책을 읽고 간단하게 독후감을 발표하면 삼천 원을 현금으로 드립니다. 독후감을 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입을 열고 말을 하는 것을 연습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공책에 책의 내용을 베껴서 그대로 발표해도 됩니다.

아주 오래 전에 민들레국수집에서 자유로운 돈통을 운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는 누구든 3천원 미만을 필요하면 가져가고 갚을 수 있을 때 다시 넣으면 된다고 했습니다. 꽤나 오래 운영했었는데 갑자기 새로운 손님들이 찾아오면서 텅텅 비어버렸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우리 손님들이 자유롭게 적은 돈이나마 가져가고 다시 갚을 수 있는 돈통을 다시 만들고 싶습니다.

이반 일리치는 <성장을 멈춰라>는 책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을 부자로 만드는 것. 돈, 권력, 집이 아니다.
그 사람의 마음이다.
그 사람이 돈과 재산을 얼마나 가졌는가가 아니라,
그가 어떤 마음을 지니고 그 마음을 어떻게 쓰고 있는가에 따라 부자가 될 수도 있고
가난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결코 물질적인 것이 본질적인 부가 될 수 없다.
우주의 선물인 물질은 넉넉한 마음에 따른다.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먼저 넉넉한 마음의 그릇부터 준비해야 한다.
마음의 그릇이란 무엇인가?
덕이다, 덕은 나누는 일이다.
세상에는 탐욕스런 부자가 있다.
탐욕스런 부자가 있기 때문에 거기 도둑이 모여드는 것이다."

 

서영남 베드로
민들레국수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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