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심: 사회질서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성인들은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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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심: 사회질서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성인들은 어디에 있는가?
  • 로버트 엘스버그
  • 승인 2019.12.30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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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엘스버그의 [우리를 행복으로 이끄는 성인들] -노동하는 것을 배우기(4)

도로시 데이는 1897년 뉴욕의 부르클린에서 한 자유 스포츠 기고가의 딸로 태어났다. 집에선 하느님이라는 이름이 거의 언급되지 않았으나, 어린 나이 때부터 그는 성인들의 삶에 매료되었다. 그는 병자들, 절름거리는 사람들, 나병환자들을 돌보는 성인들의 이야기에 감동을 받았다고 회상한다. “그러나 또 다른 질문이 내 마음 속에 있었다, ‘왜 악을 처음부터 피하지 않고, 그것을 치료하는 일에만 매달려 있는가?’ 사회질서의 변화를 위해 일하는 성인들은 어디에 있는가? 노예들을 보살피기만 하지말고, 노예제도를 없애기 위해 노력하는 성인들은?”

이런 질문들에 대해 고심한 끝에 그는 종교에 문을 닫고, 당대의 진보적인 정치에 희망을 두게 된다. 그의 친구들은 공산주의자들, 사회주의자들, 그리고 무정부주의자들로서 그들과 함께 다양한 좌익간행물이나, 반제국주의 연맹 같은 조직에서 일하기도 한다.

이같은 “역사”에 대한 흥분된 참여에도 불구하고, 도로시의 초년 삶은 외로움과 도덕적, 영적 혼동으로 가득했다. 그 자신의 말에 따르면, 그를 동료들로부터 구분짓게 하는 초월에 대한 염원을 항상 가졌다고 한다. 어떤 친구는 후에 그가 좋은 공산주의자가 되기엔 너무 “종교적인”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도로시 데이도 나중에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에 나오는 인물의 말을 빌려 “살아오는 동안 내내 나는 하느님에게 사로 잡혀 왔다”고 말했다.

초월적인 것에 대한 이 염원이 결국 그를 가톨릭 교회로 가게 했다. 슬픔과 실망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 그의 회심은 슬픔 때문이 아니라, 임신과 딸의 출산이라는 “자연적인 행복”의 경험으로 찾아왔다. 그는 즐거움과 감사의 충동을 너무나 크게 느꼈기 때문에 하느님께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고 회상하였다.

그러나 그의 회심은 친구들과 관습에 의한 남편(데이는 그를 이렇게 불렀다)의 이해를 엄청나게 뛰어 넘은 비약이었다. 불가지론자이며 무정부주의자였던 남편은 가톨릭주의를 경멸했고, 그가 종교를 받아들인다면 그들의 관계가 끝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도로시는 “하느님인가 사랑인가를 택해야 하는 단 하나의 질문에 봉착했었다”고 쓰고 있다.

이런 고뇌에 더하여, 가톨릭이 되려는 그의 결정은 노동계층을 배신하는 것같이 비쳐졌다. 한편으로 그는 가톨릭교회가 가난한 이들, 서민대중, 이민자들의 교회라고 생각했다. 다른 한편, 그의 진보적인 친구들과 도로시 데이 자신에게도 교회는 더 자주 부자들의 교회, 기존 특권그룹의 옹호자로 보였다.

 

그는 그의 초기신앙과 사회정의에 대한 투신을 어떻게 화해시켜야 하는지 몰라서 상심하고 있었다. 1927년 세례 후, 그는 5년의 외로운 시간을 방황 속에서 자신과 딸, 타말의 생계를 불확실한 자유기고가의 수입으로 지탱하면서 보낸다. 그러면서 “육체와 영혼을 이 세계와 다음세계에서 화해시킬 수 있는” 삶의 길을 찾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응답은 하늘에서 들려온 것이 아니라, 강한 불어의 억양으로 말하는 한 덥수룩한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1932년 어느 날 데이가 그를 만났을 때, 그의 주머니는 팜플랫과 자료 따위로 불룩해 있었다. 때는 경제공황시기였고, 도로시 데이는 워싱턴에서 열린 공산주의자들이 조직한 실업자행진을 취재하고 막 돌아온 뒤였다. 여행은 그의 갈망에 위기를 더욱 부풀렸다. 워싱턴의 성모무염시태 성당에 가서 “내가 가진 모든 탈렌트를 동료노동자들과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사용할 수 있는 어떤 길이 열리기를” 기도했다.

그리고 나서 뉴욕에 돌아가자, 곧 피터 모린이 집 문 앞에 도착한 것이다. 그는 프랑스의 농가출신으로 55세였다. 그는 지난 20년 동안 세계를 돌아다녔고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복음을 행동에 옮기는 고유한 비전을 구상하였다. 그는 도로시 데이의 이름을 들어 알고 있었고, 서로 만나기도 전에 이미 도로시가 그의 비전을 실제화 시킬 인물이라고 결정하고 있었다.

 

모린은 도로시 데이와 함께 복음서의 철저한 사회적 메시지를 수행하는 운동을 구상했다. 그들은 단순히 불의를 고발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회질서, “노동의 철학”과 가난한 이들안의 그리스도를 알아보는 것에 기초한 새 질서를 선포하는 것이라고 피터 모린은 말했다. 그들은 교회나 정부가 그러한 프로그램을 시행하도록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미래에 대한 그들의 비전에 따라 오늘을 살기 시작할 것이며, “사람들이 선해지기가 더 수월한” 사회를 창조하는 일을 할 것이다.

얼마 지난 후에야 도로시 데이는 이 이상한 사람이 자신의 기도에 대한 응답임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 만남과 이어 운동을 통하여 그는 나머지 생애 내내 거의 오십 년 동안이나 자신이 관여하게 된 일이라고 깨달았다. <가톨릭일꾼> 신문은 1933년 5월 1일 그 첫 호가 유니온광장에서 배부되었다(노동자 성요셉 축일에). 신문은 미국 전역에 있는 “환대의 집”에 중심을 두고 있는 운동의 도구가 되었다. 가톨릭 일꾼공동체들 안에서 전통적인 “애덕의 활동”(굶주린 이를 먹이고, 벌거벗은 이를 입히며, 집 없는 이에게 잘 곳을 주는)은 평화와 사회정의 활동과 결합되고 있다.

그래서 도로시 데이는 어린 시절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얻었다. 사회질서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성인들은 어디에 있는가? 그 질문은 도로시 데이 자신의 삶이라는 대답을 요구했다. 가난한 이들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섬기며, 불의와 싸우고 평화적인 대안을 창조하기 위한 작은 방법들을 시도하면서 그는 자신의 성소의 의미를 발견했다. 새로운 거룩함의 모형을 개발함으로써 데이는 행복에 이르는 자신의 길을 깨달았다.

 

로버트 엘스버그 /1955년 미국 잭슨빌에서 태어났다. 존재의 의미와 참된 삶에 이르는 길을 찾던 그는 하버드 대학교를 다니다 2학년을 마치고 1975년 도로시 데이와 함께 5년 동안 일했다. <가톨릭일꾼> 신문 편집장으로 활동하다 1980년 가톨릭으로 개종했으며, 모교로 돌아가 종교와 문학을 공부한 후 라틴 아메리카에서 변화된 가톨릭교회 모습을 체험했다. 도로시 데이의 작품집을 냈으며 하버드 신학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면서 1학년을 가르쳤다. 1987년 신학박사 과정을 마치고 메리놀 수도회 Orbis 출판사 편집장이 되었다. 지은 책으로 <모든 성인들>과 <모든 여인 가운데 복되도다> 등이 있다. 도로시 데이 시성식 추진위원회와 헨리 나웬 재단 위원이며, 현재 세 자녀와 함께 뉴욕 주 오시닝에 살고 있다.

이 글은 2003년, 미국 메리놀 출판사가 발간한 <The Saints' Guide to Happiness>(Robert Ellsberg)를 <참사람되어> 2005년 3월호에서 편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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