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이 기도가 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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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이 기도가 될 때
  • 로버트 엘스버그
  • 승인 2019.12.17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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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엘스버그의 [우리를 행복으로 이끄는 성인들] -노동하는 것을 배우기(2)

노동의 필요를 발견한 것은 성인들이 아니었다. 창세기를 보면 마침내 하느님께서 불순종한 아담과 대면하신다.“땅으로 돌아갈 때까지 땀흘려 일하여 빵을 먹게될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노동을 저주요, 우리의 타락한 본성의 증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성인들에게 도전은 필수품과 행복을 화해시키고, 노동과 매일의 과제가 축복 받으며 거룩한 삶을 향해 가는 길을 발견해야 하는 것이었다.

 

사진출처=monasticway.tumblr.com
사진출처=monasticway.tumblr.com

노동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하라

14세기 독일의 신비가인 마이스터 에크하르트가 다음과 같이 말한 것처럼, “올바르기 위하여 사람은 다음 두 가지 중 하나를 해야 한다. 하나는 노동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하기를 배워야 하고, 그 곳에서 하느님을 꽉 붙잡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노동을 다 포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이며 다양한 행위 없이 살 수 없기 때문에 결국 하는 모든 일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는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붙잡는 것”, 노동과 기도 사이의 조화를 찾는 것은 베네딕도 성인의 규칙으로 돌아가는 수도생활의 기본 특색이다. 서구 수도 전통의 창설자인 베네딕도 성인은 550년에 죽은 이태리인 수도원장으로서 매일의 생활이 기도, 공부, 그리고 노동으로 조심스럽게 나누어져야 한다고 규칙에서 말하고 있다. 이 세가지 중에 어떤 것도 나머지 것들보다 더 중요하거나 고귀하게 여겨져서는 안 된다. 베네딕도에 의하면 수도자란 들에서 일할 때에도 초조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우리의 교부들과 사도들이 그랬던 것처럼, 손노동으로 살아야 참다운 수도자이기 때문이다.”

베네딕도의 사상은 단순한 표어, “기도와 노동”으로 요약될 수 있다. 두 행위가 함께 온전하고도 거룩한 삶의 보완적인 차원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는 표어이다. 그러나 베네딕도는 노동과 기도의 조화를 표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수도생활은 기도라는 거룩한 영역과 “세상적인” 노동행위를 인위적으로 갈라놓지 않는 상태를 목표로 삼는다. 기도는 그 자체가 하나의 노동이며 ­하느님의 일­이므로, 이상적으로 말하자면 손노동은 하나의 기도형태가 되어야 한다.

 

사진출처=cristianocattolico1.tumblr.com
사진출처=cristianocattolico1.tumblr.com

하느님 현존 안에 머물며 노동하기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어떻게 노동이 기도가 될 수 있는가? 무릎을 꿇고, 눈을 감고, 손은 얌전하게 포개는 것이 기도라고 생각하는 한 기도와 노동의 연결은 분명하게 잡히지 않는다. 그러나 기도의 기본적인 의미는 하느님 앞에 현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노동이 기도와 같은 특징을 가지게 되려면, 노동의 영(정신)이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을 하면서 기도할 때처럼 우리의 온 마음을 집중시키고 하느님의 현존 앞에 머무는 그런 영이 있어야 한다.

설거지나 정원의 풀에 물을 주는 등 별로 정신적으로 집중할 필요가 없는 단순한 노동을 할 때에 이런 영을 가지는 것은 더 쉬워진다. 그러나 컴퓨터를 치거나 무거운 기계를 움직이면서 어떻게 하느님의 현존에 대한 의식을 유지할 수 있을까? 수도회의 관점에 의하면 모든 일은 나름대로의 선한 의도를 갖고 있다. 노동할 때 그 선에 대한 적절한 주의와 존중심을 갖고 한다면, 우리의 노동은 기도로 가득 차고 그래서 하느님이 그 안에 계시다고 말할 수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부주의하게 일의 선에 대한 존중 없이 하는 일은 기도의 성격을 잃게 된다.

이러한 주제는 그리스도교 영성의 고전서 가운데 하나인 <하느님의 현존에 대한 연습>에서 정교하게 표현되고 있다. 이 책은 17세기 프랑스 가르멜 평신도 형제회 회원이었던 사람과의 대화, 서신에서 발췌하여 만든 책이다. 이 사람은 부활의 로렌조형제로 알려져 있는데, 중년의 나이에 오랫동안 군복무를 한 뒤 파리의 한 수도원에 입회하였다고 한다. 농촌출신이고, 정규교육을 받지 않았으므로 그는 부엌일을 하게 된다. 80세에 죽을 때까지 부엌에서 40년 동안을 냄비와 후라이팬 속에서 살았다. 살아 생전에 위대한 일을 한 적이 없었다. 사후에 출판된 책에 의하여 그는 당대 가장 위대한 영적 대가들 중의 하나로 인정된다.

그의 영성의 본질은 책의 제목에서 명료하게 찾아 볼 수 있다. 그의 영성생활의 방법은 단순하다. 항상 하느님의 현존에 대한 의식을 고양하는 것이다. 그는 언제나 깨어 있음으로써 우리의 모든 행위가 거룩하게 된다고 믿었다. 즉 끊임없는 기도의 상태나 “하느님과의 대화” 상태에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기본적으로 하느님이 지금, 이곳에 하고 있는 일 속에 계시다고 확신하는 행위이다. 그는 이렇게 썼다.

“나에게 일하는 시간은 기도하는 시간과 다를 바 없다. 그리고 부엌의 딸그락 딸그락 하는 소리 속에서, 때때로 이것저것을 청하는 사람들 속에서도 나는 마치 성체조배 때처럼 깊은 고요 속에서 하느님을 모신다.”

“우리의 성화는 우리의 일을 바꾸는데 있지 않고, 지금하고 있는 평범한 일들을 하느님을 위해 하는데 있다. 하느님은 일의 위대함을 보시지 않고, 그것을 얼마나 사랑을 갖고 하는가를 보시기 때문이다”

 

사진출처=orthodoxwayoflife.tumblr.com
사진출처=orthodoxwayoflife.tumblr.com

그 사람이 그 일을 거룩하게 만든다

로렌조 수사의 가르침은 소위 우리가 생각하는 “거룩한 일”, 수도자들에 의해 행해지는 일과 “세상 속의” 사람들이 하는 현세적인 일 사이의 간격에 다리를 놓아준다. 실상 성인들도 “보통의 일”을 하고 산 사람들이다. 그들 중에는 교사, 간호원, 로렌조 수사 같은 부엌데기도 있었다. 비록 대부분의 시성된 성인들이 성직자이고 수도자였어도 또 다른 많은 성인들이 실제로는 온갖 종류의 일을 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는 일의 종류가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자신이 그 일을 거룩하게 만드는 것” 이라는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주장은 옳다.

결국 “거룩한 일”이란 없는 법이다. 그러나 또한 동시에 해를 끼치거나 정직하지 않은 일이 아닌 한 “영광스럽게” 변화될 수 없는 일이란 없다. 참으로 어떤 형태의 노동이건 간에 섬김이나 자선의 기회로, 기도의 때로, 혹은 아름답고 진실하며 생명을 주는 기회로 받아들이며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일들은 자주 주의를 끌지 못하거나 별로 특징이 없다. 그러나 해야 할 일을 풍요로운 은총과 사랑으로 하기 때문에 일터를 거룩한 자리로 변화시키는 사람들을 우리는 만날 수 있다. 그들은 매일 만나는 성인들이다.

내 일을 통해 하느님께 영광을..

노동과 거룩함에 관하여 19세기의 예수회 회원이며 시인인 제라드 맨리 홉킨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람이 하느님의 은총 안에 있고, 대죄로부터 자유로우면 모든 하는 일이 그 안에 죄가 없는 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린다. 기도만이 아니라, 노동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린다...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당신이 해야 할 일을 한다면, 모든 일은 다 하느님께 영광을 드린다... 당신이 모든 것은 하느님께 영광을 드려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그 분은 모든 것을 통하여 위대한 존재가 되신다.”

전설에 의하면 크리스토퍼 성인은 강을 건너는 여행자들을 등에 업고 날라다 주는 일로 생계를 꾸려 가는 거인이었다고 한다. 어느날 밤 그가 한 아이를 업고 있었는데 갈수록 무거워졌고,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당연하지요!” 하고 아이가 말했다. “당신은 온 세계를 업고 있었어요. 나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당신이 찾고 있는 왕이지요!” 일상의 일이 지루하고 부담스러워도, 우리가 하는 일이 우리가 찾고 있는 왕을 섬기는 일이라고 믿는다면, 얼마나 다르게 평범한 과제에 접근 할 수 있겠는가!

많은 성인들은 거룩함을 추구하면서 어떤 일들은 확실히 포기했다. 그것이 잘못된 일이었기 때문이다(로마군대에 복무했던 투르의 마르띠노 성인 등). 또한 도덕적인 양보를 요구하는 일(영국재상이었던 토마스 모어의 경우)이나, 더 넓은 자리에서 일하라는 부르심을 받았을 때(베드로 사도, “나를 따르라, 너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에 하던 일을 기꺼이 포기했다.

그러나 성인들이 표현했던 것처럼, 거룩함으로의 초대는 보통 하는 일을 단념하고 어떤 특별한 일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일 안에서, 삶의 조건 안에서 거룩함을 발견하라는 초대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을 찬미하고 우리의 소명, 행복에 이르는 참다운 우리의 길을 알아 볼 수 있을 것이다.

 

로버트 엘스버그 /1955년 미국 잭슨빌에서 태어났다. 존재의 의미와 참된 삶에 이르는 길을 찾던 그는 하버드 대학교를 다니다 2학년을 마치고 1975년 도로시 데이와 함께 5년 동안 일했다. <가톨릭일꾼> 신문 편집장으로 활동하다 1980년 가톨릭으로 개종했으며, 모교로 돌아가 종교와 문학을 공부한 후 라틴 아메리카에서 변화된 가톨릭교회 모습을 체험했다. 도로시 데이의 작품집을 냈으며 하버드 신학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면서 1학년을 가르쳤다. 1987년 신학박사 과정을 마치고 메리놀 수도회 Orbis 출판사 편집장이 되었다. 지은 책으로 <모든 성인들>과 <모든 여인 가운데 복되도다> 등이 있다. 도로시 데이 시성식 추진위원회와 헨리 나웬 재단 위원이며, 현재 세 자녀와 함께 뉴욕 주 오시닝에 살고 있다.

이 글은 2003년, 미국 메리놀 출판사가 발간한 <The Saints' Guide to Happiness>(Robert Ellsberg)를 <참사람되어> 2005년 3월호에서 편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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