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김천 톨게이트 농성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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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김천 톨게이트 농성장에서
  • 박철
  • 승인 2019.12.04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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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칼럼-설교문

12월 1일 오늘 오후 4:30분, 부산의 진보진영 목사들이 김천 톨게이트 농성장을 방문하여 위로금을 전달하고 함께 기도회를 했습니다. 제가 "강도 만난 자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오늘은 아기 예수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시는 날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대강절(대림절) 첫날임. 주님의 은총이 여러분들과 함께 하시길!

저는 1985년 1월부터 강원도 정선 덕송리에서 첫목회를 시작했습니다. 매우 가난한 동네였습니다. 동네라고 해야 다 해서 24가구가 옹기종기 모여서 사는 동네였습니다. 논은 없고, 산비탈에 밭을 일구어 감자, 옥수수, 메밀, 고추농사를 지어서 근근이 살아가는 마을이었어요. 그때가 전두환 정권시절이었는데, 신문에 매일 농민들이 한 두 사람씩 자살했다는 기사가 짤막하게 실리는 것입니다. 큰 꿈을 갖고 농촌목회를 시작했는데 농민들이 양파 파동 배추 파동, 수입소 파동 등으로 인해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농약을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태가 계속되었습니다. 

그때 제 나이가 만 30살이었습니다. 피가 뜨거웠을 때였지요. 그런데 아무런 죄가 없는 농민들이 매일 농약을 마시고 죽어가는 소식을 접하면서, 그리고 그걸 지켜보면서 너무 괴로워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분하고 억울했어요. 제가 고통받는 저들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이 서글펐습니다. 도대체 하느님은 어떤 분이시길래, 가난한 농민들의 고통을, 죽음을 보고만 계실까? 정말 하느님은 살아계시는 걸까? 내가 믿는 하느님의 존재에 대해서 심각한 회의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다시 읽어보자고 결심했어요. 매일 교회 사택에 꼼짝하지 않고 성경을 읽었습니다.

내가 믿는 하느님은 신학교에서 배운 것 말고 도대체 어떤 분이신가? 그렇게 두어 달 성경책과 씨름하고 제가 발견하는 하느님은 “고통받는 자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 “가난한 자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이셨습니다. 성경속에서 등장하는 하느님은 이 세상에서 고통당하는 자들, 아파하는 사람들, 신음하는 사람들, 저들과 함께 아파하시고 괴로워하시는 하느님이셨습니다. 자신의 독생자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하느님이시여, 하느님이시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며 절규하며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하느님이셨습니다. 

아픈 곳이 나의 중심

여러분, 자기 자식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부모님의 심정이 어떠하셨을까요? 성경에 나타난 예수님의 모습을 어떠하셨을까요?

예수님이 당시 이스라엘 민중들을 바라볼 때 성경은 “불쌍히 여겼다” “측은히 여겼다” 고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의 히브리어 뿌리는 “스플랑크니조마이”라는 말에서 나왔습니다. 무슨 뜻이냐? 몹시 슬퍼서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아픔입니다. “단장(斷腸)”을 말합니다. (앞에 단자가 끊을 단자입니다) 그게 예수님이 민중들을 대하는 마음입니다. 당시 로마 압제 밑에서 신음하던 민중들 80%가 노예들이었다는데, 그들을 단장의 심정으로 대하셨다는 것입니다. 

제가 신학교 다니던 시절에 감명 깊게 읽은 책 가운데 하나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설교집이었습니다. 그의 설교 가운데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다가 강도 만난 사람 이야기를 읽고 제 마음이 뜨거워졌음. 마틴 루터 킹 목사는 강도 만난 사람 이야기에 등장하는 제사장과 레위인 두 사람과 사마리아인의 질문이 달랐다고 합니다. 당시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는 길을 매우 으슥하고 험한 곳이었다고 합니다. 언제든지 강도가 출현할 만큼 위험한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사장과 레위인은 내가 저 사람을 돕느라 시간을 지체했다간 나도 강도를 만나게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강도 만난 사람을 못 본척 하고 줄행랑을 쳤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사마리아인의 질문을 달랐습니다. 내가 저 사람을 못 본척하고 지나친다면, 내가 저 사람을 돕지 않으면, 저 사람은 죽게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강도만난 사람을 도와주었다는 것입니다. 

박노해 시인은 <나 거기 있다>라는 시에서 말하길 몸의 중심은 머리나 심장이 아니라고 했어요. 몸이 아플 때 아픈 곳이 중심이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존엄성이 짓밟히는 곳, 이 순간 그곳이 이 사회의 중심이 된다는 것입니다. 건강한 사회, 바람직한 사회는 지금 고통당하고 신음하는 사람들, 사회적 약자들, 저들의 아픔에 즉각적으로 공감하고 공명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떻습니까? 건강? 고통받는 사람들의 아픔을 공감할 줄 모르고 외면하는 사회는 병든 사회입니다. 질이 낮은 사회입니다. 

 

사진=장영식
사진=장영식(출처=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정말 불법은 누가 저지르는가?

저는 여러분의 빼앗긴 권리를 찾기 위해 투쟁하는 과정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관심을 갖고 기도해왔습니다. 지난 11월 12일 한국도로공사가 김천 도로공사 본사 점거를 이유로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노동자들에게 1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는 기사를 읽고 머리끝에서 피가 솟구치는 듯한 분노를 느꼈습니다. 

도로공사는 점거 과정의 행위들을 열거하며 ‘불법’을 강조했지요. 그러나 과연 불법은 누가 저질렀나요? 노동자들의 점거 과정의 불법 이전에 길고 힘든 농성을 유발한 ‘불법’은 도로공사가 저질렀습니다. 1,500명을 대량해고 하는 과정 어디에도 노동기본권에 대한 존중은 없었습니다. 

도로공사는 노동자들에게 긴 시간 애타게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게 하고도, ‘직접고용’ 판결에 ‘자회사’, ‘사무직무’ 등 갖가지 꼼수를 들이대며 기만했습니다. 노동자들은 땡볕에 달궈진 고속도로 아스팔트 위에서, 고공에서 살갗이 타들어가고, 피부병을 참아가며 버텨야 했어요. 그런 노동자들을 다시 도로공사 본사를 점거하게 한 건 바로 대법원 판결을 무시한 도로공사의 책임입니다. 

책임을 외면한 공사가 현관문, 깨진 화분을 운운하며 손해배상 청구를 하는 것은 노동3권을 위축시키려는 전형적인 노조파괴 행태이며, 헌법마저 무시한 결과이다. 공공성을 추구해야 할 도로공사가 이런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도로공사의 뻔뻔한 태도에는 정부의 책임도 큼. 한진중공업, 쌍용자동차 등에서 우리는 대량해고 사태에서 국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경험했고, 뼈저린 희생도 지켜봤습니다. 노동자들의 권리침해를 두고 갈등이 불거질 때마다 국가는 법원의 판결 뒤로 빠져 방관해 왔습니다. 

더구나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대법원의 판결까지 받았습니다. 법원의 판결마저 도로공사가 무시하는 상황에서, 법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노동자들이 할 수 있는 게 더 이상 무엇이 있겠습니까?

촛불 정부는 약속을 지켜야 

3년 전 촛불로 탄생된 문재인 정부는 “사람이 먼저”라며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 약속이 지켜졌습니까? 일자리 창출과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 노동을 존중하는 사회를 실현하겠다, 최저임금 1만원을 반드시 지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 약속을 지켰습니까?

약속을 지키지도 않으면서 왜 약속을 못 지키게 되었는지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지금 자신의 약속과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박근혜 정부와 차별이 탄력근로제를 비롯해서 노동법개악정책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을 존중하기는커녕 무시하는 사회분위기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최저임금 1만원은 고사하고 친재벌위주의 정책을 펴나가고 있습니다. 집권여당은 현정부에 대해서 책임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관행대로 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적폐세력 자유한국당이 대통령을 조롱하고 기만하고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도로공사가 말하는 노동자들의 불법은 노동 3권에 따른 노동조합 활동의 결과입니다. 국가는 헌법상 노동기본권, 노동3권을 존중하며 갈등을 중재하고 해소해야 합니다. 그러나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앞세운 문재인 정부는 대법원 판결 이후 석 달이 되어가도록 정부가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음을 재차 증명하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톨게이트 노동자 여러분, 저는 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 소속 목사입니다. 이제 내년에 은퇴를 앞두고 있어요. 도로공사 사측에 요구합니다. 도로공사는 손해배상 청구를 철회하고 즉각 직접 고용 방안을 마련할 것을 촉구합니다. 

문 정부에게도 요구합니다. 더 이상 소송에 노동3권이 짓밟히지 않도록, 헌법과 노동자들의 인권을 지키는 데 적극 나서줄 것을 촉구합니다.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면 모든 문제가 일시에 해결될 줄 믿습니다. 

존경하는 톨게이트 노동자 여러분, 오늘부터 아기 예수가 인간의 몸을 입고 이땅에 오심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대강절입니다. 대강절은 우리에게 삶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삶의 어두움 속에서도 치유와 평화와 희망의 근거들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또한 대강절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꿈을 키우고 기다리는 절기이기도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공의로 재판하고, 억눌린 사람들이 바르게 되는 진정한 정의의 세계, 그래서 온갖 차별과 억압과 소외가 극복된 정의, 사랑, 평화, 평등의 세계에 대한 꿈을 키우는 계절입니다. 

간곡한 심정으로 호소합니다. “문재인 대통령님 이들의 아픔을 외면하지 마십시오. 대통령께서 직접 나서 주십시오.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십시오. 이들을 안아주십시오. 이번 성탄절 전에 대법원 결정대로 이분들의 요구가 반드시 관철되어 전원 정규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루빨리 농성을 풀고 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제발 부탁합니다.”

존경하는 톨게이트 노동자여러분, 저도 여러분들의 정당한 요구가 반드시 이루어질 기도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여러 달째 갇혀서 고통을 당하는 이 현장이 바로 이 사회의 중심입니다. 힘을 내십시오.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위로와 소망의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축복합니다. 
 

박철
샘터교회 동사목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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