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교회공동체, 민주적이며 민중적인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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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교회공동체, 민주적이며 민중적인 교회
  • 참사람되어
  • 승인 2019.12.03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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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됨의 여정-5 /교회-3

자이레로부터 온 메시지

오늘날 자이레 전지역에는 수천개의 소공동체들이 있다. 그 다양성도 엄청나다. 아프리카의 생활은 나누는 생활이다. 수세기 동안 사람들은 자신들의 고유한 지혜와 고유한 문명, 가치판단의 고유한 표현들, 그들 자신의 세계관을 발전시켜 왔다. 공동체는 이 나누는 생활에서 솟아나오는 생기찬 생활 조건이다. 공동체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역할, 의무, 그리고 권리를 알았다.

공동체는 조직화가 아니라 나눔의 생활로부터 만들어진다. 나눔의 그리스도인 생활, 하느님 안에서의 나눔의 생활에 대한 자각은 그들을 자연스럽게 하나로 뭉치게 하였다. 

삶의 현실에 대한 창조적인 대처와 토착화도 이루어졌다. 아프리카 유산과 종교적 전통의 비판적인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모든 종류의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자이레의 교회는 독특하다. 서구로부터 수입된 무거운 구조로부터 교회는 활기차고 생동감있는 공동체들로 변화하였다. 피라미드식 성직자 중심의 구조로부터 여성과 남성이 지도적 역할을 함께하는 평신도 중심의 교회로 변화되었다. 또한 예식중심으로부터 삶중심의 교회로 바뀌었다. 공동체의 새로운 탄생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자이레의 교회에 성령이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귀여겨 들음으로써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살아있는 세포들: 그리스도교 소공동체를 만들고 발전시키기

공동체를 지향하는 교회: 오늘날 새롭게 나타나는 교회는 공동체 지향의 교회이다. 공동체 지향의 뿌리는 신약의 심층에 자리잡고 있다. (사도2장 43-47, 4장 32-37, 12장 12, 로마16장 5,11. 14-15) 교회의 공동체성은 하느님은 공동체이시라는 삼위일체의 신비로부터 연역된다. 교회는 하느님이 공동체이시기 때문에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선교적 교회: 공동체인 교회는 선교를 강조. 이때 선교는 전통적 의미가 아니다. 즉 사제나 수녀들을 복음을 가르치기 위해 이국땅에 파견하는 전통적 의미는 선교의 전체 의미가 될 수 없다. 진정한 의미의 선교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실천해야하는, 이웃을 향해 열려 있고 손을 뻗치는 선교를 뜻함. 선교는 복음화, 예언직분, 해방, 봉사 등의 다양한 의미를 함축한다

본래적 선교의 의미는 세상 속의 교회를 지향한다. 교회는 교회자체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교회는 하느님 나라를 촉진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교회를 세상으로부터 분리시키려는 위험: 이러한 성향들은 종교를 생활로부터 완전히 분리시키는 사고방식을 조성한다. 이 경우 기도는 도피가 되며, 미사도 도피처가 되고, 피정은 아주 큰 도피처가 된다. 교회 속의 세상이 아니라, 반대로 세상 속의 교회가 되어야 한다. 누룩이 빵 속에 있는 것 처럼 교회는 반드시 세상 속에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교 소공동체란 무엇인가?

 소공동체란 중심(핵)에 있는 교회다.(1968년 메델린 주교회의) 소공동체는 교회 안의 살아있는 세포이다. 중심 혹은 핵이란 말은 두가지 의미 내포. 하나는 작은 크기라는 것과 또 하나는 더 큰 그리스도교적, 인간적 집단의 중심에 있다는 의미이다. 

교회의 공동체적 비전이란 구성원들이 자신들의 삶을 나누는 것을 의미.(공동예배를 통한 영적 나눔, 우애를 통한 정서적 나눔, 생각을 서로 나누는 지적 나눔, 지상의 물질적 자원을 나누는 물질적 나눔)

소공동체는 개방된 공동체이어야한다. 자기중심적,폐쇄적인 아닌 타 공동체에 열려있는 공동체이다.

소공동체는 교회적인 공동체이다.(바오로 6세, 요한바오로 2세) 소공동체는 교회의 완전한 부분이며 필수적 요소이다.

어떻게 소공동체를 만드나?

가장 중요한 원칙은 조직이 사람보다 더 중요해서는 안된다. 조직은 사람을 위해서 존재하고, 사람들이 조직을 위해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소공동체는 삶의 자리에서부터 시작된다. 공동체 시작을 위한 정해진 공식은 없다. 함께 살고 함께 일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 중심으로 시작, 자연스러운 인간관계가 선행되어야 한다.

공동체의 성장을 위해서는 구성원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하며, 동시에 그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전도 해야 한다.

공동체의 성장을 위해 항상 과정이 중시되어야 한다. 그 모델은 바로 하느님. 하느님은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신다. 또 당신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도전하신다.

지속적인 양성은 공동체 성장의 필수 요소이다. 양성이란 영적이고 지적이며 인간적인 모든 차원의 양성을 의미. 양성은 흔히 대화모임을 통해 이루어짐.

소공동체는 진정한 총체적 인간발전을 위한 도구이다.

소공동체들은 어떻게 조정되는가?

소공동체 안에서 지도자란 권위주의적 엘리트가 아니라 협조자, 조정자, 활성가이다. 구성원들과 어깨를 맞대어 함께 걸어가는 구성원들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격려하고 조정하는 사람이다. 좋은 지도자에게 대화, 과정 존중, 포용성은 필수적 자질이다.

소공동체 안에서 주교의 역할은 1)공동체를 조정하고 활성화하며 2)공동체에 봉사하고, 3)항상 봉사의 맥락 속에서 공동체를 지도하고, 4)그리스도교 소공동체들 뿐 아니라 다양한 차원의 공동체들(본당, 교구)을 하나의 교회에 연결시킨다.

밑으로부터의 교회-기초교회공동체(인성회 1988년)

기초교회공동체: 기초교회공동체는 하느님 백성들 사이의 동료애를 심화시키고 그들의 요구에 적극 응답하며, 총체적인 해방의 관점에서 현실의 변혁을 추구한다.-교회전체의 생활방식과 사목활동에 영향을 미친다. 교회의 존재방식과 행동에 대한 재조명은 남아메리카의 복음화과정에서 매우 중대한 역할을 했다.

푸에블라선언: 기초교회공동체는 교회이다. 복음화를 위한 모형들이며 해방과 발전의 역동적인 중심이다. 기초교회공동체는 가난한 이들의 세계속에서 구체화되며, 가난한 이들에 대한 교회의 우선적인 사랑의 표현이다. 기초교회공동체는 교회와 일치하며, 주교들은 기초교회공동체를 추진하고 인도하며 지지하는데 온 힘을 기울인다. 기초교회공동체는 평신도 사도직의 온상이다.

기초교회공동체는: 교회의 가장 첫 번째이고 기본적인 핵이며(메델린10항), 큰 공동체를 이루는 기본단위/기층사람들의 살아있는 역동성에 중점을 두둔다. 교회의 사명을 현존케 하고 교회를 살아있게하는 공동체이며, 복음화하면서 복음화되는 공동체이다. 이곳은 복음화가 일어나는 곳이며, 보다 인격적인 복음화의 요구에 응답하는 공동체이다.

새로운 유형으로서의 기초공동체: 기초교회공동체는 가난한 공동체들이다. 기초교회공동체는 가진 것이 적거나 없는 이들에 대한 연민뿐만 아니라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 또한 가난한 이들의 자리에서 활동하고, 가난한 이들이 예수 안에서 그들 자신을 총체적으로 해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인정하면서 사회적으로 가난해지는 것을 우선적으로 선택한 이들이다.

 

가난한 이들로부터 오는 기쁜 소식 (인성회 1989)

기초교회공동체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교회의 우선적 사랑”(푸에블라 643항)의 표현이다. 가난한 이들로부터 시작된 이 교회는 바닥으로부터 발전되고 있으며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새로운 의미의 교회이다. 

이 교회는 피라미드형이 아니라 원형이다. 이 교회는 그 심장부와 중심에서 가난한 이들을 발견하는 교회이며, 공동체를 변혁하고 쇄신하는 누룩으로서 가난한 이들을 생각하는 교회이다.

이 교회는 가난한 교회이며,가난한 이들과 연대하는 교회이다. 이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이 정책결정, 일과 조정에 있어 책임을 나누며 평신도 사도직과 봉사활동을 드러내는 교회이다.

이 교회는 다른 모든 공동체에 열려있는 교회이다. 이 교회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가 아니라, 가난한 이들의 교회이며,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는 교회이다.

이 교회는 하느님 나라를 섬기고 세상 속에서 새로운 삶을 증언한다. 이 교회는 이러한 사명을 추상적으로 수행하지 않고, 자신들이 살아가는 자리에서 해방활동을 통하여 억압적 제도를 변혁시키고 다른 공동체들과 체험을 나눔으로써 복음전파의 사명을 수행한다.

이 교회는 하느님 나라에 모든 관심을 집중한다. 사도들의 신앙을 이어받고 예수께로부터 받은 사명을 계속 실행하는 사도적 교회이다.

스며드는 연민 -브라질의 기초공동체들

민중교회와 기초교회공동체들은 투쟁과 억압의 역사로부터 발효되었다. 이들은 라틴 아메리카의 가톨릭 문화와 신앙에 의해 억압당하고 착취되었던 바로 그 시기에 키워졌다. 수세기 동안 지속되었던 권위적 교회의 무관심과 엘리트의 횡포, 유럽과 결탁한 정부의 권력독점에도 불구하고 탄생되었다. 

이교회는 예언적, 성령중심적, 가난한 사람들의 교회, 박해받는 교회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다시 연민의 교회로 돌아가야한다. 초대교회는 아무런 특권이 없는 교회였고, 가난하고 억압받는 이들의 교회였지만, 로마황제와 결탁했을때 교회는 자발적인 연민을 잃어버렸다.

기초교회공동체들은 현세를 거슬러 싸워야 한다.

오늘날의 사회는 공동체 생활의 어려움이 날로 가속화되고 있다. 사람들의 삶과 활동으로부터 하느님을 제외시키려는 경향이 있고, 이런 변화들은 더 많은 사람들의 소외를 가져오고 하느님의 계획이 인간의 계획으로 대치된다. 

이러한 현실에서 기초공동체들은 보다 심오한 복음적 영감과 자세로 대처해야 한다.

 

[출처] <참사람되어> 1997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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