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새벽에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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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새벽에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 서영남
  • 승인 2019.11.25 11: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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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남의 민들레국수집 일기 2019년 11월 25일

겨우 쉰다섯인데, 거리에서 십여 년을 살다가 초라한 여인숙에서 11월 23일 새벽 하늘로 떠났습니다. 가난하게 태어나 가난하게 살다가 가난하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무연고라서 형제처럼 도와주었던 민들레국수집 봉사자 한 명이 경찰서에 불려가 조사를 받고 나왔습니다.

김00님은 노숙를 오래 했습니다. 너무도 조용한 사람이어서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살던 분입니다. 막노동을 하면서 살아갈 때는 조금 여유 있으면 민들레꿈 공부방 아이들 먹으라고 과자를 선물하던 분인데... 몇 달 전부터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일도 못하고 거리에서 하루 하루 보내다가 어느 개척교회에서 잠자리를 얻어 지냈습니다.

 

사진=서영남
사진=서영남

한 달 전인 어느 날입니다. 200여 미터 거리를 한 시간 넘게 걸어서 국수집에 와서 밥 먹고 돌아갈 길이 아득해 목발 헌 것이라도 얻을 수 있는지 물어봅니다. 두 달 전부터 몸이 붓더니 열흘 전부터는 복수가 차오른다고 합니다. 그냥 진통제 몇 알로 버텼다고 합니다. 두세 걸음을 걸으면 한참을 쉬어야 한답니다.

동인천역 근처에 있는 의료기 가게에 부지런히 걸어서 갔습니다. 새 목발을 그냥 선물 받았습니다. 목발을 들고 돌아오면서 생각했습니다. 도와줄 방법을 찾아보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목발을 몸에 맞게 맞춰드리고 나서 제안을 했습니다. 긴급의료지원을 받아 병원 치료를 받으려면 우선 주소를 살려야 하니까 내일 여인숙 방을 얻고 주소이전을 하고 치료 방법을 찾기로 했습니다.

그날은 찜질방에서 잘 수 있도록 표와 가운비를 드렸습니다. 다음 날 조금 편안한 모습으로 찾아왔습니다 18만원을 내고 여인숙 방 한 칸을 얻었습니다. 우리 노숙 손님에게는 가장 저렴한 방입니다. 보증금이 없어도 되고 최소한의 살림살이가 있어서 그냥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민등록을 할 수 있는 주소지로도 됩니다.

그 다음 행정복지센터에 가서 말소된 주민등록을 과태료를 내고 살렸습니다. 주민등록증도 발급받았습니다. 모친이 몇 년 전에 돌아가신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곧바로 구청을 통해 긴급의료지원을 받아 인천의료원에서 진료를 받았습니다. 심장이 너무 안 좋습니다. 더 큰 병원으로 이송해야 한답니다. 인하대병원으로 옮겼습니다. 밤 늦게 중환자실에 입원되었습니다. 다음날 중환자실로 가서 기저귀와 물티슈 등 필요 물품을 전해주었습니다.

병원에 입원한 지 나흘이 되었습니다. 면회를 다녀왔습니다. 처음보다 아주 좋아졌습니다. 부기 때문에 78킬로 넘었던 몸이 부기가 빠지니 52킬로가 되었답니다. 이젠 살 것 같다고 합니다. 숨도 편하게 쉴 수 있고 가슴도 아프지 않답니다. 입원비 걱정에 빨리 퇴원했으면 좋겠답니다. 평생 이렇게 편안하게 지내는 것이 처음이랍니다. 밥도 잘 먹습니다. 빨리 나아서 은혜를 갚을 수 있으면 좋겠답니다.

다음 날은 일반 병실로 옮겼습니다. 병원생활에 필요한 물건 그리고 용돈도 조금 챙겨 드렸습니다. 아주 많이 좋아졌습니다. 며칠은 더 입원해 있을 줄 알았는데 병원에서 퇴원수속을 받으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치료비가 3,560,000원이 나왔는데 긴급의료 지원은 300만원 한도라고 합니다. 56만원을 대신 카드 결제를 해 주고 약을 받고 퇴원할 수 있었습니다.

 

사진=서영남
사진=서영남

김00님은 인하대병원에서 퇴원해서 여인숙에서 지냈습니다. 11월 4일 월요일에 진료받으러 혼자 갔습니다. 진료 받기 전에 진료비 2만원 내고 CT 찍어야 하고... 돈이 없어서 맥없이 그냥 돌아왔습니다. 제가 용돈으로 준 것 남겨둔 만삼천 원 뿐이었답니다. 구청에 전화했더니 후속조치를 해 준다는 것이 담당 공무원이 깜빡했답니다. 그리고 그 공무원이 출장을 갔다고 합니다. 다음 주에는 돌아오면 도와줄 수 있도록 해 주겠다고 합니다.

약은 오늘 점심 까지만 먹을 수 있는 것 뿐인데... 그렇게 시간이 흘렀습니다. 담당 공무원이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의사의 진단서를 첨부해야 한답니다. 민들레국수집에서 비용을 들여서라도 11월 25일 월요일에는 의사 진단서를 받아서 제출하려고 했는데 그만 토요일 새벽에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서영남 베드로
민들레국수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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