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성이 가족을 처음 만났을 때...아빠는 짜장면 반도 못 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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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 가족을 처음 만났을 때...아빠는 짜장면 반도 못 먹고
  • 서영남
  • 승인 2019.11.10 12: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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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남의 민들레국수집 일기
사진=서영남
사진=서영남

2019년 11월에 9일 민들레국수집이 쉬는 날이었습니다. 문이 잠긴 국수집 앞에 상자가 하나 놓여 있었습니다. 상자 안에는 ‘작지만 필리핀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는 메모가 적혀 있었고 스케치북이 가득 담겨있습니다. 보낸 분의 이름은 적혀있지 않았습니다.

저녁 무렵에 문자 메시지가 왔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절 기억 못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13년 전에 큰 도움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혹시 진성이, 진주 기억하시려는지요? 벌써 1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네요. 그 동안 찾아뵙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진성이는 벌써 군대 다녀와서 서울에 있는 회사에 다니고 있고, 진주는 내년이면 천안 순천향대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게 되었네요. 참, 따님께서는 잘 지내고 있겠죠? 우리 아이들을 많이 챙겨 주셨는데.... 조만간 한 번 찾아뵙고 인사드리겠습니다.“

진성이 가족을 처음 만났을 때를 생각합니다. 민들레국수집이 있는 동네의 행정복지센터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긴급한 도움이 필요한 가족이 있는데 도와줄 수 있는지 물어봅니다. 가서 만났습니다. 아이들 아빠는 중학교 1학년 아들과 초등학교 5학년 딸과 함께 살고 싶다고 합니다. 헤어지기 싫다고 합니다. 짐도 없습니다. 아들은 야구공 하나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딸은 호랑이 인형을 안고 있습니다.

8년 전에 우유대리점을 하다가 부도로 망하고 그후 이혼하고 아이들 엄마는 떠나갔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혼자서 농장에서, 중국음식점에서 일하면서 아이들을 키웠다고 합니다. 청주의 야식을 배달하는 가게에서 일하고 있는데 사채업자가 찾아왔기에 무서워서 짐도 하나 못 챙기고 그냥 몸만 빠져나와서 사흘 동안 찜질방에서 지냈다고 합니다.

사채업자에게 얼마나 빌렸는지 물어보았습니다. 1백만 원을 빌렸는데 못 갚았다고 합니다. 몇 달을 숨어서 살았다고 합니다. 아침은 먹었는지 딸에게 물어봤습니다. 어제 저녁에 오빠와 사발면 하나 나눠 먹었다고 합니다. 먼저 밥부터 먹자면서 세 식구를 모시고 중국집으로 갔습니다. 아이들은 오무라이스를 시키고 아이 아빠는 짜장면을 시켰습니다.

오빠는 이름이 진성이고 딸은 진주입니다. 아빠 수중에는 단돈 이천 원이 전부입니다. 아이들은 아침부터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고 합니다. 아이 아빠는 이틀을 굶었다고 합니다. 어제 아이들에게 사발면 하나를 먹이면서 눈물이 났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오무라이스를 싹싹 비웠는데 아이 아빠는 짜장면을 반쯤 겨우 먹고는 더 먹질 못합니다. 너무 굶어서입니다.

우선 예진이네 가족을 민들레국수집에서 쉬게 했습니다. 방을 얻으러 다녔습니다. 세 식구가 살 방을 얻어야 하는데, 지난 화요일에 민들레 식구 방을 얻는데 써버려서 보증금을 마련할 여유가 없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이곳저곳 다녔습니다. 겨우 단칸방을 하나 얻었습니다. 보증금 백만 원에 월 십삼만 원으로 하기로 했습니다. 보증금은 지금부터 며칠 안으로 모아서 마련해드리겠다고 했습니다.

이틀 후에 이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중고가게에 가서 냉장고와 가스렌지 그리고 텔레비전을 주문했습니다. 오후 늦게 민들레국수집에서 이불과 그릇과 냄비와 수저를 챙겨서 보냈습니다. 민들레의 꿈 공부방에서는 아이들 옷을 마련했습니다. 속옷은 베로니카가 챙겨서 보내왔습니다. 십시일반으로 예진이네가 살 수 있도록 최소한으로 필요한 것들은 마련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보증금 백만 원만 마련하면 됩니다.

 

사진=서영남
사진=서영남

“민들레 꿈 공부방“의 모니카가 두 아이를 받아주었습니다. 모니카가 진성이가 두 시간 동안 말도 하지 않고 웅크리고 앉아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더니 저녁 무렵에야 웃고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고 기뻐합니다. 두 아이가 저녁도 잘 먹었다고 합니다. 진주 아빠는 동네 순대국집에서 일당 오만 원을 받고 배달을 하고 있습니다. 근처 회사에 이력서는 넣었습니다. 회사에 취직이 되면 참 좋겠습니다.

진성이와 진주가 스펀지가 물을 빨아먹는 듯 예쁘게 변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본래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모니카 선생이 세상에서 제일 좋다고 합니다. 아이들 얼굴이 너무너무 밝아졌습니다. 고마운 분의 도움으로 방 보증금도 마련해서 진주네 집 주인 아주머니께 드렸습니다.
 

서영남 베드로
민들레국수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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