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세상에 다시없는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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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세상에 다시없는 친구
  • 한상봉 편집장
  • 승인 2019.09.08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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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봉 칼럼
영화 Killing Jesus의 한 장면
영화 Killing Jesus의 한 장면

신앙생활 하면서 최고의 노래를 꼽자면, <가톨릭성가> 400번 ‘주님과 나는’이다. 예수님과 내가 ‘우정’ 안에 머물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내가 편안하게 말하면 그분이 다정하게 응답해 주리라 믿게 하는 까닭이다.

“주님과 나는 함께 걸어가며 지나간 일을 속삭입니다.
손을 맞잡고 산과 들을 따라 친구가 되어 걸어갑니다.

주님과 내가 함께 걸어갈 때 천국의 일을 말해줍니다.
이 세상 꿈이 모두 사라질 때 천국의 영광 보게 되리라.

험하고 먼 길 주님 함께 가며 생명의 친구 되었습니다.
잠시의 세상 충실하게 살아 영원한 세상 얻으렵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예수님을 따라 걷는 사람”이다. 그런데, 뒤따라 걷는 게 아니라,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란히 걷는 사람이다. 그이와 더불어 손을 맞잡고 속삭이며 걷다보면, 험하고 먼길도 두렵지 않다. 우리 마음이 이승에 머물지 않고, 이미 천국을 노래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느님을 ‘아빠’라 부르며, 그분 현존 안에 오롯이 살기 때문이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는 “천국으로 가는 모든 길이 천국”이라고 했다. 예수님이 먼저 ‘우리 친구 하자’ 하였으니, 이보다 기쁜 소식이 따로 있겠나 싶다.

함석헌 선생조차 우리에게 ‘이런 친구를 너는 가졌는가?’ 묻고 있다.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 두거라’ 일러 줄 그 사람,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야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방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 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지 묻는다.

예수님은 그런 ‘친구’였다. 마지막 고난의 시간에, 제자들이 그분 혼자 남겨두고 뿔뿔이 달아났지만, 십자가상에서 단 한 번도 그들을 원망하지 않았다. 그분이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라고 말씀하실 때, 이 말은 제자들에게도 해당된다. 베드로와 유다를 안타깝게 여겼던 분, 그런 분을 스승으로, 주님으로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래서 다복하다. 세상에 다시없는 친구를 따라 사는 동지들이 그분의 제자들이다.

 

*이 글은 천주교 수원교구 주보 9월 8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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