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일리치 "학교는 기성사회를 그대로 믿게 하는 광고 대리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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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일리치 "학교는 기성사회를 그대로 믿게 하는 광고 대리점이다"
  • 방진선
  • 승인 2019.09.08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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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하는 사숙(私淑)의 스승 이반 일리치 선생님(Ivan Illich, 1926년 9월 4일 ~ 2002년 12월 2일) 탄신 93주년!

최근 온 국민의 마음과 가슴에 터져버린 아무개 장관 후보 따님의 "학교(교육)" 폭탄. 학교(교육)를 통한 계급(간판)의 유지 내지 상승 욕망이라는 뇌관. 기회의 불평등과 공정의 마비와 정의의 부패라는 뇌관?

일찌기 이 박정한 경쟁의 현실을 파헤친 선생님의 경고를 성찰합니다.

<학교 없는 사회를 위하여Deschooling Society>(1971년) !

"학교는 이 사회가 현재대로 필요하다고 믿게 하는 광고대리점이다."
(School is the advertising agency which makes you believe that you need the society as it is.)

학교화된 학생들!

"이처럼 과정과 실체가 혼동되면 새로운 논리, 즉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더욱더 좋은 결과가 생긴다든가, 단계적으로 올라가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식의 논리가 생겨난다.

그런 논리에 의해 ‘학교화된’ 학생들은 수업을 공부라고, 학년 상승을 교육이라고, 졸업장을 능력의 증거라고, 능변(能辯)을 새로운 것을 말하는 능력이라고 혼동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학생의 상상력까지도 학교화돼, 가치 대신 서비스를 받아들이게 된다. 즉 병원의 치료를 건강으로, 사회복지를 사회생활의 개선으로, 경찰보호를 사회안전으로, 무력균형을 국가안보로, 과당경쟁을 생산적 노동으로 오해하게 된다.

… 이 책에서 나는 그러한 ‘가치의 제도화’가 반드시 물질적 오염, 사회적 양극화, 심리적 무능화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한다. 이 세 가지 차원은 지구의 붕괴와 현대적 비참을 초래하는 과정이다. 나는 빗물질적 요구가 물질적인 상품의 수요로 변화할 때, 즉 건강, 교육, 수송, 복지, 심리치료가 서비스나 ‘보호’의 결과로 정의될 때, 지구의 붕괴 과정이 어떻게 증폭되는지를 설명할 것이다."(위의 책)

우리의 오래된 미래!

"학부모의 경제력 수준이 아이의 학원 수준과 학원의 갯수를 결정한다. 방학 동안의 단기 해외체류나 장기유학 역시 부모의 경제력이 결정한다. 부모의 경제력이 부족한 학생들은 스스로 휴학을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여 돈을 모은후 유학을 가거나 워킹 할리데이를 떠난다. 그렇게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학생들의 평균 학습수준은 평준화를 향해 달린다. 오로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이자 목적이다.

학부모들에게도 학생에게도 다른 교육은 중요하지 않다. 비슷한 교육을 받고 비슷한 학원을 다니고 비슷하게 해외에 갔다 오면 전체적인 학생들의 수준은 비슷해진다. 모두가 특목고나 일류 대학이 목표다. 어차피 대학의 입학정원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상대평가로 학생들은 걸러진다.

일류대학와 이류대학의 차이는 없다. 한국의 대학은 어차피 멕시코의 주요 대학, 중국의 주요 대학의 경쟁상대가 아니다. 대학의 질이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상대평가로 들어온 학생들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것도 특별한 차이도 아니다. 수십만 명의 대학 입시생들 중 1만명 정도까지 끊어서 서울대와 연고대를 가게 되는 것이고 그 뒤에도 그렇게 입학정원에 따라 학생들이 서열이 매겨진 대학에 들어간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취업을 위한 무한 경쟁이 또 다시 시작된다. 한국의 경제 시스템은 저고용 구조다. 고용 역시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추세다. 정부와 기업은 아직 그런 구조를 바꿀 생각이 없다. 이 한정된 취업을 위해서 도 다시 대학생들은 1학년부터 경쟁을 시작한다. 안정된 직장으로 분류되는 공무원과 공기업 채용에 수백, 수천대 일의 경쟁이 일어난다. 그렇게 공무원이 될 바에야 무엇하러 4년 동안 수 천만원을 들여 대학에 입학하는가? 대학에는 학문도 진리도 없다. 비싼 등록금만이 있을 뿐...

무엇이 문제일까? 무엇을 놓친 것일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1971년에 처음 발간된 이 책은 ’교육’을 둘러싼 전반적인 구조와 역사, 세계관과 문화를 이야기한다. 학교와 대학, 교육과 배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반 일리히는 학교를 단순히 교육이나 배움이라는 문제를 넘어서 국가와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어떤 제도와 시스템의 시각으로 이해해야 함을 주장한다. 나는 작년 11월에 저자가 1973년에 처음 발간한 <성장을 멈춰라>를 읽었다. 저자는 그 책에서 근대 서구사회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무한한 진보’와 ’무한한 성장’이라는 이데올로기가 현대 사회를 구조적으로 파탄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무한한 성장은 결국 '권력을 양극화하고 좌절을 보편화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양식 또는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를 떠나 근대 산업사회 경제방식이 결국 인류와 생태계를 자멸에 이르게 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학교 없는 사회> 역시 근대적인 경제방식이 가져온 또 하나의 시스템이자 제도이자 문화이다."(<학교 없는 사회를 위하여> 소개글)

선생님의 "인간적 급진주의Humanistic radicalism" 선포!

에리히 프롬 선생의 말씀대로 일리치 선생님의 "인간적 급진주의Humanistic radicalism"의 선포가 절실한 시대입니다.

"인간적 급진주의는 모든 전제에 의문을 던지며 불합리하게 보일 지라도 통찰과 대안에 이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일리치 박사가 쓴 저서의 위대한 가치는 풍부하고 가장 상상적인 측면에서 그러한 인간적 급진주의를 제시한 점에 있다. 

(Humanistic radicalism questions all these premises and is not afraid of arriving at ideas and solutions that may sound absurd. I see the great value in the writings of Dr. Illich precisely in the fact that they represent humanistic radicalism in its fullest and most imaginative aspect.)

… 다른 저서와 마찬가지로 이 책에 나타나는 일리치 사상의 중요성은 완전히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해방의 효과를 준다는 데 있다. 독자들은 상투적이고 불모의 선입관으로 가득 찬 감옥 밖으로 문을 활짝 열고 나와 생기있게 살게 된다.

(The importance of his thoughts in this as well as his other writings lies in the fact that they have a liberating effect on the mind by showing entirely new possibilities; they make the reader more alive because they open the door that leads out of the prison of routinized, sterile, preconceived notions, 에리히 프롬 <의식의 축제 Celebration of Awareness>서문 1971년)

선생님의 지침 : 모든 것을 의심할 것!

"모든 것은 의심되어야 한다"

(De omnibus dubitandum. Everything must be doubted)

방진선 토마스 모어
남양주 수동성당 노(老)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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