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가쁜 나흘, 차가워진 철탑 위의 그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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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가쁜 나흘, 차가워진 철탑 위의 그대에게
  • 신배경 기자
  • 승인 2019.09.02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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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일꾼이 만난 현장] 삼성해고노동자 김용희 님을 위한 연대의 기록

김용희, 그대의 이름을 만난 여름이 가고 어느덧 가을로 들어서는 길목입니다. 벌써 한 계절이 바뀌었네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태양의 뜨거운 열기와 습기가 걱정이 되었는데, 이제는 찬바람이 염려됩니다. 단식을 다시 시작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80일이 넘도록 철탑 위에서 소음과 진동과 비바람을 맨몸으로 감당하고 있는 김용희 님. 어떻게 해야 도움이 될지, 어떻게 해야 힘이 될지 모르겠기에 답답하기만 합니다. 해질녘 하루를 마무리 할 시간이 되면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어서 강남역으로 가보기도 합니다.

8번 출구 앞 철탑이 보이는 그 자리에 가면 가만히 있을 수 없는 마음이 저만은 아님을 봅니다. 처음엔 모르는 이들 뿐이었는데, 지금은 아닙니다. 김용희 님으로 인해 연결된 인연들입니다.

 

사진=신배경(이하 사진 동일)
사진=신배경(이하 사진 동일)

8월28일_거리행진

이재용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상고심 판결을 하루 앞둔 28일, 김용희 님과 함께하고자 하는 발걸음들이 모여 대법원까지 거리 행진을 했습니다. 50명이 모여야 행진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제가 함께 하고 있는 '가톨릭일꾼' 단체 카톡방에도 소식을 전했습니다. 한 사람의 발걸음이 간절했거든요. 각자의 자리에서 김용희 님을 기억하며 기도로 연대하는 분들인지라 몇 분이라도 오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날의 행진은 어디에선가 50여명이 한꺼번에 나타난 것이 아니라, 여러 곳에서 삼삼오오 모여와 행진 대열이 꾸려졌습니다.

'가톨릭일꾼'에서는 퇴근하자마자 달려오신 유형선 아오스딩 님, 행진과 집회에 처음으로 참여하신다는 박선미 아녜스 님이 오셨습니다. 두 분 모두 시간을 내어 달려오신 이유는 단 한 가지, 그대의 사연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박선미 아녜스 님은 저녁에 외출을 잘 하지 않는 분이지만, 김용희 님을 위해서 무엇이든 함께하기를 바라셨습니다.

50명이 모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랬는데, 70명 가까이 모였습니다. 그날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서로 모르는 사이였지만, 그대를 위해 한 마음으로 함께 했습니다. 8번 출구 앞에 모여 대법원 앞까지 가는 동안 다시 곡기를 끊은 그대의 마음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미루어 짐작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전 그럴만한 깜냥이 안 되더군요. 전 사실 김용희 님의 마음을 헤아릴 능력이 없는 사람입니다. 단지 그대를 떠올리면 목이 메이고 마음이 아파옵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대법원 앞에 도착하니 톨게이트 수납노동자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톨게이트 수납노동자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판결을 하루 앞둔 상황이었지요. 우리가 도착했을 때 박수로 맞이해 주었는데, 그 순간 왜 눈물이 나려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김용희 님으로 인해서 우리들은 거리에서 “연대”를 배우고 있는 듯합니다.

소식 들으셨나요? 톨게이트 수납노동자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대법원에서도 승소했습니다. 800명의 인원 중 500명이 자회사로 이동하고 300명이 2개월을 거리에서 노숙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대는 철탑 위에서 누군가는 거리에서 감내하는 날들이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혼자”였던 그대의 시간을 몰랐던 무심함이 미안합니다. 이제 그대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김용희 님의 이름으로 우리는 모였습니다.

 

8월29일_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

이재용 뇌물 관련 대법원의 판결을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기다렸습니다. 정의가 바로 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애타게, 간절하게 휴대폰의 자그마한 화면을 들여다보며, 그 시간 그대가 귀 기울이고 있었을 판결을 기다렸습니다. 말 세 마리가 뇌물임이 인정되는 순간 많은 이들이 김용희 님을 떠올렸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순간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마음만은 “함께”였다고 믿습니다.

8월30일_거리강연회 그리고 릴레이기도회

김용희 님을 위해 마음을 모으는 사람들이 모이는 저녁. 30일에는 IBM노동조합 위원장을 지내신 윤중목 시인의 거리강연회가 있었습니다. <무노조경영과 노사협의회, 그 허구성에 대하여>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셨는데, 노사협의회가 허울 좋은 껍데기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김용희 님 덕분에 요사이 저의 무지가 깨어지고 있습니다.

그날 함께했던 '가톨릭일꾼'의 벗들을 소개할까 합니다. 김용희 님을 위해 모이면서 평소보다 얼굴도 자주 보게되어 사이가 돈독해지고 있는 길 위의 벗들입니다. 장진숙 이보헬로리나 님은 금요일 마다 연대하고 있는데, 그날이 마침 금요일이라서 함께했지요. 이덕숙 포티나 님은 의정부에서 달려왔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행정실의 이미희 마리아 님도 함께 했습니다.

우리는 거리강연회가 끝난 뒤 향린교회 신도분들과 함께 둘러앉아 그대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함께 욥기를 읽고, 성가를 부르며, 기력이 없어서 밖을 내다보지 못했을 그대를, 손을 흔들 힘조차 없는 그대를 기억했습니다. 하나님과 하느님은 같은 분이시며, 그대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기에 함께 기도했습니다. 김용희 님 덕분에 우리는 기도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단식을 중단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 밤이었습니다.

 

8월31일_거리기도회

오전 10시에 가톨릭 기도회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김용희 님을 위한 기도회에서 만나는 분들은 거리에서 미사가 있을 때 마다 만나게 되는 분들입니다. 만나면 농담 삼아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또 만나게 되었다고, 우리가 거리에서 더 이상 만날 일이 없는 세상이 와야 한다고 말이지요. 누군가의 일상의 회복을 위해서, 어찌 보면 우리의 일상을 위해 일상을 접고 나오는 발걸음입니다. 그대의 문제는 곧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니까요.

할아버지 한 분이 오셨습니다. 요한 할아버지라고, 그대가 걱정이 되어 연로하신 몸으로 강남역을 찾으셨습니다. 유형선 아오스딩 님은 그날이 생일이었는데, 아내분과 함께 일산에서 오셨습니다. 기도회가 끝난 뒤에도 혼자 한참 자리를 못 떠나고 서 계시던 분이 아내 김정은 글라라 님이십니다.

전화통화를 통해 상태를 알려주시고, 일어서서 손을 흔드시는 모습을 보면서 하루빨리 땅 위에서 만날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서 내려오셔서 요한 할아버지도 만나고, 모두 함께 가까이에서 얼굴 볼 수 있는 날을 기다립니다. 그대여, 우리가 땅 위에서 그대를 기다리고 있어요.

 

 

<불의가 세상을 덮쳐도>

1) 불의가 세상을 덮쳐도 불신이 만연해도 우리는 주님만을 믿고서 살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들 가는가. 어둠에 싸인 세상을 천주여 비추소서.

2) 가난과 주림에 떨면서 원망에 지친 자와 괴로워 우는 자를 불쌍히 여기소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불행히 사는가. 어둠에 싸인 세상을 천주여 비추소서.

그날 함께 불렀던 성가 중 한 곡입니다. 앞으로 이 성가를 부를 때 마다 김용희 님이 생각날 것 같습니다. 요사이 추워서 힘겨워 하신다고 알고 있습니다. 더 추워지기 전에 내려오실 수 있기를 많은 이들과 함께 기도합니다.

김용희 님, 그대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곧 뵐 수 있는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여기 철탑 아래에서.

 

<삼성해고노동자 김용희 님과 연대하는 시간에 함께 해 주세요.>

●거리강연회: 매일 저녁 7시

●릴레이 기도회: 매일 저녁 8시(주말은 참가자 자율)

●가톨릭 기도회: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

●장소: 강남역 8번 출구 앞

 

신배경 클라우디아
가톨릭일꾼 애니메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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