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혁명을 일으키는 맨발의 교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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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혁명을 일으키는 맨발의 교사들
  • 한상봉
  • 승인 2019.08.26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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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혁명을 작당하는 공동체 가이드북], 새실 앤드류스, 한빛비즈, 2013

책 제목부터 가슴을 설레게 만드는 <유쾌한 혁명을 작당하는 공동체 가이드북-행복은 타인으로부터 온다!>를 지은 세실 앤드류스(Cecile Andrews)는 미국 전환운동을 대표하는 사람이다. 그는 지역 주민 중심의 지속가능한 공동체 <시애틀 피니 에코빌리지>의 설립자이며 ‘행복을 추구하는 대화모임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의 저서만 봐도 그의 관심사를 알 수 있다. <느린 것이 아름답다 Slow is Beautiful>, <단순하게 살기 Circle of Simplicity>, <비울수록 아름답다 Less is More> 등이다.

적자생존, 아니 유대감

세실은 아주 오래된 오해부터 풀어준다. 다윈은 ‘적자생존’이란 말을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말을 만들어낸 사람은 허버트 스펜서이고, 기업가 존 D. 록펠러가 ‘적자생존’을 자연의 법칙이자 신의 법칙이라 불렀고, 앤드류 카네기가 <부의 복음 the Gaspel of Wealth>에서 ‘적자생존’을 인류를 위한 최선의 지침으로 삼았다고 말한다. 오히려 다윈은 “이기적이고 분쟁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하나로 뭉치지 못하지만, 협력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협력이 진화에 유리하다고 말했다.

레베카 솔닛은 <이 폐허를 응시하라>에서 재난을 겪었던 이들이, 그 현장에서 보여준 타인에 대한 배려와 연대감에 주목했다. 관습적으로, 또는 이기적으로 살던 사람들도 결정적인 재난에 닥치면 아주 다른 행동을 보이고, 그 과정에서 “환희에 찬 행복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1906년 샌프란시스코 지진을 겪은 어느 젊은 여성은 이런 말을 전했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기쁨과 슬픔까지 인간의 모든 감정을 경험하고 또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마음 깊은 곳에서 새로운 감정이 생기더군요. 고요하게 차오르는 기쁨이 느껴졌습니다. 그 감정은 우리가 잃어버린 모든 것을 보상해 주엇습니다. 천년의 유대감을 느끼게 만드는 감정이었죠. 대탈출을 감행하는 동안, 모두가 당신의 친구였고 당신도 모두의 친구였습니다. 혼자인 사람들, 즉 고립된 자아는 죽었습니다. 사회적 자아가 우세했습니다. 다시는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방에 틀어박혀 주위를 차단하지도, 이웃과 단절되어 느꼈던 외로움을 느끼지도 말아야 합니다. 다시는 고난과 불행한 운명 때문에 혼자 남았다는 기분을 느껴서는 안 됩니다. 지진과 화재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따뜻한 마음과 기쁨이었습니다. 용감함도, 강인함도, 새로운 도시도 아닌, 이전에 없던 포용력, 타인에게서 얻는 기쁨이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겠지만, 미국사회는 국민들이 이기적이라는 가정아래 국가 시스템을 설계했다고 전한다. 기업부터 학교까지 미국의 전 기관은 인간행동의 주된 이유를 ‘보상’에서 찾았다. 그래서 미국사회는 덜 신뢰하며, 덜 배려하고, 더 경쟁적이다. 이런 경쟁에 기초한 불평등 사회에서 사람들은 더 고립되고, 스트레스 받고, 우울해지며 결국은 불행이 온 사회에 전염병처럼 퍼져나간다.

행복에 대한 우리 생각은 틀렸다

이런 사회에서 사람들은 부자가 되면 행복해질 거라고 믿는다. 그러나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빈곤, 전쟁, 부패, 심지어 건강문제까지도 이 세상이나 인간의 행복보다 이익을 우선시 했던 결과다. 우리는 돈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기도 하지만, 돈이 행복을 만들어주지 않는다. 한 연구에 따르면, 수입이 어느 정도 이상이면 돈을 더 벌어도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서열경쟁 문화에서는 승자가 없다. 누군가 위에 존재하고, 위로 오를수록 그 사람을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다. 행복은 다른데서 온다.

세실은 행복을 부르는 4대 요소를 관계(Connection), 소명(Calling), 유희(Celebration), 자발적인 통제(Control)로 보았다. 먼저 사회적 유대가 탄탄한 사람이 행복하다. 이 사람들은 덜 우울하고 병에 덜 걸리고, 인생을 더 많이 즐긴다. 두 번째, 열정을 느끼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 거대한 우주가 “이 일을 하라!”고 명령하는 것처럼, 하느님이 주신 소명이라 여길 수 있는 일을 찾아 하는 게 중요하다. 예술활동이든, 사회운동이든 뭐든지 마치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하게 되면 에너지가 생기고, 시기심이 사라지고, 남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고, 타인에게 더 친절해진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오직 사랑에 굴복하도록 자신을 단련하고, 어딘가에 마음을 빼앗기는 자신을 용인하라.”고 말한다. 보상을 받기 위해서, 남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려고, 사회적 지위를 얻으려고 하는 일은 소명(Calling)이 아니다. 보상 없이 추구하는 일 가운데서 우리는 자존감과 기쁨을 얻어 누린다.

세실은 자신이 작은 그룹을 모으는데 열성인 것을 보고 친구에게 “넌 틀림없이 전생에 양치기 개였을 거야!” 하는 소리를 들었다. 이때 세실은 기분나빠 하지 않고 기쁘게 화답했다. “그래! 진짜 본성을 안다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인지!” 하였단다. 세실은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몇 가지 규칙을 갖고 있다. 즐거운 일 더 하기, 즐겁지 않은 일 하지 않기, 내가 하는 일이 무엇이든 즐기려고 노력하기다. 여기서 소로가 월든 호수로 가면서 했던 이 말이 큰 감명을 주었다.

“나는 삶을 천천히 살아보고 싶어서 숲으로 갔다. 삶의 본질적인 사실만을 직면하기 위해서, 삶이 주는 가르침을 배울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그리고 죽음의 순간이 가까워졌을 때 후회하는 삶을 살지 않았다고 깨닫기 위해서였다. 나는 삶이 아닌 것은 살고 싶지 않았다. 삶은 그토록 소중한 것이다. 나는 깊이 살면서 삶의 모든 정수를 음미하고 싶었다.”

 

사진출처=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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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혁명을 작당하는 공동체

행복하려면 천국이 ‘노동강도순’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사람들은 직장에서 성공하면 신이 자기편이 될 거라고 믿는다. 그저 열심히 일하는 것이 천국으로 향하는 길이라고 믿지만, 정작 미국인들보다 더 행복지수가 높다는 멕시코인들은 삶을 신나게 즐기는 방법을 더 많이 알고 있다. 즐거움의 종류는 다양하다. 호수를 응시하는 고독한 순간일 수도 있고, 음악을 듣는 행복한 순간일 수도 있고, 소설을 읽다 빠져드는 순간이나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는 순간일 수도 있다. 그러면 인생을 흥미진진한 ‘소풍’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그래서 세실이 요청하는 것이 ‘유쾌한 공동체’를 만들자는 것이다.

유쾌한 공동체는 사회변화를 끌어내기 위한 출발선이다. 꼭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모임만 아니다. 사람들을 결집시켜 개인적 이익은 물론 사회 전반에 이익을 가져다주는 사회적 행동들을 무엇이든 찾아내 하자는 것이다. 세실의 친구 가운데 한 사람은 자신의 이메일에 이런 태그(tag)를 달아 놓았다.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싶다면 더 좋은 정당에 투표하라!”

가능한 주기적으로 각자 가져온 음식을 함께 나누며 즐기는 포트럭 파티(Potluck Party)를 열고, 앉아있는 내내 악다구니를 퍼붓는 험악하고 지루한 모임이 아니라 화기애애하고 재미있는 모임에 참여하자고 제안한다. 유쾌한 공동체는 모임을 통해 원했던 사회적 임무를 완수하면서 동시에 모임에서 함께 웃고 대화를 나눈다. 서로 지지하면서 유쾌하고 평등한 방식으로 일한다. 공동체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깊은 애정을 느끼고, “타인에게서 얻는 기쁨”을 경험한다. 이런 모임만이 생명력이 있고 사람들에게 매력을 준다. 아무리 공동선을 위한 것이라 해도 분노와 비난이 가득한 공동체는 사람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모으지 못한다.

권력을 쥔 자들과 맞서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결속’이다. 우리는 사람들을 격려하여 모이게 해야 한다. <어린왕자>를 쓴 생텍쥐페리의 표현을 빌리자면, 만약 배를 만들고 싶다면 사람들에게 목재를 가져오게 하거나 임무를 부여하거나 일감을 나눠줄 것이 아니라 ‘먼저’ 무한히 넓은 바다를 동경하게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사람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기쁨과 즐거움이 넘치는 삶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여 적극적인 실천을 유도해야 한다. 그럼, 어떻게?

거리에서 기쁨의 춤을 추자

에런라이크는 <거리에서 춤추기 Dancing in the streets>에서 사람들은 더 이상 거리에서 춤추기를 멈추었다고 안타까워 한다. 이런 춤은 집단적인 기쁨을 상징하는 행위였다. 권력자들은 집단적인 춤을 혐오하였고, 자본주의는 민중들에게 직접 춤추기보다 연주회나 연극을 보러가라고 부추긴다. 경쟁적인 경제환경에서 고립된 개인들은 타인들과 함께 즐기는 것보다 일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 그래서 각종 시위현장이나 파업현장에서 발생하는 노동자들의 춤과 노래는 연대감으로 결성된 평등한 코뮤니타스(communitas)의 표현으로 칭찬할 만 하다. 커뮤니타스란 인류사회학자가 빅터 터너가 사용한 말로, ‘공동성’이며, 축제나 순례, 혁명의 과정에서 일상적인 사회적 신분이나 질서, 서열이 일시적으로 없어진 상태를 말한다.

미국에서 시민권 운동이 한창이던 1964년 마사 앤 더 반델라스가 <거리의 춤을 Dancing in thr Streets>이라는 곡을 발표했다. 이 곡엔 “온 국민을 초대해요. 모두가 만날 수 있는 기회예요!”라는 가사가 들어 있다. 데모를 축제처럼 하던 1960년대 운동과 시위에는 언제나 존 바에즈 같은 저항가수들이 부르는 노래가 있었고, 음악에 맞춰 사람들은 춤을 추거나 행진을 했다. 여기에 공감이 있고, 열정이 있었다. 그리스어 ‘열정’(enthusiasm)이란 “내 안에 신을 둔다”는 뜻이다. 행복이란 “내 안에 하느님을 모시고, 그분 말을 따르는 것”이다.

 

사진출처=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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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삶의 즐거움

하지만 이런 기쁨과 즐거움 위에는 언제나 먹구름이 뒤덮여 있다. 돈과 시장의 우상이 완강하게 일상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 조슈아 헤셀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평가하는 법과 저울질 하는 법을 가르친다. 존경하는 법과 경외하고 감탄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존경의 정신, 인간의 영혼과 내면의 위대함을 표현하는 능력, 모든 인간에게 부여된 잠재적인 것들이 지금 우리에겐 없다.”

마이클 센델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시장이 우리 삶을 지배한다고 말했다. 센델은 상품과 서비스뿐만 아니라 가정생활, 우정, 성, 건강, 교육, 양육, 예술, 시민정신, 스포츠 등 삶의 모든 영역에 시장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늘 거래할 수 있는 것과 거래할 수 없는 것을 따져봐야 한다.”고 했다. 돈에 대한 중독이 공동선에 대한 관심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자본의 우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가 당장에 할 수 있는 일은 ‘자발적으로 단순하게 살기’운동이다. 소비를 줄이는 방법을 찾아내면, 그로 인해 적게 일해도 되고, 각자의 소명을 추구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그들은 삶을 즐기며 변화하기 시작한다. 드디어 ‘비울수록 아름답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자발적으로 단순하게 산다는 것은 ‘성찰하는 삶’을 선택했다는 뜻이다. 인간과 지구의 행복을 위해 무엇이 중요한지 묻고, 각자 자기 행동을 평가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올바른 삶이란 속도를 낮추고 천천히 음미하는 삶이다. 잠시 시간을 내어 주변을 살펴보고 자연과 나의 관계를 돌아보게 되었다는 뜻이다. 세실은 “기업적이고 경쟁적인 소비사회에서 벗어나는 것은 위대한 해방이며, 이러한 해방은 집단적 기쁨을 경험할 수 있는, ‘거리에서 춤추는’ 삶으로 우리를 안내한다.”고 말한다.

대항문화와 맨발의 교사

세실은 소로의 글을 읽다가 이 말에 그대로 얼어붙었다. “우리는 모두 교사이며 전 우주가 교실이다.” 여기서 교사란 교실에서 강의를 하고, 시험을 보고, 점수를 매기는 학교 교사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서로를 보살피고, 영감을 주고, 격려하고, 안내하고,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키고, 지지해주는 사람을 말한다. 중요한 건 우리 모두가 교사라는 것이다. 우리의 자아 중심에는 남을 돕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다. 세실은 “상대가 충고를 구할 때 얼마나 뭉클해지는지, 마음의 문을 열고 상대를 돕겠다고 나설 때 얼마나 마음이 요동치는지 생각해보라.”고 말한다.

예전에 우리가 만났던 교사들은 지루했고, 우리에게 굴욕감을 느끼게 했고, 격려하지도 용기를 주지도 않았다. 그래서 ‘교사’에 대한 인상이 대체로 더럽다. 세실은 교실에서 만날 수 없는 ‘맨발의 교사’를 제안한다. 인도에는 ‘맨발의 대학’이 있다. 이 학교는 마을 주민들을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살아가도록 이끌고, 생존에 필요한 현대적 기술과 내용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전통문화를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세실은 이런 맨발의 교사들이 사방에 퍼져서 공동선에 주목하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기 위해 일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맨발의 교사는 “합리주의와 이상주의를 동시에 품고 있는 사람”이다. 두 발은 땅을 딛고 머리로는 우주를 생각하라는 말이다.

“맨발의 교사는 성공에 목매지 않는다. 따라서 권력과 권위를 얻으려고 애쓰지 않는다. 이들은 순례자나 개척자가 되어 진리를 추구해야 한다. 따라서 자신을 특별한 여행을 하고 있는 존재, 즉 진리를 찾아 모험을 떠난 존재로 바라봐야 한다. 맨발의 교사는 인간 정신에 영양분을 제공하고 공공선에 주목할 것을 고무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될 수 있다.”

 

사진출처=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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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와 석가모니, 예수와 간디, 마틴 루터 킹이 맨발의 교사였다. 그들은 대중의 마음과 생각을 읽고 공감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으며, 모든 분이 권력과 지배문화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반기를 들었던 인습타파주의자들이었다. 그분들은 모두 대화와 말의 힘으로 사람들을 변화시켰지만, 체제 유지를 원하던 사람들에게 위협적이어서 죽임을 당했다.

맨발의 교사 가운데 왕이나 전사는 없었다. 오히려 대화의 힘을 믿었던 평범한 영혼들이었다. 우리가 이분들처럼 살 수 없지만, 그분들의 비전을 나누어 가질 수는 있다. 세실은 그 비전이 2차 세계대전에 대한 반성으로 1948년 유엔에서 제정된 ‘세계인권선언문’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생각했다. 선언문은 인간은 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누구에게나 동등한 존엄성과 권리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선언문에는 국민의 의지가 정부 권력의 기반이 되어야 하며, 국민은 형제애의 정신에 입각해서 행동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맨발의 교사에게는 모든 만남이 의미가 있다. 어느 누구도 압박하거나 조종하거나 외면하지 않는다. <나와 너>를 집필한 마르틴 부버처럼 “모든 참된 삶은 만남”이라고 말할 줄 안다. 이들은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과도 대화를 나눌 준비가 되어 있다. 대화는 학습과 변화의 원동력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실은 “만일 우리가 던지는 말들이 혁명의 불씨가 되거나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대화에 접근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맨발의 교사는 성공과 사회적 지위를 얻기 위한 어떤 가공된 이미지에도 집착하지 않고 진정한 자기로 사는 사람이다. 진정성이 없다면 삶을 심오하게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르틴 부버는 랍비 주시아(Zusya)가 임종에 임박해 이런 말을 남겼다고 전한다. “내세에서는 ‘너는 왜 모세처럼 살지 않았느냐?’고 묻지 않을 것이다. ‘왜 너 자신으로 살지 못했느냐?’고 물을 것이다.” <시간을 초월하는 건축물>의 저자 크리스토퍼 알렉산더는 맨발의 교사가 되려는 이에게 귀중한 말을 남겼다 “인간은 제 자신을 거짓 없이 대할 때, 자신의 내면의 힘을 충실히 따를 때, 생명력을 느낀다.”

생태신학자 토마스 베리는 시대마다 ‘위대한 과업’이 있었고, 지금 우리의 과업은 지구를 구하는 것이라 했다. 맨발의 교사들은 우리 모두가 창조적이고 경이로운 우주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우리 각자가 우주를 관통하는 생명의 힘을 나타내는 존재임을 깨닫도록 도와야 한다. <유쾌한 혁명을 작당하는 공동체 가이드북>의 마지막 당부는 이렇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맨발의 교사들이 기쁨으로 충만한 공동체에 깊이 뿌리내고 ‘거리에서 춤추는’ 삶을 실현하기 위해 일생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깨닫고 행동으로 옮겨야만 우리는 공동선에 주목하며 서로를 돌보고 협력하는 새로운 문화를 창조할 수 있을 것이다.”

 

* 이 글은 <가톨릭일꾼> 2019년 8-9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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