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생의 낯선 사랑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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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의 낯선 사랑법
  • 한상봉 편집장
  • 승인 2019.08.06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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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봉 칼럼
아동문학가 권정생
아동문학가 권정생

“장가는 가봤는가요?”
“아니오. 못 가봤습니다.”
“그럼, 연애도 못 해봤나요?”
“연애는 수없이 했지요. 할아버지 할머니하고도, 아이들하고도, 강아지하고도, 생쥐하고도, 개구리하고도, 개똥하고도…”

<강아지똥>과 <몽실언니>를 지은 아동문학가 권정생 이야기다. 일본 도쿄 혼마치에서 태어나 한때 대구, 김천, 상주, 문경, 점촌, 예촌에서 걸인으로 떠돌다 안동 조탑동 마을교회에서 종지기로 일하며 문간방에 살던 눈물겨운 사람이다. 오래 가톨릭농민회 영성지도를 하던 정호경 신부와 우리말지기 이오덕 선생, 이현주 목사와 이철수 판화가를 벗삼아 자기만큼 가난하고 가슴 아린 사람들을 사랑했던 분이다.

그가 살던 문간방은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더웠다. 그 방에서 글을 쓰고 아이들을 만났다. <우리들의 하느님>(녹색평론사, 1996)에서 권정생은 이렇게 말한다.

“겨울이면 아랫목에 생쥐들이 와서 이불 속에 들어와 잤다. 자다 보면 발가락을 깨물기도 하고 옷 속으로 비집고 겨드랑이까지 파고 들어오기도 했다. 처음 몇 번은 놀라기도 하고 귀찮기도 했지만 지내다 보니 그것들과 정이 들어버려 아예 발치에다 먹을 것을 놓아두고 기다렸다.”

권정생은 살아있는 모든 목숨이 애틋했다. 개구리든 생쥐든 메뚜기든 굼벵이든 같은 햇빛 아래 같은 공기와 물을 마시며 고통도 슬픔도 겪으면서 살다 죽는 게 아닌가, 연민을 느꼈다. 그에겐 위아래가 따로 없었다. 기름진 고깃국을 먹은 뱃속과 보리밥을 먹은 뱃속으로 위아래를 나누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 했다. 약탈과 살인으로 살찐 육체보다 성실하게 거둔 곡식으로 깨끗하게 살아가는 정신이야말로 참다운 인간의 길이라 믿었다. 그래서 제국주의도 전쟁도 빈부도 독재도 분단도 미워했다.

“한국에선 농사꾼이야말로 영육을 함께 살리는 하느님의 일꾼”이라 했고, “밭을 갈고 씨 뿌리고 김매고 똥짐 지는 사목자”를 기대했다. 정직하고 벌어먹고, 소박하게 먹고 입고, 가련한 인생 돌보는 따뜻한 마음을 그리워했다. 영성작가 헨리 나웬은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하느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우리들의 사랑은 하느님의 첫 번째 사랑을 따라 하는 두 번째 사랑이다. 그래서 그런 사랑은 거침이 없고 안팎이 없고 가실 줄 모른다.

이 사랑은 보상을 바라지 않고 거저 주는 사랑이다. 조희선 시인의 말마따나, 우리는 ‘그래서’ 사랑하지만 하느님께선 ‘그럼에도’ 사랑하신다. 그런 사랑 닮아가자는 게 신앙이고, 그 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다. 어떤 이들은 권정생이 유별난 사람이라 하지만, 최초의 교부문헌이라는 <디오그네투스>에는 “그리스도인들은 각자 자기 조국에 살면서도 마치 나그네(paroikos)와 같다.”고 했다. 보통 사람들의 습성을 따르지 않고 복음에 따라 살기를 고집하기 때문이다. 이런 낯선 사랑이 하느님 사랑이라면, 우리도 권정생처럼 이승에서 낯선 자로 살아야 할까…. 고민이 많아진다.
 

* 이 글은 천주교수원교구 주보 8월 4일자에 게재된 것입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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