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 대수천과 사제단의 서로 다른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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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 대수천과 사제단의 서로 다른 평화
  • 신배경 기자
  • 승인 2019.07.30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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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월요미사 참관기

 

광화문 광장에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과 함께하는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미사가 있었던 7월 29일. 광장 미사를 처음 가는 것도 아닌데, 평소와 다르게 긴장과 두려움을 직면해야 했다.

얼마 전 광화문 광장을 지나가던 청년이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신변에 위협을 느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사람들의 손에는 태극기가 들려 있었고, 자신의 가방에는 노란 리본이 달려있었다고 했다. 언제부터 태극기만 보면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었나. 최근 들어 광화문에 나가는 발걸음이 가볍지 않다. 평화를 염원하는 발걸음이 이리 무거운 것이었나 싶어 낯설다.

광화문 역에 내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광경은 이순신 장군 동상 앞의 제대를 에워싸고, 태극기를 든 사람들이 돌고 있는 모습이었다. 대한독립 만세를 외칠 때 온 백성이 손에 들었다는 그 태극기. 태극기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고 많지만, 이날 미사를 방해하러 온 사람들은 일명 “대수천”이었다. “대한민국 수호 천주교인 모임”.

 

 

낮부터 대수천의 집회가 예상되었기에 출발하기 전에 “권세와 폭력과의 싸움에서 보호하시는” 성 미카엘 대천사께 전구를 청했다. 길 건너에서 태극기의 물결을 바라보았을 때는 긴장감이 어렸지만, 막상 길을 건너 그들 가까이로 가니 거의가 연세 많은 어르신들. 아버지 연배의, 어머니 연배의 노인들이다.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분노를 실은 고함이 왜 그리 슬프게 들리던지. 평화를 기원하는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을 향해 '종북'이라고 외치는 분노의 근원은 무엇일까. 피하고 싶고, 마주치기 싫었던 태극기를 든 사람들을 가까이서 바라보니 다들 화가 나 있었다. 무엇에 화가 나 있는 것일까. 왜 화를 낼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일까. 무언가에 사로잡힌 분노가 슬프게 다가왔다. 태극기를 든 노인들의 표정과 손은 슬펐다. 하지만 노인들 뒤로 울려 퍼진 ‘개 짖는 소리’를 녹음한 머리와 손에는 화가 났다.

미사를 제 시간에 시작할 수 없었다. 미사 중간 중간 훼방을 놓았고, 신부님들을 향해 물러가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침묵 중에 기도하시는 사제단과 함께 마음속으로 기도 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7월 15일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개막미사에서 성명서에 실린 성구는 “주님, 우리의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소서.”(루카 1,79)였다. 광장미사에 참석하는 이유는 늘 그랬듯 평화에 대한 염원이다. 대수천 또한 대한민국의 평화를 수호하자는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다. 그런데 각자 바라는 평화가 확연히 다르다.

함세웅 신부님께서 말씀 중에 "미사 시작 전에 마음이 아팠다"고 하신 부분에 깊이 공감했다. 신부님께서 교부학을 공부하실 때, 같은 교부한테 배우고도 제자 시대에 와서 서로 갈라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씀하셨다. 그때의 그들과 오늘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하느님을 각자 다르게 만나고, 사람마다 사랑의 빛깔이 다르고, 사람마다 추구하는 평화가 다르다. 그럴 때 보아야하는 것이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길이 아닐까.

함세웅 신부님의 말씀을 들으며 분노의 자리에, 슬픔의 자리에, 기도가 채워져야 한다고 절감했다.  

“2000년 전 예수님께서 돌아가셨을 때, 악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게 아니고,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이 하느님의 이름으로 하느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았어요. 역설이죠. 이 부분을 늘 묵상하게 되는데, 우리 아픈 마음으로 2000년 전 예수님이 당하신 아픔을 생각하며, 우리 시대 많은 분들, 때때로 우리나라 우리 민족 또는 평화 자유를 외치고 있지만, 사실은 이런 외침이 또 다른 의미에서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이나 그 후손들을 죽일 수 있다는 시대의 깨달음을 가질 수 있게 화살기도를 함께 바쳤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기도를 내내 올렸습니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이 하느님의 이름으로 하느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은 일. 예수님은 그렇게 십자가에 못 박혔고, 지금도 믿는 이들에 의해 곳곳에서 못 박히고 계신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에서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미사를 시작하며 발표한 성명서에 실린 내용을 다시 읽어보며 “평화는 이웃에 대한 사랑에서 생겨남”을 기억하려 한다.

“평화는 이웃에 대한 사랑에서 생겨나며,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하여 모든 사람을 하느님과 화해시키시고, 모든 사람의 일치를 회복시켰으며, 미움을 죽이시고 부활하시어 사랑의 성령을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부어주셨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은 사랑 안에서 진리를 실천하며 참으로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과 힘을 합쳐 평화를 간구하고 건설해야 한다.”(사목헌장 78항)

“주님, 우리의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소서.”(루카 1,79)

사제단에서는 다음 주 8월 5일(월)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미사에 오시는 분들 중에서 선착순 100명에게 김인국 신부님의 신간 <2230자>(김인국, 철수와 영희, 2019)를 나눠준다고 한다. 우리 가톨릭일꾼들도 이 날 광장에서 많이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덧붙여 이날 미사 끝나고 한상봉 편집장님이 저녁밥을 쏘셨다. 

 

신배경 클라우디아
가톨릭일꾼 애니메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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