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라스무스 "정신의 자유를 통하여 진정한 경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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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스무스 "정신의 자유를 통하여 진정한 경건으로"
  • 방진선
  • 승인 2019.07.15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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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 선종 483주년

경애하는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 Desiderius Erasmus 신부님 (1466.10.27.-1536.7.12.) 선종 483주년 !

중세 르네상스 시대의 저명한 그리스도교 평화주의자, 인문주의자, 성직자 !

"토마스 모어 성인께서 순교한 이듬 해 에라스무스 신부님은 죽기까지 양편에 폭력을 중지하라고 평화를 호소하는 글을 쓰다가 바젤에서 평범한 시민의 옷을 입고 세속의 명예도 없이 고독하게 그러나 자유롭게 죽어가며, 굳어가는 입술로 갑자기 어린 시절 배웠던 고향의 언어로 더듬거리며 말합니다. '사랑하는 하느님.' ”(한상봉, -'공정하고 섬세한 종교개혁가, 에라스무스' 2010.10.27. 가톨릭지금여기)

삶의 표어!
"정신의 자유를 통하여 진정한 경건으로"

종교개혁의 표어 !
"폐해는 제거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신앙의 실체가 침해되어서는 안 됩니다(Tollantur abusus, non substantia)."

12살 연하 토마스 모어 성인의 평생 敬友! 두 분의 友愛와 명운을 현 시대 상황에서 명쾌하게 해석한 우리 철학자!

“자본주의적 유능을 인문(人紋)적 무능으로 대체하려는 인문(人文) 좌파적 연대와 실천.” (김영민, <동무론>2008년)

1499년10월28일부터 1533년6월까지 왕복편지 50통에 담겨있는 진솔한 우애!

첫 편지를 읽어봅니다.(일역<에라스무스-토마스모어 왕복서간>2015년의 졸역임)

"에라스무스가 친애하는 토마스 모어 군에게 인사드립니다.

이 편지를 大兄에게 가지고 가는 사람에게 내가 얼마나 화를 내고 싶은지 뭐라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이 사람의 배신행위로 내가 일각이 여삼추라는 심정으로 고대하는 모어 군의 편지를 무작정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지요. 편지를 한다는 약속을 대형이 저버렸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으며 그러고 싶지도 않습니다. 물론 먼저 보낸 편지에서 약간 나무라는 표현을 해버렸지만.

그렇지만 나의 솔직한 말투가 대형의 기분을 상하게 한 것은 아닌가라는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 스파르타인들 식으로 껍질을 벗겨내어 살을 잘라낸다는 나의 전법(戰法)은 대형도 잘 알고 있는 것이지요.

농담은 그만하고 너무나도 그리운 토마스 군, 대형을 만나고 싶다는 또 편지를 받고 싶다는 내 가슴의 절절한 생각에 무엇으로든지 이자를 쳐서 보답받고 싶습니다. 그것도 한 두통 정도가 아니라 저 이집트일꾼의 등골이 휠 정도로 많은 편지를 받고 싶습니다.

만약 풍성한 학문에 투신한 사람이 달리 있다면 그런 사람이 내게 편지를 하도록 권유하는 것이 대형의 일이지요. 그러면 여러 곳에 친구를 사귈 수 있겠지요. 내가 먼저 손을 내밀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지요. 대형은 정말 초연한 분이니 내가 어떤 식으로 편지를 보내든 개의치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형은 이런 내게 더할 나위없는 깊은 우정을 품고 있다는 것을 굳게 믿고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친애하는 모어 군!
안녕히 계십시오.

옥스포드에서
1499년 10월28 시몬과 유다 축일에"

두 분의 공역인 우애의 산물 “루키아노스 작품집”(1506년)! 토마스 모어 성인의 집에서 저술하여 성인의 이름을 따서 성인에게 헌정한 <우신예찬>(愚神禮讚, Encomium Moriae, 1511년)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가 친애하는 토마스 모어 군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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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친구들 가운데 모어 군, 大兄이 가장 먼저 뇌리에 떠올랐습니다. 대형이 눈앞에 없어도 곁에서 친하게 어울리던 때와 마찬가지로 눈앞에 보이지 않는 대형의 모습을 생각하며 기쁨을 느꼈습니다. 장담하건데 내 인생에서 그 보다 즐거운 일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조차 들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슨 일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만 때가 때인 만큼 진지하게 숙고하기에는 전혀 적합하지 않는 장소이므로 장난삼아 우신예찬을 해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것입니다.

“어떠한 파라스(아테나 여신의 별명)의 작용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라고 대형은 말하겠지요. 우선 맨처음 Moria[그리스어로 "바보‘라는 뜻]와 아주 비슷한 대형의 Morus라는 성[Morus는 More의 라틴어형]이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그렇더라도 대형 자신이 그와는 전혀 무관한 존재임은 모든 사람의 일치한 의견이지만 다음으로 이러한 재치의 장난을 대형이 오히려 즐거워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내 생각이 맞다면 이러한 것과 같은 농담 즉 무학무지가 아니라 따끔한 느낌이 드는 농담을 대형은 늘 즐겼으며 평소 생활에서도 데모크리토스의 유의(類儀)로 지내기 때문입니다.

1511년 6월 9일 파리"

'바보여신 모리아'가 폭로하는 이 시대의 바보우상은 무엇일까?

"나는 얼굴에 분칠 같은 것은 결코 하지 않으며 마음으로 느끼지 않은 것을 거짓으로 표정짓지도 않는다. 어디에 있든 나는 내 모습 그대로를 내보인다. 나는 현자인 척 가장하지도 않으며 자줏빛 외투를 뒤집어쓴 원숭이나 사자 가죽을 쓴 당나귀처럼 어슬렁거리지도 않는다. 현자의 대접을 받고자 하는 그들이야말로 진짜 우신이다."

제왕적 맘몬일까 ?
시인의 오적五賊일까 ?
수구적 보수세력일까 ? 
배타적 진보세력일까 ? 
여전히 그리스도교 성직자일까 ? 
종교권력일까 ?
남의 말과 글을 쉽게 표절하는 거짓 지식인일까 ? 
광고에 스스로 끌려나가 소비에 탐닉하는 노예적 소비대중일까 ?
아니면 無心의無知의無感의無情의無動의 나 자신일까 ?

노경(老境)의 길을 비틀거리며 가는 제게 주시는 500년 전의 경구를 다시 새겨봅니다.

"노인들과 아이들은 서로를 좋아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서로 닮았기 때문이다. 주름살이 있고 없고와 나이만 다를 뿐이다. 옅게 빛나는 머리카락, 이가 빠진 입, 마른 몸, 우유를 좋아하는 것, 말을 더듬는 것, 재잘대는 것, 어리석음, 좋지 않은 기억력, 경솔함 등에서 그들은 서로 비슷하다. ...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을 학문 연구에 다 소진해버리고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밤샘과 근심걱정과 끝없는 노고로 다 날려버리고 남은 삶마저 조금도 즐겁지 않게 보내버린 그런 사람을 한번 생각해보라. 그는 늘 인색하고 난처해하고 침울하고 우울하며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엄격하고 가혹하며 남에 대해서는 귀찮아하고 지긋지긋해하는 창백하고 수척하고 병약하고 눈곱이 끼고 늙어 비틀어지고 늙기도 전에 머리가 벗겨진 요절할 운명을 타고난 사람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죽어도 상관없다. 여태껏 한번도 제대로 살아본 적이 없지 않는가! 바로 이것이 현자의 한심한 초상이다.”

에라스무스 신부님! 저희가 하느님의 진리를 궁구하여 이 시대의 우신을 무너뜨리고 우애의 마음으로 복음을 실천할 수 있는 용기를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방진선 토마스 모어
남양주 수동성당 노(老)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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