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기도하고 영성 방진선의 오늘, 이 사람!
구상 "세상에는 시가 필요해요"구상 세례자 요한 선종 15주년

존경하는 시인 구상 세례자 요한 선생님(1919.9.16. ~ 2004.5.11.) 선종 15주년 !

※ 이 땅에 계속되는 눈먼 싸움 !

<'신속처리안건' 상정을 둘러싼 난장판 정치에 깊어가는 민생의 시름>
<북 미사일 발사에 미, “북 선박 압류”…대결 악순환 위기>(한겨레신문 2019.5.10 )

※ 남북의 사상 갈등을 깊이 체험하신 시인의 기도를 간절히 드립니다.

기도

저들은 저들이 하는 바를
모르고 있습니다.

이들도 이들이 하는 바를
모르고 있습니다.

이 눈먼 싸움에서
우리를 건져 주소서.

두 이레 강아지 눈만큼이라도
마음의 눈을 뜨게 하소서.

※ "문학은 인생의 부차적인 것이요, 제2의적(第一義的)인 것은 종교요, 즉 구도(求道)요, 그 생활"이었던 구도자 시인 ! ('에토스적 시와 삶'' <한국대표시인101인선집-구상>281쪽,문학사상사2002년)

※ "물을 바라보며 마음을 닦는 '관수세심(觀水洗心)', 그 한마음으로 올곧게 시와 삶이 일치하는 삶, 구원의 여정을 걸어간" 그리스도인!(가톨릭평화신문 2004.5.16)

※ 평생 그리스도인으로 살고자 했던 시인 구상은 자신이 몸담았던 이 불완전하고 유한한 세상에 대해 마지막 시집 <인류의 맹점에서>를 펴내어 믿음의 시들로 희망을 제시하고 ‘영원의 동산’으로 떠났다."(구자명, <한국 가톨릭 문화의 거장들 : 구상 시인 (하)>, 가톨릭신문 2016.12.25)

※ 유언으로 남기신 시인의 마지막 시론(詩論) !

“세상에는 시가 필요해요.”

"시는 말에다 생명을 부어 소생시키고 그 기능을 확대, 발전시킴으로써 인간사회의 유대를 끊임없이 새롭게 하고 힘차게 하는 것이다."('현대문명 속에서의 시의 기능'<시와 삶의 노트-구상문학총서6>2007년)

※ 선친의 유훈과 장형 신부님의 말씀을 잠언으로 가슴에 품고 현대사의 질곡을 이겨내신 효심의 시인 !

"어려서부터 악지가 세었던 나에게 옛 선비였던 아버지께서는 돌아가시기 바로 전전날, 병석 머리맡에 나를 불러 앉히시고는 '너는 매사에 기승(氣勝)을 말라. 아무리 네가 옳고 바른 일에라도---'하시면서 <채근담>을 손수 펼쳐보이신 것이 '인생은 조금 줄여서 사는 것이 곧 조금 초탈해 사는 것이니라'(人生 減省一分 便 超脫一分)라는 구절이었다. ... 한편 역시 그 시절, 나는 가톨릭 신부인 형에게 정신적 오뇌와 절망을 때마다 글발로 적어보냈는데 그 어느 답장에 적혀온 것이 바로 아시시 프란체스코 성인의 말씀으로 '하느님께서 너에게 내려주신 모든 복( 은혜)을 도로 거두어 도둑들에게 나누어 주셨더라면 하느님께서는 크게 감사를 받으실 것을----' 이었다. - - - - 저 아버지의 유훈과 형의 교훈은 그 어느 경전의 잠언이나 경구보다도 내 마음 속에 깊이 새겨져 살아 있었으며 더구나 인생을 살아오며 내 탓으로 또는 뜻밖의 여러 곤경과 격난을 치르면서 저 훈계들이 나의 성정(性情)과 앞날을 통찰한 예언적 지침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심신이 더불어 유약하면서도 이렇듯 70을 넘겨 살며 또한 큰 망신 없이 지내고 있음이 저 아버지의 유훈과 형의 교훈 덕분임을 어렇듯 서슴없이 말하게끔 되었다."('두 가지 잠언' <한국대표시인101인선집-구상>212-213쪽)

※ 구도적 성찰과 믿음의 시편 !

기도

땅이 꺼지는 이 요란 속에서도 
언제나 당신의 속사귐에 
귀 기울이게 하옵소서.

내 눈을 스쳐가는 허깨비와 무지개가 
당신 빛으로 스러지게 하옵소서.

부끄러운 이 알몸을 가리울 
풀잎 하나 주옵소서.

나의 노래는 당신의 사랑입니다. 
당신의 이름이 내 혀를 닳게 하옵소서.

이제 다가오는 불 장마 속에서 
'노아'의 배를 타게 하옵소서.

그러나 저기 꽃잎 모양 스러져 가는 
어린 양들과 한 가지로 있게 하옵소서.

<나는 알고 또한 믿고 있다>

이 밑도 끝도 없는 
욕망과 갈증의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없음을 
나는 알고 있다.

이 밑도 끝도 없는 
오뇌와 고통의 멍에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나는 알고 있다.

이 밑도 끝도 없는 
불안과 허망의 잔을 
피할 수 없음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또한 믿고 있다.

이 욕망과 고통과 허망 속에 
인간 구원의 신령한 손길이 
감추어져 있음을, 
그리고 내가 그 어느 날 
그 꿈의 동산 속에 들어 
영원한 안식을 누릴 것을

나는 또한 믿고 있다.

 

※ 구도자 시인의 득도(得道) 시편 !

말씀의 실상

영혼의 눈에 끼었던
무명(無明)의 백태가 벗겨지며
나를 에워싼 만유일체가
말씀임을 깨닫습니다.

노상 무심히 보아오던
손가락이 열 개인 것도
이적(異蹟)에나 접하듯
새삼 놀라웁고
창밖 울타리 한 구석
새로 피는 개나리꽃도
부활의 시범을 보듯
사뭇 황홀합니다.

창창한 우주, 허막(虛漠)의 바다에
모래알보다도 작은 내가
말씀의 신령한 그 은혜로
이렇게 오물거리고 있음을
상상도 아니요, 상징도 아닌
실상(實相)으로 깨닫습니다.

참회로 달관한 오늘의 꽃자리 !

 

그리스도 폴의 강 20

오늘도 神秘(신비)의 샘인 하루를
구정물로 살았다.

오물과 폐수로 찬 나의 暗渠(암거) 속에서
그 淸洌(창렬)한 水精(수정)들은
거품을 물고 죽어 갔다.

진창 반죽이 된 시간의 무덤!
한 가닥 눈물만이 하수구를 빠져나와
이 또한 연탄빛 강에 합류한다.

日月(일월)도 제 빛을 잃고
은총의 꽃을 피운 사물들도
이지러진 모습으로 照應(조응)한다.

나의 現存(현존)과 그 의미가
저 바다에 흘러들어
영원한 푸름을 되찾을
그날은 언제일까?

 

오늘

오늘도 신비의 샘인 하루를 맞는다.

이 하루는 저 강물의 한 방울이
어느 산골짝 옹달샘에 이어져 있고
아득한 푸른 바다에 이어져 있듯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하나다.

이렇듯 나의 오늘은 영원 속에 이어져
바로 시방 나는 그 영원을 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죽고 나서부터가 아니라
오늘서부터 영원을 살아야 하고
영원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이 가난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을 비운 삶을 살아야 한다.

<꽃자리 >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나는 내가 지은 감옥 속에 갇혀 있고
너는 네가 만든 쇠사슬에 매여 있고
그는 그가 엮은 동아줄에 묶여 있다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의 굴레에서 벗어났을 때
그제사 세상이 바로 보이고
삶의 보람과 기쁨을 맛본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 선종(善終)으로 다가가는 수도자 시인의 만절 !

 

노경(老境)

여기는 결코 버려진 땅이 아니다.

영원의 동산에다 꽃 피울 
신령한 새싹을 가꾸는 새 밭이다.

젊어서는 보다 육신을 부려왔지만 
이제는 보다 정신의 힘을 써야 하고 
아울러 잠자던 영혼을 일깨워 
형이상(形而上)의 것에 눈을 떠야 한다.

무엇보다 고독의 망령(亡靈)에 사로잡히거나 
근심과 걱정을 도락(道樂)으로 알지 말자.

고독과 불안은 새로운 차원의 
탄생을 재촉하는 은혜이어니 
육신의 노쇠와 기력의 부족을 
도리어 정신의 기폭제(起爆劑)로 삼아 
삶의 진정한 쇄신에 나아가자.

관능적(官能的) 즐거움이 줄어들수록 
인생과 자신의 모습은 또렷해지느니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더욱 불태워 
저 영원의 소리에 귀기울이자.

이제 초목(草木)의 잎새나 꽃처럼 
계절마다 피고 스러지던 
무상(無常)한 꿈에서 깨어나

죽음을 넘어 피안(彼岸)에다 피울 
찬란하고도 불멸(不滅)하는 꿈을 껴안고 
백금(白金)같이 빛나는 노년(老年)을 살자.

 

임종고백

나는 한평생, 내가 나를 
속이며 살아왔다.

이는 내가 나를 마주하는 게 
무엇보다도 두려워서였다.

나의 한 치 마음 안에 
천 길 벼랑처럼 드리운 수렁

그 바닥에 꿈틀거리는 
흉물 같은 내 마음을 
나는 마치 고소공포증 
폐쇄공포증 환자처럼 
눈을 감거나 돌리고 살아왔다.

실상 나의 知覺만으로도 
내가 외면으로 지녀 온 
양심, 인정, 명분, 협동이나 
보험에나 들듯한 신앙생활도

모두가 진심과 진정이 결한 
삶의 편의를 위한 겉치레로서 
그 카멜레온과 같은 위장술에 
스스로가 도취마저 하여 왔다.

더구나 평생 시를 쓴답시고 
綺語조작에만 몰두했으니 
아주 죄를 일삼고 살아왔달까!

그러나 이제 머지않아 나는 
저승의 관문, 신령한 거울 앞에서 
저런 추악망측한 나의 참 모습과 
마주해야 하니 이 일을 어쩌랴!

하느님, 맙소사!

※ 천국에서 안식을 누리시는 시인님 !

물질주의와 기능주의의 몰인정한 세파에 부대끼다 <가장 사나운 짐승>처럼 시나브로 변해가는 저희 가슴에 인간다운 다정함과 자비로움이 강물처럼 흐르도록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

 

가장 사나운 짐승

내가 다섯 해나 살다가 온
하와이 호놀룰루 시의 동물원,
...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그 구경거리의 마지막 코스
“가장 사나운 짐승”이라는
팻말이 붙은 한 우리 속에는
대문짝만한 큰 거울이 놓여 있어
들여다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찔끔 놀라게 하는데

오늘날 우리도 때마다
거울에다 얼굴도 마음도 비춰보면서
스스로가 사납고도 고약한 짐승이
되지나 않았는지 살펴볼 일이다.

방진선 토마스 모어
남양주 수동성당 노(老)학생

[ 가톨릭일꾼 www.catholicworker.kr ]

<가톨릭일꾼 기사는 상업적 용도 아니라면 출처를 밝히고 누구나 퍼갈 수 있음>

방진선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