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혁명 ... 정치적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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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혁명 ... 정치적 혁명
  • 가톨릭일꾼
  • 승인 2016.05.25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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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3일 광화문 월요시국기도회 민경일 신부 강론

우리는 지금 이곳,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 함께 모여 있습니다. 우리는 왜 여기에 있을까요?

저는 가끔 우리나라가 지금 도대체 왜 이럴까? 왜 국민이 죽어 나가는데, 국가는 엉뚱한 짓들과 소리만 하고 있을까? 그리고 어떻게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이들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이 이렇게 많을 수 있을까, 혼자 물어봅니다. 그 대답은, 제가 가끔 학생들에게 하는 이야기입니다만, “우리나라엔 혁명이 없어서 그렇다”라는 것입니다. 무슨 뚱딴지같은 이야기일까요?

역사적으로 잘 알고 있는 프랑스 시민혁명을 떠올려 볼까요? 그 혁명은 시민들이, 국가와 지배 계층이 독점하고 있었던 권력을 되찾기 위한 투쟁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서구의 많은 국가들은 국가가 독점하고 있던 권력을 시민들과, 국민들과 나누어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직접적인 혁명이 있지 않았던 국가들에서도, 옆 나라에서 피의 혁명을 본 이상 또 다시 그러한 피의 과정은 필요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국가들이 그렇게 시민들과 권력을 나누기 시작합니다. 시민들이 본래 그들의 것이었던 권력을 되찾는 과정, 이른바 민주화 과정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안타깝게도 그러한 과정을 겪지 못했습니다. 국가가 국민들에게 권력을 나누어 준 일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가까이는 조선이라는 왕정 시대, 왕으로 대표되는 국가가 모든 권력을 가지고 있던 시대가 있었죠. 그 권력이 끝난 것은 국민들에 의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일제라는 외세에 의한 것이었죠. 그리고 그 일제라는 절대 권력은, 또 다시 외세에 의해 끝이 납니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권력은 국민에게 나누어지지 않았습니다.

전쟁의 승리국인 강대국들이 또다시 우리나라에서 권력을 행사하게 되었고, 그들은 심지어 전범국도 아닌 우리나라를 자신들의 뜻대로, 남의 나라를 둘로 나누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비극적인 전쟁을 치르면서, 그리고 전쟁 이후에도, ‘반공’의 기치 아래 이전부터 권력자들의 앞잡이였던, 이른바 친일파들이 청산되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이 권력의 중심에 다시 서게 되면서, 우리 국민들에게 권력의 길은 점점 멀어져만 갔습니다. 권력을 독점하고 있던 세력의 추종자들인 그들에게, 국민들에게 권력을 나누어 주겠다는 생각은 조금도 없었으니까요.

1987년에, 우리에게는 작은 ‘민주화’의 시절이 있었죠. 하지만 그때의 민주화도, 저는 진정한 민주화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권력층이 우리 국민들에게, 시민들에게 자신들이 독점하고 있던 권력의 아주 일부를 맛보게 해준 것에 지나지 않죠. 어쩌면 우리는 그때, 너무 성급하게 우리에게 민주화의 시기가 열렸다고 기뻐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어쨌거나, 이 나라를 독점하고 있는 권력의 후손들은, 그리고 오늘의 권력가들인 국가와 자본의 권력을 맹신하고 있는 대기업들은, 그렇게 그들이 가진 것을 우리와 나눌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들로 점점 더 변해 갔습니다.

그들의 잘못된 역사는, 잘못된 개념도 많이 만들어 냈습니다. 우리는 흔히 ‘공권력’이라는 표현을 자주 씁니다만, 본래 현대 국가에서 공무원의 개념은, 영어로는 'civil servant'라 합니다. 시민의 종이라는 뜻이죠. 대통령은 어떤 사람입니까? 공무원의 수장이 아닙니까? 그러면 시민을 가장 크게 섬겨야 하는 사람인 것이죠.

경찰 공무원은 경찰이라는 기능을 가지고 시민들에게 봉사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권력을 가졌습니까? 아니, 그게 맞습니까? 지금 이 나라는 조선이 아닙니다. 일제 식민지도 아니죠. 지금 우리가 땅에 발을 디디고 살아가는 이 땅은, 21세기의 “민주 공화국”, 대한민국입니다. 시민이, 국민이 당연히 국가의 주인이 되어야 하고, 우리 국민이 주권을, 권력을 가져야 하는 그런 나라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고 싶어 하는 부자에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가난한 이는 누구입니까? 아니, 가난이란 뭘까요? 우리는 흔히 가난이란 가진 것이 없는 상태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UN 사회권위원회는 가난을 이렇게 정의내리고 있습니다. “충분한 생활수준과 다른 시민적 문화적 경제적 그리고 사회적 권리들을 향유하는데 필요한 자원, 역량, 선택, 안전, 그리고 권력이 지속적으로 또는 만성적으로 박탈된 상태”라고 말입니다. 곧 가난이란, 단순히 없는 상태가 아니라, 누리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없는 상태, 곧, 없어서 못 누리는 상태입니다.

누리는 것의 목적어, 곧 우리가 누려야 할 대상은 권리들, 다시 말해 인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인권을 누리기 위해 필요한 것은 자원, 역량, 선택, 안전, 그리고 권력이라는 것이죠. 우리에게 이 중에서 가장 결핍되어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자원이나 역량보다는 선택 혹은 자유, 안전, 그리고 권력이 아닐까요? 오늘날의 가난한 이들은 그러면 누구입니까? 본래 그들이 가지고 있어야 할 자유, 안전, 그리고 권력을 가지고 있지 못한, 바로 오늘 대한민국의 평범한 국민들이 아닐까요? 그리고 그걸 나누지 못해 울상이 되어 돌아간 오늘 복음에서의 부자 청년은 다름 아닌 그들의 권력을 나누어 가지려고 하지 않는, 저 불쌍한 정권일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예수님께서는 저 가련한 이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가서 너희가 무단 점유하고 있던 그 권력을 이제 국민들에게 돌려주어라”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사실 잘못은 우리들에게도 있습니다. 우리는, 예를 들면, 누가 회사에 늦게 오는데 아파서 늦게 왔다 그러면, 그 사람이 평소에도 맘에 들지 않는 사람이었다면 이런 말을 할 겁니다. “아픈게 무슨 벼슬이야?” 맞습니까?

그런데 이런 말에는 벼슬을 가지면 맘대로 해도 된다는 사고방식이 깔려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나중에 자신이 벼슬을 가지게 되면, 언제든지 자신이 권력자라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을까요? 벼슬은 사실 현대 국가에서는 종이어야 하는데도 말입니다. 우리가 먼저 이런 작은 하나하나의 생각의 방식을 바꾸지 않는 한, 이 땅에 혁명은 오지 않을 겁니다.

우리의 그런 잘못된 낡은 사고방식들이 이 땅에서 불한당을 권력자로 만들었고, 또 지금도 지지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 사고방식들의 집합체를 정치라 한다면, 우리가 먼저 바뀌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어떠한 것도 얻어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반성해야 할 것은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저 프랑스의 피의 혁명 때에 시민들에 의해 끌려 내려왔어야 했었습니다. 그 당시 교회가 가난한 이들의, 약한 이들의 편이 아닌 기득권의 편에 서 있었고, 스스로 기득권인양 권력을 소유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또 그렇게 행동해 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교회는 또 다시 그와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됩니다.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교회 스스로가 가난한 이가 되고, 그들 곁에 서 있어야만 합니다. 피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오늘 5월 23일은, (여러 모로 노란색이 그리워지는 날입니다) 우리의 마음 한편을 아리게 하는 또 다른 한 사건이 있었던 날입니다. 바로 고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7주년이 되는 날이죠. 이 땅의 주인이 국민임을 알고 계셨던 그분의 기일인 오늘, 우리는 오늘 그들에게 정확한 가르침을 주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그들이 제발 좀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그래서 그들도 영생에 이르게 되면 참 다행이구요. 그리고 우리 스스로도 우리가 가진 권력의 참 뜻을 깨닫고, 우리 안에 이제 피의 혁명이 아닌 작은 마음의 혁명, 그리고 그것이 모인 정치적 혁명을 통해 대한민국을 주님께서 보시기에 참 좋은 나라, 진정한 민주 국가로 만드는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우리의 주님께 도움을 청합시다.

그리하여 우리나라가, 이 땅 대한민국이 국민에게 자유와 안전과 권력이 보장되는 나라, 그로 인해 국민들이 스스로의 역량을 자유롭게 발휘하고 마땅히 소유해야 할 자원, 재화도 가짐으로써 모든 국민들이 그들의 인권을 충만히 누리고 실현할 수 있는 나라, 하느님나라에 가장 가까운,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중될 수 있는 그런 나라가 되도록 말입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아멘.


민경일 신부
서울교구 (재)바보의나눔 사무총장

출처/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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