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워라, 아기장수를 잉태한 여인
상태바
아름다워라, 아기장수를 잉태한 여인
  • 한상봉
  • 승인 2019.03.04 17: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시아 종교심성으로 읽는 요한 묵시록-15]

묵시록의 아름다운 여인, 그녀는 누구인가?

가부장적 세계에서 여자는 언제나 피해자였다. 마법사보다 마녀로 몰린 사람이 많았으며, 이스라엘에선 여자로 태어나지 않은 것을 하느님께 감사드릴 정도였다. 그래서 창세기엔 인류에게 죄를 가져다 준 것이 여자, 곧 하와라고 말한다. 그러나 여자는 과거 농경사회에서 생산의 주역이였으며, 세상의 모든 인간 생명을 낳고 키우는 존재였다. 그러므로 여성을 ‘민중’의 상징이라고 말해도 틀리지 않는다.

요한 묵시록 12장에 처음으로 한 ‘여인’이 등장한다. 이 여인은 달을 밟고 별이 열두 개 달린 월계관을 쓰고 나타난다.(묵시 12,1) 그 아름다운 여인은 인류의 어머니 하와를 상징하며, 열두개의 별이 일깨우듯이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곧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상징한다. 또한 열두 사도로 상징되는 새로운 이스라엘 백성 교회를 상징하기도 한다. 그리고 예수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를 상징하기도 한다.

이 모든 여인들은 하나같이 구원을 열망하며 메시아를 기대하는 백성들이다. 그리고 스스로 메시아를 수태하고 있는 백성들이다. 스스로 메시아를 낳을 백성들이며, 마침내 스스로가 메시아의 구원 사명을 계승할 백성이기도 하다 어머니와 아들은 하느님 안에서 모두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 여인은 뱃속에 아이를 가졌으며, 그 진통으로 울고 있다.(12,2) 메시아를 낳는 일이 진통없이 치러질 리 없다. 새로운 희망은 고통의 끝자리에서 피어난다.

 

그림 출처=<아기장수 우투리> 서정오, 보리출판사

용에겐 눈물이 없다

그러나 메시아가 험악한 현실을 뒤집는 혁명을 노래하는 만큼 반대편에 있는 악의 세력도 그만큼 더 극성스럽다. 때마침 ‘하늘’에서 붉은 ‘용’이 나타나는데, 용이 하늘에서 나타난 것은 하느님보다 높아지고 싶어하는 인간의 권력욕과 교만함에서 비롯된 힘이 용(龍)이라는 뜻이다. 인정사정 눈물도 없는 그 용은 일곱머리와 열 뿔을 가졌는데, 머리마다 왕관을 쓰고 있다.

일곱이란 ‘완전’을 뜻하므로 그 용은 세상의 ‘모든’ 왕국을 다스리는 정치권력이며, 요한 묵시록이 쓰여진 배경에서는 ‘로마 황제’를 뜻한다. 그러나 이 용은 열두 개가 아닌 열 개의 뿔을 가진 것으로 보아서 불완전하며 상대적인 존재이다. 하느님과 하느님 백성은 완전하나 뭇 정치권력은 지금 권세를 다 잡은 듯이 보이더라도 덧없고 불완전한 것이다.

이런 권력은 언제나 왕좌를 빼앗길까 봐 안절부절 못한다. 네로 황제와 헤로데 대왕이 그랬으며, 헤로데 안티파스는 세례자 요한을 죽여야 했다. 박정희 군사정권은 긴급조치를 남발하고, 5공화국은 광주 시민을 학살하고서야 축배를 들었다. 이들은 메시아의 등장을 가장 무서워하며, 그래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백성들을 감시하고, 여차하면 테러를 감행한다.

마찬가지로 붉은 용은 막 해산하려는 여인이 아기를 낳기만 하면 삼켜버리려고 호시탐탐 노린다(12,4). 그러나 지혜로운 여인(민중)은 이 죽음의 마수를 피해 광야로 달아난다. 여기서 ‘광야’란 또 다른 고난의 땅이지만, 하느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집트의 노예 살이에서 탈출한 백성들이 40년 동안 하느님과 관계를 맺었던 곳이 바로 광야였으며, 예수님이 메시아의 사명을 행하기 전에 스스로를 단련시켰던 장소 또한 광야였다.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은 광야에서 준비되고 양성될 것이다.

하늘의 전쟁, 그리고 보호받는 아기 메시아

아기가 메시아로 성장하기 전에 이미 종말의 징조는 나타나기 시작한다. 하늘에서 전쟁이 터지고, “누가 하느님과 같은가?”라는 뜻의 천사 미카엘은 하느님의 백성들(그리스도인)과 함께 힘을 모으고 용과 대적해 싸운다. 그 믿음의 형제들은 “어린양이 흘린 피와 자기들이 증언한 진리의 힘으로 그 악마를 이겨냈다. 그들은 목숨을 아끼지 않고 죽기까지 싸웠다.”(12,11) 그래서 마침내 그리스도인들을 괴롭히던 자들이 하늘에서 쫓겨났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의 고통과 박해가 아예 끝난 것은 아니었다. 그 붉은 용(사탄/악마)은 하늘에 더 이상 발붙일 곳이 없게 되자 이제 땅으로 내려와 더욱 발악하기 시작한 탓이다. 그 용은 사내아이를 낳은 여인을 쫓아가서 해치려고 한다. 그러나 하느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그들의 희망인 아기 메시아와 그 여인을 보호하신다. 큰 독수리의 두 날개가 여인을 도와주었으며 그 여인을 휩쓸어 버리려고 용이 토해놓은 강물을 땅이 입을 벌려 들이마신다(12,15). 마치 출애굽한 히브리 민중들이 홍해에 휩쓸려 죽지않고 메마른 땅을 밟아 광야로 달아난 것과 흡사하다. 이미 희망은 붉은 용에게서 떠나 여인에게로 왔고, 그녀가 낳은 아기로 인하여 하느님의 백성에게 미래가 주어졌다.

제주도, 착취의 땅

우리나라에서 제주도는 절해의 고도였으며, 박해받는 백성들의 본향이었다. 척박한 땅과 모진 비바람 거친 바다는 하늘이 사람들에게 준 재앙이었으나, 가장 극성스러운 것은 탐관오리들의 수탈과 왜구의 침탈이었다. 탐라국이 패망한 12세기 초부터 조선시대 말까지 약 500여명의 목민관이 있었으나 하나같이 백성들을 괴롭혔다.

사정이 여기에 이르고 보니, 불모의 땅에서 사는 제주도민들이 위대한 메시아를 간절히 기다린 것은 당연하다. 제주도에는 그래서 유난히 ‘아기 장수’에 대한 설화가 많다. 겨드랑이에 날개를 달고 태어난다는 아기 장수는 그 엄청난 힘을 통해서 세상을 변혁시키는 일종의 메시아였다. 그러나 아기 장수 설화를 보면 애석하게도 대부분의 아기 장수들이 한 집안의 안녕만을 걱정했던 부모들에 의해 날개가 잘리고, 혁명은 실패한다. 아기 장수는 민중에게는 위대한 혁명가였지만 정치권력에게는 늘 역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림 출처=<아기장수 우투리> 서정오, 보리출판사

애석하다, 아기장수여!

옛날 제주시 도두동 다호 마을에 한 부부가 살고 있었다. 그 부부는 자식이 없어 걱정을 하다가 어느 해 아들을 낳았다. 아들은 잘 자라서 열일곱 살이 되었다. 어느날 부모는 성 안까지 심부름을 시킬 일이 있어 아들을 보냈다. 꽤 시간이 걸리려니 하고 있었는데 아들은 금방 돌아왔다. 확인을 해보니 성 안까지 다녀온 것은 틀림 없었다. “그렇게 빨리 다녀올수가 있을까 날아서나 갔다 왔다면 몰라도….” 부모의 의심은 풀리지 않았다.

하루는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부모는 다시 아들을 성 안까지 심부름을 시켰다. 어떻게 다녀오는가를 살펴보려는 심산이었다. 이날도 아들은 금방 성 안까지 다녀왔다. 부모는 아들이 눈치채지 않게 곧 신발을 살펴보았다. 비가 오는 날이니 짚신에는 흙이 묻어있을게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짚신에는 흙이 한 점도 묻어있지 않았다. 날아서 갔다온 게 분명했다.

부모는 걱정이 태산같았다. 부모는 아들을 꾀어 술을 먹였다. 멋도 모르고 술을 먹은 아들은 취해 쓰러졌다. 아들의 정신이 몽롱해진 틈을 타서 부모는 아들의 겨드랑이를 들추어 보았다. 과연 큰 새의 것이 분명한 날개가 달려있었다. 부모는 겁이 덜컥 났다. 만일 관가에서 알게 되면 역적이 났다고 하여 삼족을 멸할 게 분명했다. 부모는 집안을 위해 날개를 자르기로 결심했다.

칼을 갈아 날개를 잘랐다. 그 순간 번개와 천둥이 치고 천지가 진동하는 듯 하더니 벼락이 떨어졌다. 그 집은 온데간데 없고 그 자리엔 못이 하나 생겨났다. 그래서 이 못을 ‘배락 구릉’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양반 지배층은 평민 집안에서 똑똑한 사람이 나면 틀림없이 ‘훗날에 반역하게 된다.’고 생각했으며, 여느 백성들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여기도록 세뇌당해왔다. 그나마 집안을 건사하려면 반역의 기미는 애초부터 없애야 했다.

상황은 언제든지 민중반란이 일어날 수 있을 만큼 고통스러웠고, 그만큼 지배층은 아기 장수를 두려워하며 경계하였다. 아기 장수가 태어났다는 소문이 퍼지면 당장 관군들이 몰려와 죽일 것이 뻔하며, 부모와 동네 사람들도 이에 연루될까 무서워 아기를 무참하게 죽였다. 콩가마를 올려놓아 아기를 죽이거나 다듬잇돌이나 맷돌짝 같은 큰 돌로 아기를 눌러 죽이고, 털을 불로 지지고 살점을 떼어낸다. 날개나 비늘을 제거해서 눅이기도 했다.

그러나 아기 장수 이야기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아기 장수가 죽자마자 천둥 번개가 치고 용마가 나타난다. 노승이 애석하게 여기고 장군바위가 눈물을 흘린다. 아기는 죽었지만 그 아기를 바라던 민중의 염원은 없어지지 않는다. 엄혹한 현실이 그대로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기 장수 설화는 민중의 입에서 입으로, 그네들의 상상력 속에서 언제든지 다시 만들어지고, 숨죽이며 가슴속에서 되살아난다.

아기장수는 결코 죽지 않는다

아기 장수들 전부가 처음부터 모두 살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김통정’에 대한 전설은 살아남은 아기 장수의 활약상을 보여준다. 고려 때 한 과부가 사람으로 변신한 지렁이와 관계하여 옥동자를 낳았는데 온몸에 비늘이 덮여있고, 겨드랑이에 작은 날개가 돋아났다. 과부는 이 사실을 ‘숨기고’ 아기를 곱게 길렀다.

김통정은 자라면서 활을 잘 쏘고 하늘을 날며 도술을 부렸으며, 나중에 삼별초의 우두머리가 되어 관군과 몽고의 연합군을 제주도에서 마지막까지 대적하였다. 그는 제주도에 성을 쌓고 스스로 ‘해상 왕국’ 이라고 불렀는데 백성에게 세금을 받되 돈이나 쌀로 받지 않고 재 닷 되와 빗자루 한 개씩을 받았다. 그러곤 외적이 수평선에서 보이기 시작하면 말 꼬리에 빗자루를 달아매어 달리게 했다. 그 뽀얀 먼지로 외적이 접근을 하지 못했다.

결국엔 아기 업개의 배신으로 죽음을 당했지만, 그의 상무정신은 제주도민의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 언제나 당하고만 살지는 않는다는 것이 그네들에게 삶의 원동력을 제공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요한은 환상 속에서 박해받는 그리스도인, 고통받는 민중의 상징인 여인이 마침내 ‘아기 장수’를 잉태하였음을 알리고, 하느님의 보살핌으로 곱게 아기 메시아를 출산하였다는 종말의 기쁜 소식을 전한다. 붉은 용은 아무리 삼키려고 날뛰어도 민중의 꿈은 좌절당하지 않는다. 하느님께서 그들의 편이기 때문이다.

[마무리 묵상] 

세상의 모든 아기들은
초대받은 당신입니다.
우리가 초대하고 당신이 보내주신
어여쁜 선물입니다.
그네들의 겨드랑이에 돋은 날개가
이내 부러지지 않게끔,
그 날개 집채만큼 자라서
그래서 그늘진 이 세상 훈훈하게 덮게끔
주님, 당신께서 끝내 보살피소서.
당신을 뵙듯이
우리 아이들을 우리가
바라보도록
주님, 당신 안목 배우게 하시고
모진 목숨이라도 살아 남아
그 아이들이 내어주는 희망으로 생기 돋게 하소서.
그리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느님.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