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탕자] 큰아들, 차갑고 옹색한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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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탕자] 큰아들, 차갑고 옹색한 빛
  • 헨리 나웬
  • 승인 2019.02.26 16: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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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나웬의 <돌아온 탕자>-14] 큰 아들의 귀환-2

큰 아들이 떠나다

그 때에 큰 아들은 들에 나가 있었다. 그가 집에 가까이 이르러 노래하며 춤추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하인 하나를 불러 무슨 일이냐고 묻자, 하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아우님이 오셨습니다. 아우님이 몸성히 돌아오셨다고 하여 아버님이 살찐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 큰 아들은 화가 나서 들어가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와 그를 타이르자, 그가 아버지에게 대답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여러 해 동안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며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저에게 아버지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한 마리 주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창녀들과 어울려 아버지의 가산을 들어먹은 저 아들이 오니까, 살찐 송아지를 잡아 주시는군요.”(루카 15,25-30)

 

렘브란트(1606-1670)의 <탕자의 귀환(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부분.

에르미타주 미술관에서 렘브란트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니, 큰 아들의 모습에 점점 더 이끌리게 되었다. 나는 오랫동안 그의 모습을 바라보았고 이 사람의 머리와 가슴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궁금했던 것이 기억난다. 그는 의심할 여지없이, 작은 아들의 귀향을 관찰하고 있었던 주요인물이다.

큰아들, 그에겐 기쁨이 없다

아버지가 돌아오는 아들을 붙잡고 있는 장면의 세세한 부분에만 빠져있을 때에는 그림이 우리를 초대하고 감동적이며 위안을 주고 있다고 쉽게 인식했다. 그러나 전체 그림을 보았을 때에 나는 아버지와 아들의 재결합이 보여주는 복잡함을 재빨리 깨달았다. 아버지가 돌아오는 아들을 끌어안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던 그 관찰의 주요 인물은 매우 위축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는 아버지를 바라보지만, 기쁨이 없다. 그는 몸을 앞으로 기울이지도 않고, 웃거나 환영을 표현하지 않는다. 그는 그냥 거기에 서 있을 뿐이다 – 아버지와 동생의 포옹이 일어나는 그 단상 옆에 – 분명히 달려들고 싶은 모습이 아니다.

“돌아옴”이 이 그림의 중심사건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 장면은 캔버스의 정중앙에 있지 않다. 돌아옴은 그림의 왼쪽에서 일어나며, 한 편으로 키가 크고 완고한 큰 아들이 그림의 오른쪽을 장악하고 있다. 아들과 큰 아들을 갈라놓고 있는 커다란 빈 공간이 중앙을 차지한다. 해결을 요청하는 긴장을 자아내는 공간이다.

아들의 귀환-낭만적이지 않았다 

그림의 큰 아들을 보니, “돌아옴”을 낭만시하고 감상에 젖는 일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관찰하는 그 주요인물은 거리를 계속 두고 있고, 아버지의 환영에 별로 참여하고 싶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이 사람의 내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그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는 더 가까이 다가가서 아버지가 했던 것처럼 동생을 끌어안을까? 아니면 화가 나고 정이 떨어져서 걸어 나갈 것인가?

내 친구 바트가 나의 모습이 작은 아들보다 큰 아들에 훨씬 더 가깝다고 지적한 이후로, 나는 “오른쪽의 이 남자”를 더 주의 깊게 관찰했으며 많은 새로운 것과 힘든 점을 발견했다. 렘브란트가 그린 큰 아들의 모습은 아버지의 모습과 매우 닮았다. 두 사람 다 수염을 기르고 어깨를 덮는 큰 붉은 망토를 걸쳤다. 이러한 외양은 큰 아들과 아버지가 공통점을 많이 갖고 있다고 제시한다. 그리고 이 공통점은 그의 얼굴을 매우 직접적인 방식으로 아버지의 빛나는 얼굴과 연결시키는 빛에 의해 강조되고 있다.

아버지와 아들의 차이

그러나 이 두 사람 사이에는 얼마나 고통스러운 차이가 있는가! 아버지는 돌아오는 아들에게 몸을 굽히고 있다. 큰 아들은 뻣뻣하게 몸을 곧추 세우고 있다. 이런 자세는 그의 손에서 바닥까지 닿는 긴 옷에 의해 더 강조되고 있다. 아버지의 망토는 넓고 환영을 나타낸다. 그러나 큰 아들의 망토는 그냥 그의 몸 위에 밋밋하게 걸쳐있다.

아버지의 손은 뻗어있고 집에 돌아오는 작은 아들을 축복하는 자세로 만진다. 큰 아들의 손은 서로 꼭 붙든 채 가슴에 대고 있다. 두 사람의 얼굴에는 빛이 있지만, 아버지의 얼굴에서 오는 빛은 그의 온 몸 전체를 흘러내리고 있다. 특히 그의 손은 빛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작은 아들을 빛나는 따스함의 큰 후광 안에 잠기게 하고 있다. 반면 큰 아들 얼굴 위의 빛은 차갑고 옹색하다. 그의 모습은 어둠속에 남아있고, 그의 꽉 쥔 손은 그늘 속에 있다.

렘브란트가 그린 비유는 “잃어버린 아들들”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작은 아들은 자유와 행복을 찾아 먼 나라로 가기 위하여 집을 떠났고, 잃어버렸던 사람은 작은 아들 뿐만이 아니다. 집에 남아있던 아들 역시 잃어버린 사람이 되었다. 외적으로 큰 아들은 착한 아들이 해야 하는 모든 것을 다 했다. 그러나 내적으로는 큰 아들 역시 아버지로부터 떠나 방황했던 것이다. 큰 아들은 의무를 다 했고, 매일 열심히 일했으며 모든 책임을 다 수행했다. 그러나 점점 더 불행하고 자유롭지 않은 사람이 되어갔다.

[출처] <돌아온 작은 아들>, 헨리 나웬, 참사람되어 2010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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