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준 목사와 한경직 목사 "저항이 먼저냐 교회가 먼저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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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준 목사와 한경직 목사 "저항이 먼저냐 교회가 먼저냐"
  • 방진선
  • 승인 2019.01.28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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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 김재준 목사(1901년 9월 26일~1987년 1월 27일) 선종 32주년

존경하는 장공(長空) 김재준 목사님( 1901년 9월 26일 ~ 1987년 1월 27일) 선종 32주년!

한국 개신교 진보신학의 아버지요, 장준하, 문익환, 문동환, 안병무, 서남동, 김경재의 스승인 구약성경신학자!

이 불신의 시대에 심금을 울리는 신념의 말씀 !

<장공의 생활신앙 깊이 읽기>, 김경재, 삼인, 2016

​"우리나라는 지금 이른바 「불신」의 인간관계에 있다고 한다.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신념의 사람」이 결핍하기 때문이 아닐까? 신출귀몰하는 책략의 사람도 없지 않을 것이다. 교묘하게 정권을 주무를 수 있는 인사도 있을 것이다. 눈치 빠르게 재계를 요리하는 사람도 있고 빌붙어 관계에 출세하는 인간도 많을 것이다. 「너무 선하지도 말고 너무 악하지도 말라. 네 짧은 인생을 고생하며 지낼 건 무어냐. 네 때가 오기 전에 죽을 건 무어냐?」하는 신중한 지성인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선과 진실과 정의와 사랑을 위한 필승의 신념으로 말하고 살고 죽는 인사는 볼 수 없기 때문에 어둠을 찢고 섬광을 던지는 그 무엇이 없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세상은 어두운대로 침전돼 있는 것이 아닐까? 경제 제일이다, 공업화다 한다. 그런 것은 다 좋다. 그러나 그것은 기술과 돈의 문제요 반드시 신념에 근거할 것도 없다. ...

「신념」이「고집」이나 단순한「뱃짱」이 되지 않기 위하여는 언제나 합리적이어야 하고 겸허하여 정직한 비판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될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신념은 역시 숭고한 고독이다. ... 그것은 우리의 양심이 우리의 현실과 일치하지 않는 사실에서도 나타난다. 그러므로 이「고집」이나 단순한「뱃짱」이 아닌「신념」의 사람은 지금도 우리의 사표요, 벗이요, 정기인 것이다" (사상계156호,1966년2월호)

한신대와 기독교장로회 교단 창립의 주역 !
60년이 지난 오늘 읽어도 생생한 교단 창립 선언문!

1. 모든 형태의 바리사이주의를 배격하고 복음의 자유를 확보한다. 
2. 건전한 교리를 세움과 동시에 신앙 양심의 자유를 확보한다. 
3. 노예적 의존사상을 배격하고 자립자조의 정신을 함양한다. 
4. 분파적 고립주의를 배격하고 세계교회 정신에 철저한다.
5. 그리스도를 모든 부문에 증언한다.

그리스도인이 새겨야 할 장공의 진보신학!

"그의 신학은 세계 도피적이거나 타계(他界)지향적이 아니라, 역사 현실과 속(俗)의 현실을 우주적 그리스도의 능력과 구원사의 경륜 안에서 거룩한 생명 공동체로 변혁해 가면서 열린 마음으로 자유, 정의, 평화, 영원한 생명이 온 누리에 구현되는 종말론적 미래를 대망하는 진보적 신학이다. ... 그는 한국의 전통 문화와 전통 종교를 긍정적으로 포용하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구원의 진리 체험을 우리 민족과 인류에게 증언하려는 관용적 입장을 취하였다."(김경재, <가톨릭대사전> 2권, 1211쪽, 1995년)

 

한경직 목사와 김재준 목사

장공(長空)과 추양(秋陽) 한경직 목사(1902~2000)라는 큰 거울 !
박정희 군사•유신독재에 대해 신앙의 결단으로 다르게 반사한 두 거울 !
장공(長空)과 추양(秋陽) 한경직 목사(1902~2000)의 큰 거울!
박정희 군사•유신독재에 대해 신앙의 결단으로 다르게 반사한 두 거울 !

“추양은 비록 군사독재라 할지라도 그것이 무정부주의나 공산주의보다는 낫다는 것, 즉 반공국가가 더욱 현실적이라는 목회적 판단을 했다. 그러나 장공은 진정 공산주의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독재체제 하에서 천민자본주의를 극대화하는 것이라고 인식하고, 반독재·반자본주의적 입장에 섰다.”

“1972년 유신체제 이후 전개된 독재정권의 국가폭력 하에서 교회 공동체가 무엇을 해야 하느냐 하는 점에서 서로의 입장이 달랐다”

“추양에게 있어 이 상황에서 무엇보다 우선시 해야 할 것은 교회의 보호였다. 그 다음이 교회의 성장을 통한 (독재체제) 국면의 전환이었다. 따라서 그에게 가능한 선택은 비참여적 묵인의 길이었다. 그러나 장공에게는 잘못을 그대로 두는 것이 더 큰 잘못이었다. 국민의 권력을 위임받은 국가나 정부가 잘못된 길을 갈 때 이에 비판적으로 저항해야 하는 것이 교회의 선교사명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것이 교회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라고 생각한 장공은 믿는 그대로 행동했다”

“이제 우리는 그 두 길보다 더 나은 길을 선택하고 가야 한다. 두 분의 삶은 물질화된 영혼의 빈곤과 동물화된 문명시대의 야만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새로운 길을 찾으라는 커다란 도전이다”
(연규홍, 크리스천투데이, 2012.5.4, '한경직과 김재준, 두 거장은 왜 다른 길을 갔을까' )

지금도 그리스도교계의 실상을 그대로 반사하고 있는 두 거울 !
지금 우리를 비추면 어떤 모습으로 드러날 것인가 ?

"다시 한 번 장공이 남긴 글을 되새김 해보니 진정 장공은 예수를 끔찍히 사랑하고 예수만을 생명으로 모시고자 한 신앙인이었고,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비판적 예언자였고, 땅 위의 불완전한 교회를 사랑하면서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인 하나님 나라 비젼을 평생 놓지 않고 사셨던 진정한 그리스도인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김경재, '장공의 생활신앙 깊이 읽기'.2016년)

방진선 토마스 모어
남양주 수동성당 노(老)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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