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를 찾아 떠난 여행, 일꾼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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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구를 찾아 떠난 여행, 일꾼피정
  • 이현아
  • 승인 2019.01.24 11: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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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가톨릭 일꾼 겨울 피정을 다녀와서

[2019년 가톨릭일꾼 겨울 피정을 다녀와서-이현아]

불혹을 넘으면 불안도 넘을 줄 알았는데 여전히 불안의 터널 속에서 출구를 찾고 있다. 요란하게 울려대는 핸드폰의 긴급재난문자와 달리 불안은 예고도 없이 수시로 나를 찾아왔다. 누구를 만나도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고 무엇을 해도 불안은 줄어들지 않았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나눠주신 평화를 나에게도 달라고 기도해 보았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으시다. 신은 이미 내가 탕자라는 것을 알고 계셨다.

​피정 1일차

가톨릭 일꾼에서 겨울 피정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우선 신청을 했다. 토요 근무를 마치고 서둘러 출발했는데, 해는 이미 저물어 검은 배밭을 훑고 있었다. 강당에는 이미 여러 사람들이 모여 한상봉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늦게 도착한 티를 내느라 그랬는지 지인 몇 분이 눈을 마주치며 따뜻하게 맞이해 주셨다.

수많은 별 중 지구별에서 여기 지금 앉아 있는 우리는 어떤 인연일까. 수줍어하는 일꾼들의 자기소개를 들으며 한 사람 한 사람 기억해 보기로 했다. '죽음의 수용소'를 쓴 저자 빅터 프랭클은 인간이 살기 위해서는 삶에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이번 겨울 피정에 참석한 일꾼들을 기억하는 것으로 삶의 의미를 부여해 보기로 했다. 그러자 정말 놀랍게도 일꾼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하게 느껴지고 낯설지가 않았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두려웠던 나는 처음 보는 일꾼들에게 먼저 말을 걸기도 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없는지 관심을 쏟게 되었다.

일꾼들의 의미 있는 자기소개가 끝난 후 근처 식당에서 허기진 배를 채웠다. 하루 종일 굶은 나에게 오늘의 첫 끼는 맛이 중요하지 않았다. 일꾼들과 함께 식사를 나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남은 음식을 포장 용기에 살뜰히 챙기는 자매님을 보니 불쑥 친정 엄마 생각도 났다.

 

사진=하상희

식사를 마치고 돌아온 강의장은 처음 들어왔을 때와 다르게 훈훈한 온기가 느껴졌다. 졸지 않으려 커피 한 잔을 타서 돌아 보는데 아까는 보지 못했던 대형 난로가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배도 부르고 공기도 훈훈하고 이제 남은 강의에서는 졸음이 밀려오겠구나 싶었는데 웬걸. 강의가 마칠 때까지 눈과 귀, 온몸을 열어 강의를 듣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검은 뿔테 안경, 긴장된 웃음, 체크 셔츠를 레이어드 한 회색 니트를 입고 나타난 정경일 선생님은 친한 친구에 대해 이야기하듯 토마스 머튼 이야기를 풀어 놓기 시작했다. 머튼의 생애, 방황, 친구들, 소명, 딜레마, 관상, 침묵과 회심, 사회운동과의 연대, 사랑 그리고 죽음까지 세 시간에 다루기에 너무나 넓고 깊은 내용이었지만 뿌연 나의 시야를 환하게 만들어 주는 마중물이 되었다.

​"'가톨릭 일꾼'은 내 삶의 일부입니다. '가톨릭 일꾼'이 없었다면 나는 가톨릭 교회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토마스 머튼이 도로시 데이에게 보낸 편지(1965년 12월 29일)​

토마스 머튼이 도로시 데이에게 보낸 편지를 보며 가톨릭 일꾼이 있었기에 내가 이 자리 있을 수 있음을 감사드렸다. 밤을 새워도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토마스 머튼의 이야기는 나에게 마지막으로 '어떻게 하면 참자아를 찾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 채 끝이 났다. 머튼의 바다에서 허우적대느라 운동화 속 발이 꽁꽁 언 것을 숙소에 들어와서 알게 되었다.

한상봉 선생님께서 미리 공지한 대로 현장활동가와 단체에 수익금을 기부하기 위한 '경매'프로그램이 이어졌다. 한 선생님의 어설픈 경매 진행을 차마 눈뜨고는 못 보겠다는 김상식 바오로신부님의 유머로 자연스레 진행이 넘어갔고 웃음과 감사로 일꾼 첫 경매가 무사히 끝이 났다.(아마 한 선생님이 이대로 사회를 보다가는 밤을 새울 것이 불 보듯 뻔한지라 신부님이 직접 나서신듯! 신부님 감사합니다.)

 

사진=하상희

피정 2일차

새벽이 다 되어 자려고 누웠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머리만 닿으면 잠드는 나인데 이게 무슨 일이래. 어차피 잠도 안 오는데 새벽 기도 가신다는 자매님을 따라나섰다. 1월 겨울 새벽은 아침이 올 것 같지 않을 것처럼 어두웠다. 솔향기가 나는 길을 따라 추위에 젖은 나뭇가지를 투둑 즈려 밟고 언덕 위 성전을 오르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깜깜한 밤하늘에 별들이 깜빡이며 인사를 하기에 잠시 멈추고 나도 별에게 '안녕' 하고 깜짝 인사를 건넨다. 미세먼지에 초미세먼지까지 난리가 난 서울 하늘에서도 깜빡이는 별들을 볼 수 있구나 싶어 입가에 미소가 절로 생긴다.

성전 안은 희미하게 어두웠고 제대 앞 벽면에 예수님이 둥그런 빛 속에 매달려 계셨다. 침묵은 우리를 잘 이해할 수 있는 내적인 힘이라고 토마스 머튼은 말했다. 나의 침묵에 예수님도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본당에 가면 늘상 질문했던 '주님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묻지 않았다. 그저 침묵하며 빛 속을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6시가 되자 수사님들이 한두 분씩 들어오시고 성무일도를 노래하기 시작하셨다. 수사님이 나눠준 <성무일도> 책을 들고 있다가 눈에 들어오지 않아 한쪽에 내려놓고 대신 귀를 열었다. 귀로 들어오는 기도는 눈으로 보는 기도보다 훨씬 또렷했다. 수도자들은 침묵 속의 하느님을 찬미하며 마음을 다해 기도를 노래했다.

수도원에서 드린 주일 미사는 또 다른 축복이었다. 좌식으로 진행되는 미사 덕분에 밤새 한숨 자지 못한 눈이 유리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을 이불 삼아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사제의 맑은 목소리는 자장가로 들리고 앉아 있는 신자들의 등을 방패 삼아 졸음을 즐긴다. 수도원의 미사는 멈춘 듯 고요히 흘러갔다. 봉헌 성가를 부르기 위해 성가 책을 열고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을 올려다본다. '얘야, 한숨 자도 된단다.'하시며 눈을 찡긋 하신다.

새벽 기도를 마치고 나오자 하늘 저 먼 곳부터 붉은빛이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일꾼들은 하나둘씩 일어나 각자 위치에서 무엇인가를 하며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아들과 딸들의 아침 식사를 챙겨주려는 어머니들, 침구 정리하는 딸들, 모닝커피를 직접 내리는 바리스타까지. 호텔 조식이 부럽지 않은 수도원의 아침식사였다.

 

사진=조성훈

오후 강의는 렘브란트로 문을 열었다. 밤새 잠을 못 자 졸음이 밀려왔지만 일꾼들이 준비해 놓은 간식 덕분에 위기를(?) 극복하며 헨리 나웬을 만나기 위해 먼저 렘브란트에게 달려간다. <하느님의 연인 헨리 나웬>과 <돌아온 탕자>를 미리 읽었다고 아는 단어가 나오면 어깨가 으쓱하기도 했다.

열심히 공부하느라 지친 일꾼들에게 잠시 휴식시간을 갖자며 한 선생님이 가요 두 곡을 듣고 가자 하신다. 두 곡중 한 곡은 가수 이상은씨의 노래 '삶은 여행'이었는데 노래를 듣다가 그만 나도 모르게 눈물이 툭 떨어졌다.

"삶은 여행이니까.
언젠가 끝이 나니까.
강해지지 않으면 더 걸을 수 없으니
수많은 저 불빛에 하나가 되기 위해
걸어가는 사람을 바라봐."
_가수 이상은 노래 삶은 여행

​마치 나에게 불안의 터널에서 나오라며 출구에서 빛을 보내주고 있는 듯했다. 삶은 여행이니까. 언젠가 끝이 나니까. 강해져서 계속 걸어서 오라고. 가톨릭 일꾼의 겨울 피정은 출구를 알내해 주는 빛이 되주었다.

하루는 웃고 하루는 울고 밤낮으로는 공부를 하고 새벽에는 기도하고. 아, 가톨릭 일꾼의 정신이 '기도하고 공부하고 일하자' 였지! 그런데 전혀 피곤하지가 않다. 오히려 정신이 더 또렷해진 기분이다. 토마스 머튼, 헨리 나웬, 그리고 슬픔에 대해 공부하는 동안 불안의 터널 저쪽에서 빛이 깜박깜박 한다.

헨리 나웬이 돌아온 탕자에서 말한 '무조건 사랑하시는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불안으로 집을 나가 떠돌고 있는 나에게 일꾼들은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으로 나를 따뜻하게 안아 주었다. 1박2일의 겨울 피정을 마치고 나오며 어제 보았던 검은 배밭을 다시 둘러본다. 들어오는 길이 있으면 나가는 곳도 있겠지. 그 길 끝에는 나를 기다려주는 그분이 계시겠지.

 

[덧붙임]

안녕하세요 이현아 안젤라입니다.
한분 한 분 얼굴뵙고 인사 못드려서 
여기에서 인사드릴께요.

1.하상희 제르뚜르다 자매님

가톨릭일꾼 쵝오! 디자~~~이너. 하상희 자매님 앞으로도 상희파워! 온화한 미소! 계속 보여주세요^^

2.이정화 크리스티나 자매님

가톨릭일꾼의 큰언니, 크리스티나 자매님. 간식과 아침밥등 살림 챙기시느라 애 많이 쓰셨어요^^

3.이미향 안젤라 자매님

일꾼에 안젤라 세례명이 세 분 계시던데 모두 얼굴이 예쁘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제가 안젤라입니다 ㅋㅋ

4.이현정 비앙카 자매님

자매님 동생과 제 이름이 같다며 아름다운 미소를 보내주셨지요^^ 다음에도 자매님 미소로 일꾼을 빛내주세요~

5.강석주 카타리나 자매님

일꾼 피정에서 성령 충만해 지셔서 청년활동 열심히 하시게 기도드립니다^^

6.권오숙 세라피나 자매님

멀리 세종시에서 오시고 가시느라 힘드실 텐데 얼굴 마주칠 때마다 미소 잃지 않고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7.신배경 클라우디아 자매님

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의 클라우디아 자매님~ 건강 잘 회복하시고 글쓰기반에서 뵈어요^^

8.선영숙 아녜스 자매님

익어가는 삶을 살고 싶다고 소개 때 말씀하신 것이 기억에 남아요^^일꾼 세미나에서 성령 담뿍 받으셨으니 꼭 이루어지실거에요~

9.정영복 오틸리아 자매님

엄마처럼 푸근한 미소와 아이같은 눈빛으로 이야기를 잘 들어주시는 자매님^^ 다음 세미나에서도 그 미소, 눈빛 보여주세요~

10.이화연 안젤라 자매님

그 힘든 1박2일 일꾼 피정을 견디어 내신 대단한 정신력의 자매님~ 무리하시지 마시고 항상 건강 먼저! 아시죠^^

11.이송민 소피아 자매님

30여명의 경매 금액을 꼼꼼히 받아 적어놓느라 정말 애쓰셨습니다^^앞에서 자기소개 할 때 말씀도 엄청 잘하기던데요. 다음 피정 때도 그 솜씨 쭉~ 보여주세요^^

12.서경혜 자매님

한 코 한 코 털실로 예쁘게 뜬 목도리가 엄청 예뻤어요^^경매로 사가신 분은 자매님의 정성+축복을 뚜~배로 받으실거에요^^

13.전나미 율리아나 자매님

네~매진임박입니다~완판자매님! 똑부러진 멘트와 위트 있는 말씀덕분에 일꾼세미나가 흥겨웠습니다. 감사합니다^^

14.주민경 리디아 자매님

일에 지쳐서 힘든 마음이 피정을 통해 위로가 되셨는지요^^하느님이 함께 하시니 힘을 내어 보아요^^

15.강로사 수녀님

딸기쨈 수녀님^^작고 가느다란 손으로 맛난 딸기쨈을 만드신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다음 피정에서도 수녀님의 소녀 미소 보여주세요~

16.김지석 바오로 형제님

바오로 형제님^^일꿈 피정에서 성령 충만하셔서 축복 많이 받으세요~

17.안미순 엘리사벳 자매님

영양만점! 맛도만점! 미소도 만점! 멀리서 오시는 열정 존경합니다^^ 글쓰기 반에서 뵈어요~~

18.박혜영 수산나 자매님

가톨릭일꾼에 엄마, 수산나 자매님^^ 피곤하실 텐데 일꾼들 아침식사 준비해 주시느라 넘넘 감사했습니다. 다음 피정에도 따뜻한 목소리 들여주세요~

19.국성희 베로니카 자매님

예수님이 십자가를 들고 가시다 쓰러지셨을 때 베로니카가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드렸다지요?

아침밥을 준비하시는 모습, 이화연 자매님께 따로 음식을 담아 주시는 모습이 베로니카의 모습으로 보여 존경스러웠습니다^^

20.정창술 프란치스코

세미나가 모두 끝나고 재대 뒷정리까지 꼼꼼히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일꾼 세미나에도 큰 도움 주셔요~

21.박윤성 마태오 형제님

푸근한 아빠 미소! 가톨릭일꾼의 아버지, 박윤성 형제님! 장보고 짐싸고 옮기고 정말 애 많이 쓰셨습니다. 넘넘 감사합니다^^

22.김혜영 율리안나 자매님

피곤하실 텐데 끝까지 미소 잃지 않고 함께 해 주신 자매님 얼굴 생각납니다^^ 다음 일꾼 피정에서 또 뵈어요~

23.김준기 이사악 형제님

처음 일꾼 세미나에 와주신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다문화신자’라고 말씀하신 자기소개가 기억에 남습니다^^ 다음 세미나에서 또 뵐께요.

24.조성훈 미카엘 형제님

밤늦게까지 사진 촬영하고 밤새 일하고는 다시 와서 또 일꾼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기록 남기기에 애써주셔서 감사합니다^^

25.박은이 마리아도미니까 자매님

모자가 멋스럽게 잘 어울리는 자매님^^ 다음 피정에도 또 뵈어요~

26.이윤 선생님

언니 수녀님과 동생 수녀님 사이, 불교수행 하신다고 자기소개에 말씀하셨지요^^ 저도 불교에 관심이 있는데 다음에 뵈면 질문할께요~

27.신정식 프란치스코 형제님

아침 식사 후 밥상도 말없이 접어주시고 정리도 함께 해 주시는 모습이 기억에 남습니다. 직접 책도 쓰시고 정말 대단하십니다^^

28.이준균 요셉 형제님

멀리 창원에서 오셔서 멋진 경매품인 망원경도 구경시켜 주시고 감사했습니다.

29.박영선 데레사 자매님

푹 주무시고 출발하셨다고요^^ 집에 잘 도착하셨는지요? 다음 피정때도 뵈어요

30.최성인 소화데레사 자매님

일꾼 프로페셔널 자매님! 향이 좋고 맛도 끝내주는 커피 넘넘 감사합니다^^ 자매님이 내려주셔서 더더~~맛있었어욤 ㅎㅎ 다음 피정에도 기대해도 될까요 ㅋㅋ

31. 이소영 크리스티나 자매님

아침에 뵙지 못해서 쫌 서운했어요. 이야기 나누고 싶었는데. 다음에 또 뵈어요.

 

​​우리 함께 있어서 축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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