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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급진적인 공동체로예수와 문화적 변혁-5
  • 세바스티안 카펜 신부
  • 승인 2018.12.23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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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전통과 아시아 문화 사이의 대화가 역사적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중개요소가 필요하다. 아시아의 비그리스도인들의 의식에 역사적 예수를 강조하기 위하여 시도했던 것은 교육과 성경이었다. 교회는 이교도들을 정복하고 회개시키기 위하여 왕이신 그리스도를 선포하였다. 그러나 이교도들은 순전히 자기방어로 뒷걸음질 쳤을 뿐이다.

오늘날 사회의 교육은 점점 더 기술적이고 자본축적의 노예가 되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의 전통을 중개하는 역할은 이제 결단을 내린 제자들의 새로운 공동체에 맡겨질 것이다. 이러한 공동체들은 배타적이고 분파적이기 때문에 별로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오늘날의 교회 모습을 따를 것이 아니라 사회의 낙오자들과 어울리신 예수의 식탁친교를 본받아 그 모습이 이루어질 것이다.

중요한 것은 교회의 예식과 규칙을 고수하는 일이 아니라 새롭고 보편적인 사랑의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하여 일할 준비를 갖추는 것이다. 이러한 공동체는 예수의 예언적 신앙으로부터 영감을 받을 것이며 전통적 그리스도교에서 퇴화된 것들을 회복할 것이다. 실제로 작업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측면에서 비판적인 자기성찰을 필요로 한다.

 

사진출처=pixabay.com

새로운 세례: 민중의 삶 속에 동화되기

예언적 공동체들은 성과 속, 자연과 초자연, 신자와 비신자 같은 허위적 이분법 논리와 폐쇄적인 그리스도교의 모습에서 벗어나야 한다. 공동체들은 민중의 삶 속에서 동화(同化)의 세례를 받아야 한다.

교회 중심의 신학을 넘어서

수입된 교회 중심의 신학을 벗어나 살아있는 하느님의 신학을 옹호해야 할 때가 왔다. 교회 중심의 신학은 교회가 계시에 대하여 독점권을 가지고 있으며 하느님의 왕국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경향을 지닌다. 살아있는 하느님의 신학에 있어 하느님은 어느 누구의 소유도 아니며 모든 시대와 모든 장소와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분이시다.

이천 년 전 지상에 나타나 하느님을 투사했던 분이 모든 것을 단번에 알려주었고 사라졌으며 대리인들에게 그의 말과 뜻을 다가오는 모든 세대에 전달하도록 맡겼다. 대리인들은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새롭게 일하시는 하느님을 만나고 인류에게 결단을 제기하고 있다.

하느님의 자녀로서 모든 인류의 평등성을 되풀이해 전하는 세계주의 신학은 결단을 내린 제자들의 공동체, 방어해야 할 아무런 이익도 추구하지 않으며 자신과 세상의 변혁을 위한 기도와 실천에 투신하는 공동체에서만 형성될 수 있다.

습관성 도덕에서 본질적인 도덕으로

습관성 도덕은 전통에 의해 내려온 규칙과 실천을 엄격하게 준수하는 것으로 구성된다. 이것은 쉽게 미움과 투쟁을동반하며, 부와 권력의 추구를 합리화하는데 편리한 도덕이다.

본질적인 도덕은 순수한 마음, 보편적 형제애와 연민의 자세를 발전시키라는 부르심으로 이루어진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도덕적일 수있으나 부처와 예수가 외쳤던 것처럼 습관적 도덕성을 벗어나야 한다. 

죽은 상징들과 결별하기

오늘날 사용되고 있는 그리스도교의 많은 상징들은 오랜 소외의 과정에서 비롯된 결과이며, 예수의 고유한 예언적 실천을 표현하고 있지 못하다. 원래 성찬의 전례는 식사의 형태를 빌어 다가올 하느님의 통치를 예시하려는 시도였다.

오늘날 성찬의 전례는 과거에 대한 일상적이고 상징적인 반복에 불과하게 되었다. 율법적이고 사회분리적인 당시의 유다교에 대한 저항이었던 성찬의 전례가 순종과 체념의 상징으로 변화되고 말았다.

우리는 과거를 재해석하는데 있어 너무 편협하지 않아야 하며 보다 좋은 사회를 창조하기 위하여 애쓰는 민중들의 숨겨진 세계와 잠재의식에서 우러나오는 저항과 희망의 새로운 힘에 열려 있어야 한다.

창조적인 문화운동

새로운 공동체는 그들의 갈망을 역동적이고 창조적인 문화운동으로 실현시켜 나가야 한다. 이러한 문화운동을 통하여 보통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할 권리와 가치관 형성의 주인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운동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닌다.

비판

예수의 제자들은 기존의 문화에 대하여 비판적 안목을 가져야 하며 하느님의 통치에 대한 믿음을 이 비판의 기준으로 삼는다.

사회의 여러 진보적인 운동과 협력하며 제자들은 기존문화의 수많은 허위에 대항하여 끈질긴 싸움을 전개해야 한다. 예를 들면 상품교환의 수단으로 전락된 언어의 가치저하, 이익추구를 위한 과학의 오용과 그 결과로 나타난 땅, 공기, 물의 오염, 인간과학의 물질화와 철저한 개인주의의 예찬, 상품생산에 봉사하는 예술가와 예술가들의 야합, 성의 착취와 격하된 여성들, 불의한 구조를 합리화하는 수단으로서 종교의 이용, 개인주의와 개인이익 중심의 도덕관, 침략과 무력의 미화, 인간요구의 획일화와 조작 등.

이러한 죄악에 대한 과학적 비판도 자유롭고 자기창조적인 새로운 문화형성에 우선적으로 필요한 부분이다.

아름다운 창조

비판과 분석은 지식인들에게 매력적인 작업이다. 지식인들은 비판을 좋아한다. 그러나 인간은 인생의 의미를 감각적인 형태로 관조할 필요를 느낀다. 그러므로 이와 관련된 창조적인 실천이 요구되는 것이다.

상품생산문제: 하느님의 창조는 인생의 가장 깊은 의미를 드러내며, 돌로 건축이나 조각을, 나무로는 판각을, 색깔로는 그림을, 곡조로는 음악을, 신체움직임으로는 춤을, 말로는 문학을 통하여 의미가 전해진다. 이것들은 모두 근본적으로 인간다움을 드러내는 것이며 인간 실존의 부와 가난, 권력과 영광을 표현하고 있다. 또한 변혁적인 행동으로 도약할 힘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의 잠재의식에 호소한다.

창조력은 자유가 있을 때에만 꽃피운다. 그리고 자유는 예수의 운동이 교의와 예식과 율법과 금기로 질식될 때에 손상된다. 교의와 습관성 도덕관으로부터 자유롭게 된다면 예수의 제자들은 다시 한 번 고유한 창조사업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예수를 인격체로 맞아들이자

정치행동, 비판, 창조 모두는 예수를 인격체로 받아들이는 방법이다. 교의는 예수를 신격화시켰고, 신학은 예수를 개념의 집합체로, 예식은 그를 신 중의 한 신으로 격하시켰다. 뿐만 아니라 예수의 모습은 그리스도교가 이 세상의 지배자와 군주들과 야합함으로써 더욱 손상되고 조각이 나버렸다.

그리스도교 교회가 하느님께 대한 급진적인 회개를 하지 않는다면 아시아인들에게 인격체로서의 예수를 제시하는 과제는 대부분 결단을 내린 제자들의 작은 공동체에 양도될 것이다. 이 공동체들만이 계층의 이익과 교의적 편견에 덮혀져 있었던 복음에 대하여 새로운 해석을 주도해 나갈 것이다.

[원출처] <예수는 어떻게 살았나-그리스도교적 사회활동>
[번역문 출처] <참사람되어>,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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