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의 이름을 하염없이 불러보는 것이 그리움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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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의 이름을 하염없이 불러보는 것이 그리움이라면
  • 김보일
  • 승인 2016.05.17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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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king & Painting
ⓒ김보일

학교 뒤뜰에 배롱나무, 벚나무, 명자나무, 박태기나무, 모과나무, 감나무, 매화나무, 무궁화나무 등 여러 나무가 있지만 아이들은 감이 열려야 감나무인 줄을 안다. 아이들은 먹는 과일은 알아도 먹지 못하는 나무는 알지 못한다. 만에 하나 감나무에 사과가 열리는 기상천외한 일이 생기더라도 아이들은 그 나무가 사과나무라고 생각할 것이다. 어른이라고 해서 다를까.

가문의 이름이 사랑의 걸림돌이었던 쥴리엣은 로미오에게 말한다. 이름을 버리라고. 장미가 장미의 이름을 버려도 그 향기를 잃지 않듯 당신은 당신의 가문의 이름을 버려도 여전히 당신이라고. 이름이 하나의 사물을 지칭하는 기호에 불과하다면 중요한 것은 존재이지 이름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으니 굳이 이름에 연연해 할 필요는 없다. 기호에 불과한 이름을 애써 알려고 드는 자세가 자산(資産)의 아이템을 늘리려는 소유의 태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름을 앎으로써 어떤 대상과 더 친근해지고 싶은 마음까지를 소유의 태도로 낮잡아 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름을 알 때 우리는 그것을 더 잘 들여다 보게 된다. 그냥 별이라고 할 때보다 ‘견우성’이라는 이름을 알 때, 우리는 밤하늘을 더 잘 보게 된다. 구절초와 쑥부쟁이를 뭉뚱그려 국화라고 할 때보다 잎사귀와 꽃의 형상을 구분해 다른 이름을 붙여주는 것은 식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기상학자 루크 하워드는 구름의 성질과 특성에 따라 권운, 측운, 적운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쉼 없이 모양을 바꾸는 대상에 이름이라는 정체성을 부여한 것은 것은 일종의 지적인 혁명이었다.

꽃 이름, 별자리와 구름의 이름, 새와 물고기의 이름, 곤충의 이름…. 이름을 아는 것, 그것이 과학의 시작이고, 예술의 첫걸음이 아닐까. 어떤 이의 이름을 하염없이 불러보는 것이 그리움이라면 사랑의 시작도 이름의 언저리에 있다.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며 나는 내 깊은 골짜기에서 울리는 메아리를 듣는다.


김보일
배문고등학교 교사
<나는 상식이 불편하다>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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