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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로메로, 세상을 향한 표지Oscar Arnulfo Romero y Galdamez

이즈음에 나는 “우리의 잘못을 보지 마시고 우리 교회의 믿음을 보시어”라는 미사예식의 구절을 돌아본다. 왜냐하면 우리자신의 약함과 실패에도 불구하고, 또한 우리의 육체적 감정적 문제들과 짜증스러운 습관에도 불구하고, 이따금 우리들이 애덕을 실천하고 옳고 정의로운 것을 행하며 서로 사랑하도록 항상 영적으로 들어 올려지기 때문이다. 감정은 표면에 있는 것이고, 그리스도인은 감정을 넘어 마음속의 가장 깊은 평온과 쉼을 바라보라는 초대를 받고 있다. 

오스카 로메로, 약함에서 우러나오는 힘

엘살바도르의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의 서거 25주기를 기념하면서 나는 이런 말을 하고 있다. 그분은 다른 많은 사람들보다도 더 강렬하게 바오로 사도의 “약함 속에 있는 힘”이라는 격언을 생각나게 만든다. 

로메로 대주교를 아는 사람들은 그분의 초기 강론들이 별로 감동적이거나 단호하지 않으며, 용모도 뛰어난 점이 없었다는 점에 동의한다. 뿐만 아니라 그분은 겉으로 보기에 신심이 두터운 자세를 취했는데, 그래서 완고하고 너무 신앙이 깊은 것 같아 현대비판가들의 밥이 되고 특히 성직자의 냄새가 물씬 나는 모습이었다.

그분은 키도 크지 않았다. 그래서 카리스마가 있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비록 엘살바도르의 수많은 가난한 이들에게 큰 연민을 갖고 있었으나, 처음에는 가난한 이들의 상관이나 지주들 심지어 교회지도자들에 대해서도 그다지 비판적이지 않았다. 당시 교회 지도자들은 우아한 생활을 더 선호했고 라틴아메리카 역사상 가장 잔인한 독재자들과도 기분 좋은 대화를 나눌 정도였다. 

그렇다고 해서 로메로 대주교가 특히 1970년대에 엘살바도르에 확연하게 퍼져나가고 있었던 공포의 상황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낮은 임금의 소작농민들과 상류층 지주들 간에 연결을 짓는 것이 좀 시간이 걸렸다는 뜻이다. 사실, 그분의 보수적인 겉모습, 로마에서의 교육, “규칙에 따르는” 태도 등은 1977년 대주교로 처음 임명되었을 때 그분 자신에게 도움이 되기도 했다. 왜냐하면 엘살바도르 국토의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었던 소수의 가문들이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소문난 “진보파”보다 로메로가 한없이 그들의 입맛에 맞는다고 여겼다.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

주교의 회심, 그리고 쐐기풀 같은 교회 사명의 자각

1979년 친구와 함께 라틴아메리카를 방문했을 때, 나는 먼저 멕시코의 푸에블라에서 열렸던 라틴아메리카 주교회의에 참석했고, 그 참에 알고 있었던 한 신부를 만나러 엘살바도르로 갔다. 이 신부는 1970년대의 격동기에 수차례 죽음의 위협을 받았다. 그 때 로메로 대주교는 마침내 현실 상황을 파악했다는 평가를 얻고 있었다. 그는 처음 취임했을 때 2년 동안 보여주었던 안전한 주교의 모습이 아니었다. 우리는 푸에블라 기자 회견에서 먼저 그분을 만났다. 그는 이미 엘살바도르뿐 아니라 라틴아메리카의 비참한 상황에 대해 교회가 분명한 목소리를 내고자 할 때 없어서는 안 될 자석처럼 다가오는 사람이었다.

로메로 대주교의 변화를 바오로 사도의 ‘회심’처럼 어떤 극적인 사건으로 추측해서는 안 된다. 그림같이 아름다운 엘살바도르의 땅에서 로메로 대주교에게 수많은 사람들의 비참한 삶을 깊이 이해하도록 자극을 준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무엇이 그를 그의 삶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으로 이끌었는가? 그가 지니고 있었던 각가지 모호한 색깔과 그만그만한 모습들 대신에 엄청난 추진력으로 하느님의 계획을 실현하게 만들었던 것은 무엇인가?

대주교가 된 후 몇 년간 일어났던 비극들 가운데, 1977년 3월 동료사제이며 친구였던 예수회의 루틸리오 그란데 신부와 늙은 농부 그리고 한 소년의 비극적인 죽음이 이 거룩한 사람으로 하여금 무릎을 꿇게 만들었다. 그의 영은 분연히 일어났고 세상 속에서 쐐기풀 같은 교회의 참다운 사명을 포착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신비체 안에서도 가장 무시되었던 지체들을 위하여 빵과 포도주가 되는 것이었다. 그들의 운명을 나누어 갖고, 권력에게 의해 사라지고 고문당하며 죽임을 당하는 것이었다. 

죄의 명령보다 양심의 명령에 복종하라

엘살바도르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부분은 로메로 대주교의 유명한 주일미사에 몇 번 참석했던 것이었다. 주일미사는 교구의 라디오 방송에서 전국적으로 중계되었다. 신자들과 비신자들, 심지어 무신론자들까지 교회에 몰려 들었다. 로메로 대주교는 마치 구약의 예언자처럼 빛나는 모습으로 훌륭한 강론을 했다. 미사가 끝난 후 그는 작고 드러나지 않는 모습으로 길고 하얀 여름수단을 입고 대성당 뒤에 수줍게 서 있었다. 이 사람이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강론대에서 엘살바도르 정부와 악명 높은 군대의 불의를 꾸짖고 나쁜 신앙과 잔인한 행위를 일삼는 권력을 엄하게 견책했던 위엄당당한 모습의 그 사람이란 말인가?

로메로 대주교는 미국의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어 엘살바도르에 군사지원을 중지하라고 탄원했다. 그때 엘살바도르는 이스라엘 다음으로 가장 큰 군사지원을 미국에서 받고 있었다. 한편 엘살바도르에서 가난한 사람들, 노동조합 운동가들, 교사들, 교리교사들, 사제들 그리고 결국에는 로메로 대주교도 공산주의자로 몰렸다. 그들의 삶 주변에는 항상 죽음의 부대가 자리 잡고 있었다.

잠시 상상해 보자. 미국 주교들이 한데 모여 미국이 일으킨 앙화들에 대하여 청문회를 열어 듣고 있다고. 한 주교가 미국의 납세자들에게 우리나라 군사정권을 지원하지 말라고, 또한 이라크에서 싸우지 말라고 군인들에게 청원하고, 요한 바오로 2세가 반대했던 대학살에 참가하지 말라고 애원하는 모습을 상상해보자. 1980년 3월 23일 살해되기 하루 전에, 로메로 대주교는 엘살바도르의 군인들에게 같은 나라 국민들을 살해하라는 명령을 거부하라고 외쳤다.

“… 죽이지 마시오! 어떤 군인도 하느님의 법에 반대되는 명령에 복종해서는 안 됩니다. 아무도 비도덕적인 법을 따를 수 없습니다. 지금은 우리의 양심을 회복하고 죄의 명령보다 양심의 명령에 복종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권리와 법의 옹호자인 교회, 인간 존엄성의 옹호자인 교회는 엄청난 증오 앞에서 침묵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용감한 연설로 로메로 대주교가 마침내 희생되었고, 그분이 오늘날 가톨릭교회의 공식적인 성인들 대열에 있음을 알고 있다. 이런 사실이 우리에게 희망과 기쁨을 주지 않는다면, 이 불행한 시대에 우리가 매달릴 것이 어디 있겠는가? 25년이 지난 후 우리는 분명한 약함 속에서, 수줍고 조심성 많은 사람이, 또한 많이 기도하고 교회의 신비스러운 전통에 매달렸던 한 사람이 마침내 이러한 영적인 갈망들을 통하여 강해졌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로메로 대주교 무덤

로메로 대주교는 현대 역사에서 가장 많은 대중들이 모였지만 가장 비극적인 장례식을 치렀다. 이날 군사정권이 보낸 살인자들은 대주교에게 마지막 충성을 표하러 왔던 여러 명의 조문객들을 죽였다. 1980년 성지 주일에 일어난 비극이었다. 

성지주일의 전례는 우리에게 구세주의 죽음을 준비시킨다. 예언자의 말씀들은 모든 절기의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된다. 그리스도를 따라 죽음과 부활의 이 영광스러운 선택을 받아들이는 모든 이들에게 하는 말씀이다: 

“주 야훼께서 나에게 말솜씨를 익혀 주시며 고달픈 자를 격려할 줄 알게 다정한 말을 가르쳐 주신다.”(이사야 50,4)

로메로 대주교의 “잘 익혀진 혀”는 빨리, 쉽게, 또는 슬픔 없이 그에게 오지 않았다. 하느님의 자비에 의한 교육으로, 그리고 엘살바도르에서 오래 고통을 겪은 가난한 이들과 나눈 경험으로 얻어진 것이다. 지친 우리들도 오늘, 정의와 평화를 위하여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기도하자. 

* 이글은 종이신문 <가톨릭일꾼> 2018 10-11월호(통권 15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출처] <Catholicworker>, 2005년 3~4월호
[번역문 출처] <참사람되어>, 2005년 8월호

 

 

[ 가톨릭일꾼 www.catholicworke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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