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공부하며
성인보다 건강한 동물을 희망하는 현대인현대사회에서 깨어있는 교회-2
  • 리차드 T. 노울리스
  • 승인 2018.09.26 15:53
  • 댓글 0

나는 현대문화의 심리적 측면에 초점을 두어 이 글을 쓰고자 한다. 현대문화는 과거에 비해 신앙인에게 큰 도전이 되고 있으며, 이 세계는 급속한 속도로 현대적 존재 양식으로 전이해가고 있다. 전통적 삶의 양식이 현대적인 삶의 양식으로 변화함에 따라 심리적 측면은 더욱 더 현저하게 드러난다. 사실 심리적인 것은 현대적인 것이다. 즉 현대성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심리적 성향이 있는 것이다. 사물을 심리학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이미 전통적 사고방식을 버렸다는 것을 뜻한다.

 

사진출처=pixabay.com

1. 분열된 자아

다원적, 복합적 세계, 그리고 세분화된 세계에 살고 있는 현대인의 심리적 특성은 무엇인가? 전문인, 다시말해 더 크기는 하나 미지의 상태로 남아있는 ‘전체’의 일부분에 전문적 능력을 지닌 사람의 기능은 무엇인가? 내 전문분야를 이야기해 보더라도, 미국 심리학협회에는 임상심리, 경험심리, 환경심리를 비롯해 40개가 넘는 분과위원회가 있고, 각위원회는 서로 다른 전문용어를 사용하며,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를 신봉한다. 공학자, 의사, 변호사 등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이 정신병자인지 개종한 그리스도교 신자인지, 동성연애자인지, 사제인지, 여성인지, 남성인지, 혹은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지 조차도 알지 못하는 평범한 현대인의 심리구조는 어떠한가? 이름으로든 역할로든 어쨌든 모든 사람을 다 알고 있는 통합된 문화 환경을 이루고 있는 전통적 인간의 심리 구조는 우리와는 다르지 않을까

다중적 자아: 봔 덴 베르그는 현대인의 심리구조가 괴테의 파우스트와 같은 이중적 영혼 뿐 아니라 현대의 삶을 반영해 다중적 영혼 혹은 다중적 자아의 특질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그는 <심리학의 원리>라는 책에서 윌리암 제임스(1891)의 말을 인용한다.

“각기 다른 이념을 신봉하는 집단이 있듯이 모든 인간에게는 각기 다른 사회적 자아가 있다. 전통적 신앙교육은 하나의 선택이다: 각기 다른 사회적 자아가 있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종교적 혹은 신앙적 자아도 이 많은 자아들 중 하나이긴 하나, 이 자아는 세분화 되어있으며 대개 다른 자아와 통합되지 않는다. 전통적으로 부모들은 단 하나의 진정한 현실, 즉 신앙적 현실의 테두리 안에서만 자녀들을 교육시켰다. 현대의 부모들은 전통적 신앙 교육을 여러 가지 중 하나의 선택으로 간주한다. 이것은 근본적 차이점이다."

희망은 가장 적절한 덕(德)이다: 신앙인의 삶은 통합적이며 분열되지 않은 존재방식이며, 분열되어 있다는 것은 신앙이 없는 상태라고 나는 생각한다. 희망은 새로운 통합, 재통합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며, 이 희망이 실현되면 현대에 다시 신앙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현대인에게 있어서는 신앙보다는 희망이 가장 적절한 덕인 듯하다. 어쨌든, 현대적 삶의 첫 번째 심리적 특징은 분열에 대한 경험이며 여러 자아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신앙은 존재하지 않거나 세분화되어 인간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전통을 기억하라: 그러므로 이런 상황에서 신앙을 되살리는 길 중의 하나는 인간이 전통을 기억하도록, 또, 개인의 이야기를 보다 폭넓은 문화의 이야기 속에 자리잡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사진출처=pixabay.com

2. 자아의식

현대인 심리의 두 번째 특징은 자아의식이다. 전통사회에서는 어떤 사람에게 아버지, 어머니, 선생님 등의 사회적 역할을 잘 안다고 말하는 것이 칭찬이었다. 당시에는 역할과 인간 자체가 일치를 이루어 한 인간은 자신의 역할을 통해 자신을 표현했던 것이다. 그러나 현대인은 자신의 역할을 잘 수행한다는 말에 모욕감을 느낄 것이다. 현대인에게 있어서는 자신이 된다는 것이 무언가 사적인 일, 즉 사회적 역할과는 분리되는 일을 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자아의식에 대한 이러한 입장은 자발성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물론 자발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자발성이 없는 사람이다. 아무튼 현대에서 자발성은 하나의 목표, 자아의식적 목표가 되는 것이며, 이는 매우 특수한 상황이다.

현대인의 이상: 변화가 일어났다. 과거에는 인간활동의 대상에 관심이 모아졌으나, 현대인은 인간이 어떻게 일을 하는가에 관심을 갖는다. 자신에게서 떨어져서 무엇인가를 하고 있는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현대인의 행동이 매끄럽고 조화롭지 못하다는 의미도 된다. 이러한 습관 혹은 자아의식은 대부분 현대 심리학의 원칙으로부터 파생된 것이다.

현대인의 이상은 영웅이나, 성인의 이상이 아니라 자연적이며 건강한 동물의 이상이다. 즉, 자연성 혹은 자발성에 다시 초점이 모아지며, 인간이 이러한 자발성, 자연성을 의지로 이루어낼 수 있다는 환상이 생겨나고 그 결과로 자아의식 위주의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다.

자발적 신앙체험: 분명히, 자아의식이 신앙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사실 인간은 자아를 벗어나 세계를 향해야 한다. 만약에 인간의 관심이 자아에만 국한된다면 인간은 타인에게 도움을 줄 수 없을 것이다. 자아의식을 지닌 현대인이 어떻게 자발적 경험 그 자체를, 좀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자발적인 신앙을 체험할 수 있을까?

우리가 분명히 알고 있는 점은 자아의식과 공포에 대한 경험이 있으며 그 공포는 어쨌든 약화되어야 하다는 사실이다. 편한 분위기 편한 태도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대적 상황에서 이것이 어떻게 가능해질 수 있을까?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도 모르며, 우리가 두려움을 느낀다는 사실 조차 모를 때가 있다.

 

사진출처=pixabay.com

3. 죽음에 대한 부정

현대인의 심리의 세 번째 특징은 죽음과 인간 한계에 대한 부정이며, 이에 수반되는 무신론적 경향이다. 이러한 현대적 경향을 우리는 반 금욕주의적, 심리적 태도라고 정리해 볼 수 있다. 종교 혹은 신앙은 무덤에서 시작한다. 즉 죽음의 신비를 이해하려고 하는 순간에 시작한다라는 말이 있다. 현대인이 종교를 갖지 않는 것은 죽음을 벗어나고 부정할 방법이 많기 때문이다.

한계에 대한 부정: 마지막 한계인 죽음에 대한 부정과 함께 다른 한계에 대해서도 비슷한 태도가 보인다. 즉 인간은 자신의 가능성을 제약하는 것으로부터는 무조건 벗어나야 한다는 태도이다. 앞에서 말한 자신의 이야기와 전통이 현재의 가능성을 제약하기 때문에 잊어버린다는 것도 이와 같은 태도에서 연유한 것이다. 그러나 현대인은 모든 제약을 제거하려 함으로써 사실은 자신의 가능성을 저해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에릭 에릭슨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 국가, 계급, 카스트의 일원이라는 것은 성(性), 혹은 인종에 속해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전혀 본연의 자아의 모습이 아닌 것들을 통합해 놓은, 개인의 신원을 이루는 한 요소에 불과하다.

전혀 본연의 자아의 모습이 아닌 것은 한 개인이 궁극적으로는 독특한 본연의 자아를 확실히 이룩할 수도 있으리라고 희망하는 삶의 공간을 창출해낸다. 그리고 나서는 그 독특한 본연의 자아를 좀 더 포괄적인 인간성으로 변화시킨다."

태도의 변화: 이러한 부정의 이면에는 안락감에 대한 추구가 있다. 그러나 고통과 죽음이 인간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일 때 신앙과 희망이 가능해진다. 리프가 <치유적 사고의 목표>라는 부르고 있듯이 최대의 목표가 기분 좋게 여겨지는 것일 때에는 근본적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리프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좀 더 높은 가치의 목표를 추구하지 않고, 그저 안락감이 최대의 목표가 됐다는 것은 우리 문화 전체가 근본적으로 변했음을 시사하는 일이다. 절망과 희망이라는 과거의 양식으로는 더 이상 표현할 수 없는 인간환경이 조성됐음을 알려주는 일이다."

그리고 나는 옛 방식의 신앙으로는 이러한 변화를 더 이상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여기에 덧붙이고자 한다.

고통과 고난: 정상적 삶으로부터 떨어져 나갔다고 느끼며 고통과 고난에 대해 과잉반응을 보이는 한편 현대인은 더 큰 고통을 추구하기도 한다. 이야말로 현대 삶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소비자로서의 인간: 현대 삶의 이러한 모형은 맥킨타이어(1981)가 지칭한 ‘부유한 심미주의자’(소비로 소비되는 소비자)에서 잘 나타난다. 이는 현대사회의 3대 이상형 중에 하나이다. 이러한 인간과 세상과의 관계는 이것, 저것, 심지어는 이 신앙 저 신앙을 고르는 슈퍼마켓에 있는 인간에 비유할 수 있다. 여기서 자유는 가장 많은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정의된다. 이런 사람은 이것저것 고를 것은 많이 있으나, 신앙이 요구하는 것, 즉 자신도 선택의 대상이라는 점은 완전히 잊고 있는 것이다.

신앙을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신앙 이후의 시대에 있어 신앙과 문화를 통합시키는 일은 자못 심각한 문제를 제기한다. 현대사회는 소비자 문화를 향해 치달리고 있으며, 이 현상은 신앙에 큰 도전이 되고 있다. 죽음을 부정하고, 고통을 일시적 기능 상실로 여기며, 마음 내키는 대로 결정을 내리는 문화가 팽배해 있을 때에는 신앙을 말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한 인간이 삶의 과정을 통해 큰 위기에 직면하기 전까진 신앙에 대해 열린 마음이 될 수 없듯이, 문화에 있어서도 위기가 있어야 신앙이 가능해진다. 하지나 우리가 그런 위기를 희구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사진출처=pixabay.com

4. 기술적, 조작적 태도

신앙과 문화의 통합에 관련되는 네번째의 심리적 측면은 현대인의 기술적, 조작적 태도이다. 조작적, 기술적 방법을 사용하여, 인간은 사물, 혹은 다른 인간을 지배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우리 선조들이 나무를 베거나, 야생동물을 길들일 때에 바로 이 태도, 다시 말해 자연에 기술을 적용시키는 방법을 취했던 것이다.

한편, 이 태도를 취하면서 인간은 친구를 만들고, 자신의 실체를 인식하며, 정신을 풍부하게 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결여되어 있는 점은 세상과 타인에 대한 이해력이다. 이 태도는 ‘원하는 것은 가져라’라는 사고방식을 그 근저에 깔고 있기 때문에 소비지향적, 심미주의적 입장과 잘 부합한다.

기술의 문제: 하지만 신앙에 있어서 이러한 태도는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신앙까지도 포함, 모든 것을 기술 아래 종속시키기 때문이다. 신앙 역시 하나의 상품으로 전락해 버린다: 주요문제는 “그것이 무엇인가”가 아니라 “내가 그것을 어떻게 취득할 수 있는가”가 되어버린다. 따라서 현대인에게 있어, 묵상이란 타인의 존재와 현존을 느끼고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단지 혈압을 낮추어주고 안락감을 유지시켜주는 한 방편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런 식의 묵상은 묵상이 아니라 기술적 태도를 취하고 있을 따름인 것이다. 기술적 태도로 하는 일은 무엇이든지, -책을 쓰든 산책을 하든, 기도를 하든,- 단지 개인의 효율성 증진과 실력향상을 위한 작업일 뿐, 저술, 산책, 기도, 그 자체는 아니다. 신앙행위를 함에 있어 우리는 기술과 기술적 태도를 초월하여야만 한다. 이것은 현대인에게 있어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5. 개인주의

현대인의 다섯 번째 심리적 측면은 보다 전통적인 문화에 속해있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분명한 측면이다. 즉, 현대인에게는 개인주의가 팽배해있으며 공동목표를 추구하는 노력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전통문화속의 사람들의 체험은 항상 “우리”속의 체험이다. 반면 현대인들의 체험은 항상 “나”의 체험일 뿐이다. 리프는 이러한 새로운 태도가 치유적 현대문화와 더불어 어떻게 부각되었는지에 대해 서술한다.

"프로이드에 의하면 건강한 공동체의 경우 죄의식으로 함께 뭉칠 수 있었다. 그 모습은 매력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대인은 자신의 삶을 공동체의 테두리 안에 설정해야 한다는 것이 숨막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현대인들은 자신들의 삶을 고양시키는 과정에서 이용할 수 있는 한 도구로 공동체를 이용할 뿐이다."

투신에 대한 현대의 문제: 개인주의적 경향은 신앙에도 문제가 된다. 개인주의로는 자신을 초월하여 타인에게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신념에도 영향을 미친다. 어떠한 일을 신념을 갖고 한다는 것은 “나”중심의 사고에서 “우리”중심의 사고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신앙은 투신 없이는 성립되지 않는다. 투신이 없다면 그것은 이미 신앙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문제가 있다. 현대인은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어떤 일에 전력으로 투신하기를 꺼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정리>

전통문화: 전통문화에서 인간은 사회적 역할 및 공동체와 통합되어 있다. 자신에 대해 정직하며, 세상과 타인에 대한 경험은 현대에 비해 덜 복잡하다. 죽음과 고통을 대하는 데에는 의례가 있으며, 삶에는 당연히 희생이 수반되며, 삶의 과정이 쉬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보편적으로 공유된다. 자연, 환경을 경외하며 공동체의 가치와 역할에 대한 임무가 철저히 수행된다. 이런 문화적 상황 속에선 신앙이 저절로 도출된다. 즉, 신앙문화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현대의 생활양식: 그런데 현대적 생활양식이 밀어닥치면서 전통문화의 가치는 사라져갔다. 사회가 점점 복잡해짐에 따라, 인간은 자신이 여러 개의 개별적 자아로 분열됨을 경험한다. 역사상 최초로 현대에 이르러 인간은 주체성 위기를 경험하며 완전히 다른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그 이전의 삶의 양식을 그리워하면 할수록 소외감은 커지기만 하고, 참가자가 아닌 관찰자의 위치에 놓이게 된다. 첨단의 기술과 그 기술이 가져다주는 최신의 소비용품을 가능한 한 최상의 것으로 획득하는 데에 골몰한다. 고대의 금기를 벗어던져버리고 난 현대인은 이제 공동체에서 떨어져 나와, 주변의 다른 현대인과 함께 원하는 것을 소유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결론: 여기서 내가 도출한 논리가 너무 단순할지도 모른다. 누군가 현대인 중에는 전통적 가치를 잃지 않고서도 현대성을 획득한 사람도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예외일 뿐 법칙은 아니며, 또한 종국에는 소비자 문화에 굴복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 그러한 반론에 대한 나의 생각이다.

[출처] <현대사회에서 깨어있는 교회>, 참사람되어 2013년 1월

 

[ 가톨릭일꾼 www.catholicworker.kr ]

<가톨릭일꾼 기사는 상업적 용도 아니라면 출처를 밝히고 누구나 퍼갈 수 있음>

리차드 T. 노울리스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