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에 무슨 약 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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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에 무슨 약 탔나?
  • 차익수
  • 승인 2018.08.15 02:1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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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두부를 만든다. 그냥 두부가 아닌 끝내주는 두부를 만든다. 이건 자화자찬이 아닌 남들이 하는 소리다. 정말이다. 울 동네 어르신 한 분은 무슨 약을 탔길래 이젠 딴 두부를 못 먹게 만들었냐 하신다. “우리 남편이 이 집 두부 아니면 안 먹어”, “우리 딸이 이 집 두부만 찾아요!”, “아이들이 두부를 엄청 집어 먹어요.” 이 말은 유치원 선생님이 전하는 말이다. 사람들이 이렇게 좋아하는 두부는 마르쉐의 인기농부팀 ‘아빠맘두부’다. 대학로에서 열리는 마르쉐 도시 장터는 농부가 재배한 친환경 농산물, 예술가의 작품, 그리고 손맛이 담긴 요리 등을 나누는 자리다. 이곳에서 아빠맘두부는 완판 두부로 유명하다.

겉으로 내세우는 건 아빠의 맘을 담아 만들었다고 하지만 아빠 맘대로 만드는 두부라고 생각해도 뭐 별 틀린 건 아니다. 두부 사러 온 엄마랑 같이 온 어떤 아이는 “엄마, 근데 아빠맘두부는 아빠‘만’ 먹는 거야?” 해서 배꼽을 잡게 했다.

잠시 각설하고, 내가 이놈의 두부를 만들기 전에 무엇을 했냐 하면 그전 7개월은 보험설계사였다. 그전 6개월은 젖소 목장 일꾼이었고 그 사이사이 11개월은 소파에서 뒹굴뒹굴하거나, 책을 보거나, 사람들 꼬셔서 술 마시기를 했다. 그전에는 21년 동안 아이티 기술자로 일하며 공장 자동화, 방송국 자동화, 이동통신기지국 자동화를 해주고 우리나라 민방위 경보시스템을 구축하여 행자부장관표창도 받아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카타르, 아랍에미레이트 등에 우리나라 경보시스템을 소개하러 다녔다.

아이티를 그만두기 바로 전에는 전파감시 고도화 사업을 하며 북한에서 쏘는 전파 잡아내기, 해상, 항공비상신호를 저장하는 일들을 했다. 대학생활 전에는 구로공단에서 고등학교 졸업후 선반, 용접, 배관 등 기계가공 일을 했다. 그러고 보니 참 여러 가지 일들을 했지 싶다. 그러다가 다시 목공 일이나 농장 일, 상하차 일등 몸 쓰는 일이 없나 하고 알아보다가 어찌어찌해서 동네 사람 몇몇이 “두부를 만들자”고 의기투합해서 지금 6년째 두부를 만들고 있다.

앞에 노동자라고 소개했는데 실제 내 두부 일에는 민주노총, 노동조합 같은 그 ‘노동’은 별로 없다. 그야말로 순수 근력 노동만 있을 뿐 노동, 자본, 소외, 갈등, 파업, 투쟁 뭐 그런 것들은 없다. 대신 두부라는 게 어찌 만들어지고 어떤 두부가 진짜 두부인지 이야기를 들려줄까 한다. 나도 그랬고 많은 사람들이 두부는 맛이 없는 것, 맛이 나쁜 게 아닌 무(無)맛, 그래서 양념으로 맛을 내어 콩 단백을 섭취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정말 맛있는 두부를 만나면 ‘야, 이거 옛날에 먹던’, ‘할머니가 해 주시던’이라는 말을 하게 된다. 맞는 말이다.

아주 옛날 두부 만들 적에...

옛날에 할머니들이 두부를 만들 때는 콩을 불려서, 갈아서, 끓여서, 간수를 쳐서 만들었다. 그럼 뭐 지금은 다른 방법으로 만든단 말인가? 맞다. 다르게 만든다. 불리고 가는 건 같다. 손으로 맷돌 돌리는 대신 모터 달린 맷돌을 쓰는 차이 정도고 끓이는 프로세스. 여기서 확 달라지는 거다. 많은 두부 공장이 스팀으로 끓인다. 왜? 탈 일이 없으니까. 삶고 찌는데 타는 거 봤나? 이제 감이 오시나? 숯불구이와 수육의 차이인 거다. 뭐 수육도 나름 맛있지만 두부에서는 차이가 확연히 다르다.

또 하나의 차이는 첨가물이다. 콩물을 끓일 때 거품이 많이 나는데 자꾸 넘치므로 걷어 내야 하는데 많은 집들이 규소수지라는 소포제를 써서 편하게 간다. 그리고 간수를 치고 난 후에 순두부가 생기는데 이 순두부의 상태가 항상 일정치 않다. 응고제를 넣어 저어주는 작업을 간수를 친다고 한다. 간수는 소금 가마니에서 빠진 물을 말하는데 이것을 주로 두부 응고제로 썼기 때문에 간수가 두부 응고제의 통칭이 되었다. 정종이 청주의 대명사가 되고 포클레인이 굴착기, 호치키스가 스테이플러, 바리캉이 이발 기계의 통칭이 된 거와 같다. 보통 시중 두부 응고제로는 바닷물, 간수, 화학 응고제가 쓰인다. 우리 두부는 정수물과 해양심층수를 사용하여 불로 끓여가며 거품을 건져내며 만들어서 고생스러우며 항시 주의, 집중을 기울여야 한다.

아무튼 순두부의 상태는 물렁하거나 뻑뻑하거나 딱 좋거나 하는데 이 상태에 따라 순두부를 잘 부수고 물을 빼고 누르는 힘을 조절해서 작업하는데 이것이 귀찮으니 탈수제, 경화제, 유화제, 계면활성제, 점도 강화제를 써서 처리한다.

즉 너무 물컹하면 염화칼슘을 넣어 물기를 빨아 먹고 아이스크림이나 젤리에 넣는 점도 강화제로 탄력을 주는 것이다. 이러니 콩 본연의 맛이 나는 두부가 될 일이 없다. 정말 조그만 시골집의 할머니가 끓이는 손두부는 몰라도 좀 유명하다 싶은 큰 식당의 두부는 대부분 이럴 것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이 맛있다고 할까? 아마 그건 맛있다고 느껴지는 것일 게다. 산 좋고 물 좋은 시골집인 데다 배도 고프고 막 뺀 따끈한 두부니까. 정말 맛있는 두부는 차가운 상태에서 아무것도 가미하지 않고 그냥 먹었을 때 맛있는 두부다.

두부, 대표적 슬로우푸드 

두부는 그야말로 슬로우푸드다. 우선 열두 시간 정도를 불려야 한다. 그리고 깨끗이 씻어서 맷돌에 간다. 그러고 나서 한 판 단위로 콩물을 끓이는데 조금씩 부어 가며 끓여야 한다. 보통 15분 정도 걸린다. 다 끓인 콩물은 15분 정도 식힌다. 간수를 치고 다시 15분 정도 지나서 압착성형기 틀에 부어서 앞서 얘기한 순두부 조절 작업을 한다. 압착을 하고 적당한 두부의 탄력이 나오기까지는 평균 20분 정도 걸리는데 상태에 따라 더 걸리기도 한다.

성형기에서 나온 두부는 냉각기에서 20분 정도 센 열을 식힌다. 그러고는 냉장고에서 12시간 정도 더 있은 후에 잘라서 포장을 한다. 이렇게 두부를 식히는 이유는 공기 중의 바실러스 곰팡이가 두부를 공격하여 찐득해지게 하는데 청국장이 되는 발효 과정 같은 거다. 부패가 아니므로 큰 문제는 없지만 식감이나 질감이 달라지므로 꼭 냉각을 시킨다.

두부 만드는 일 외에도 식강(들통을 뜻함) 설거지, 면포 빨기, 바닥 청소, 콩나물을 씻고 담느라 손가락, 손목에 염좌를 달고 살고 물량이 많은 날은 열두 시간을 앉아 볼 틈도 없이 일해야 하는 등 빡센 일이긴 하지만, 이전 직업에서는 누릴 수 없었던 육체노동의 상쾌함과 건강한 먹을거리를 공동체에 제공한다는 기쁨과 자부심으로 이 노동을 한다.

 

차익수 님은 두부 만들고 배달하고 책 읽고 노래하고 놀기를 좋아한다.

소문 나도 팔려야 먹고 살지

두부 일을 시작하고 맛과 품질, 그리고 우리의 철학이 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여기저기 매체에 소개되기 시작했다. 좀 크게 탄 것이〈6시 내고향〉,〈이웃사이다〉,〈시사매거진 2580〉이었는데 앞의 두 프로그램은 마을공동체 이야기이고, 뒤엣것은 사회적경제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는데 그닥 매출에 효과는 없었다(매출에 도움이 되는 것은 구정홍보지이다. 구정홍보지에 실리자, 간판사진만 보고 전화가 빗발쳤는데 뭐 그도 잠시뿐이었다).

리포터나 피디들이 묻고 듣고 싶어 하는 답들은 독자들도 비슷하겠지만 뻔한 것들이었다.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느냐? 그러면 건강한 먹을거리를 마을 공동체에 제공하고 이윤을 환원하고 어쩌구 너무 식상한 문답들이 이어져서, 언젠가 내가 하는 책읽기 모임을 라디오에서 취재를 나왔을 때 내 소개 중에 “첨가제를 살 돈도 없구요. 파는 데 찾기도 귀찮아서요”라고 답해서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맛 좋고, 믿을 수 있고 철학 좋으면 뭐하나 팔아야 먹고 살지 않겠나. 현재 판로는 식당과 생협매장 등에 정기공급하고 정기배달 주민들이 들쑥날쑥하긴 하지만 일정하게 있다.

두부가 아무리 맛있어도 몇 모씩 먹는 건 힘들다. 내 생각에 비건이나 채식 위주가 아닌 다음에는 일주일에 한 모면 적당치 싶다. 해서 배달 가구수가 많아졌으면 하는 게 바람이다.

재미 쏠쏠 배달 일 

두부 만드는 일에 못지않게 재밌는 것이 배달이다. 나는 스쿠터를 타고 배달을 하는데 은평구는 아직도 옛 좁은 골목과 단독들이 많기 때문에 스쿠터로 배달을 해야 승용차에 비해 반 이상의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그래서 아파트 단지나 매장은 승용차로 하고 갈현, 구산, 대조, 신사, 역촌동은 스쿠터로 한다. 배달을 가면 대개들 부재중인데 아이스팩 처리하여 우유주머니나 우리 스티로폼 박스에 넣어주고 온다. 동네활동을 하며 알게 되거나 성당교우들이 많아서 만나면 소식도 듣고 전하고 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어느 날은 노부부가 사는 집에 무거운 짐을 옮겨야 하는데, 어쩔 줄을 몰라 해서 다 처리해 주기도 했다. 아랫집 폐암 투병중인 이웃에게 우리 순두부를 요리해서 주시던 어르신 댁이 잠시 뜸하다가 주문이 와서 갔는데 “요새 뜸했죠? 그 사람이 이제 이 세상에 없어요” 해서 잠시 눈물이 핑 돌았다.

개하고도 친해진다. 첨에는 그리 짖어대던 놈들이 이젠 꼬리를 친다. 비글잡종인 어떤 놈은 나랑 둘이 있으면 눈만 끔뻑 “왔냐?” 하다가도 주인이 나오면 왈왈 짖어 밥값 하는 척하기도 한다. 골목길 담벼락 아래틈에 피어나는 민들레, 애기똥풀들과 인사를 나누는 것도 배달길에서 맛보는 즐거움이다.

이런 소소한 기쁨, 즐거움, 이별도 있지만 아파트촌의 삭막함들도 있다. 출입의 번거로움은 그렇다 쳐도 많은 곳에서 보게 되는 “최저시급 인상으로 인한 경비의 해고, 식사시간의 무급화로 그 시간 동안의 서비스 중단” 동대표연맹차원에서 하기라도 한 듯 똑같은 문구들이 아파트 곳곳에 붙어 있다.

가구당 관리비 몇천 원 인상을 아끼려고 짐승같은 짓들을 하는 사태를 보고 있노라면, 이런 데는 우리 두부를 먹을 자격이 없지. 확 배달을 거부할까 하는 마음이 치밀어 오른다.

두부 노동자의 생활을 얘기해보았다. 망하기 전까지는 체력이 되는 한 70살까지는 할 생각이다. 흰머리 휘날리며 오토바이 타고 두부를 배달하고 일 끝나면 노래를 하고 책 읽기가 있는 삶 좋지 않은가?

70 이후에는 오토바이로 통일된 나라를 여행하고 일본도 다니고 유럽, 남미를 달리는 꿈을 꾸어본다.

Dreams come true!

[출처] <맘물림> 2018년 6월 통권 제42호, 신앙인아카데미

차익수
다윈주의자이나 신이 된 예수를 따르며 노래하기 좋아하는 동네바보. IT 엔지니어로 일하다가 저녁이 있는 삶을 지향하여 퇴직한 후 지금은 은평구에서 아빠맘 두부를 만들며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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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2019-06-05 00:26:49
바실러스는 공기중에서 유래하는 것이 아니고 농산물 자체에서 유래합니다. 곰팡이는 공기중 포자로 유래가 가능하겠죠. "바실러스 곰팡이"가 바실러스와 곰팡이를 이야기 하시는 거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