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온 낙원은 낙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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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온 낙원은 낙원인가?
  • 유정원
  • 승인 2018.08.08 15: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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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릴 때부터 작은 내방에 누워 뒹굴거나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시간을 잊은 채 혼자 멍하게 있는 것이 좋았다. 음악을 틀어놓고 망상에 빠져 있거나 만화책을 숨겨놓고 보면서 지낸 하루는 은밀한 즐거움으로 더할 나위 없이 충만했다. 매일매일 그렇게 보냈으면 좋겠다고, 학교 따윈 가고 싶지 않다고, 다른 건 다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대다수 사람이 그렇듯 주어진 세상 속에서 적응한 척 살았다. 다행히 집안일에 열중하시던 어머니와 다반사에 무심하시던 아버지 덕에 집안에서는 큰 압박감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한 반에 60명이 넘던 학교생활은 춥거나 덥거나 떠밀리거나 지루했고, 친구들은 가깝다가도 먼 타인으로 돌변해서 나를 겁먹게 하곤 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갇혀 있는 듯한 심정으로 돌파구를 찾지 못한 채, 하루가 일 년처럼 멀고도 길었다.

 

사진출처=pixabay.com

세상에 별로 부러울 게 없는 팔자인데...

대학에 다니며 그나마 자유를 느꼈다. 마음에 드는 과목과 교수를 선택하여 강의를 듣는 것이 좋았다. 어떻게 답안지를 써야 학점이 좋은지는 졸업할 때까지도 헷갈렸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흥미진진한 종교들의 세계가 마냥 재미있었고, 궁금했던 것을 알게 되는 기쁨이 취업보다 학업을 택하게 했다. 운 좋게도, 나의 무지함과 모자람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가르쳐주신 스승님을 만난 것은 내 인생의 기적이었다.

그렇게 공부에 기대어 30년을 지내왔다. 물론 나는 연구에 전념하는 학자라기엔 어설프기 짝이 없다. 앞으로 연구해보고 싶은 주제가 화수분처럼 솟아나는 창의성도 그다지 없다. 내 전공 분야에서 빼어난 성취를 이루지도 못했다. 그래도 나는 종교학과 신학이라는 조금은 특이한 학문에 계속 접속하며 나만의 연구를 하나씩 해나가고 있다. 선후배 연구자들과 교류하면서 논문을 쓰고 번역을 하고 강의도 한다. 서른 즈음 가정을 꾸려 6~7년 두 아이의 육아에 전념하던 공백기를 빼면, 줄곧 이 길에 서 있었다.

이제 나는 일일이 챙겨주고 돌볼 아이도 훌쩍 성인의 대열에 섰고 직장에 잘 다니는 남편을 둔 자유부인이 되었다. 객관적으로 보건대, 세상에 별로 부러울 게 없는 팔자다! 그런데 왜 나는 이 느슨한 중년의 날들을 즐기지 못하고, 되도록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강박에 쫓기는 것일까? 혼자만의 무궁한 상상과 망상에 빠져 한껏 날아올랐던 어린 날처럼, 아무 간섭이나 눈치 볼 필요 없이 내 멋대로 살아도 좋은 낙원에 있는데 말이다.

현재 나는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이 생겨도 버틸 수 있는 한 끝까지 미루다가, 결국 기한을 넘기고서야 끙끙대고 있다. 노는 게 제일 좋아도 할 일부터 먼저 해치우던 나는 사라졌다. 미루는 법 없이 계획대로 일하다 보면, 어느새 탄력이 붙어 마감 전에 손을 털던 그녀는 종적을 감췄다. 갱년기 초기 증상으로 밤잠을 설치고, 새벽까지 만화에 빠진 아줌마는 최소한의 일만 겨우 처리하는 게으름에 잡혀 있다.

성실하고 정직하게 노력한 끝의 보람과 성취는 얼마나 오래가는가? 몸속의 진액을 쥐어짜 내는 듯했던 육아의 결과는 무엇이었나? 어떤 보답을 바라고 살아온 것은 아니었으나, 폭풍처럼 덮쳐온 상실의 날카로운 충격들이 ‘이제 더 움직일 필요 없다, 그냥 편한 대로 지내면 된다’고 말해준다. 그날의 선명한 기억이 떠오르면 여전히 딱딱하게 굳어 애써 고개를 휘젓는 나는, 상실의 상처에서 도망치는 걸까 아니면 죽음 앞의 무력함을 부정하는 걸까? 그 무엇보다 더는 잃고 싶지 않다는 집착에 옭아 매여 있는 것은 아닐까?

 

사진출처=pixabay.com

종교학과는 구조조정 중 

학위를 받은 후 가톨릭대 종교학과에서 ‘세계종교이해’를 강의해왔다. 오강남 선생님의 <세계종교 둘러보기>를 길잡이로, 인도 종교들인 힌두교-불교-자이나교-시크교, 유일신 종교들인 조로아스터교-유대교-그리스도교-이슬람교, 동아시아 종교들인 유교-도교-신도-동학을 다룬다. 한 학기 동안 이 종교들을 모두 소개하려면 엄청 바쁘지만, 다양하고 풍요롭고 의미 깊은 종교들의 가르침과 역동성을 학생들과 공유하는 일은 매번 새롭고 재미있다.

현대인에게 밉상으로 낙인찍힌 종교들의 참모습을 알려주며 종교학 연구를 진작시키는 일들은, 왜 번번이 그 학문성과 현실적 유익함에도 장벽에 부딪혀왔을까? 내가 종교학에 입문한 서강대든 강의를 하는 가톨릭대든, 왜 학교의 주인이라 자처하는 이들은 다원화된 사회에서 타자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교육의 중요성을 하찮아하며 내팽개치는 것일까?

올해 봄 학기를 맞은 지 며칠 만에, 종교학과는 핵폭탄을 맞았다. 전국 대학들이 구조조정에 들어갈 것이고, 취업에 불리한 인문학 쪽이 첫 순서가 될 것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가톨릭대 종교학과에서 유일했던 종교학 전공 교수가 은퇴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학교 측은 일방적으로 종교학과 학생들에게 ‘2019년 신입생 미모집’을 주제로 한 공청회에 참석하라고 알려왔다.

오호통재라! 이제 남은 종교학과 교수는 내년 은퇴, 후년 은퇴를 앞둔 구약과 신약성서 전공자 두 분뿐인데, 그중 교수 신부는 2009~2016년간 총장으로 재직하면서 오히려 종교학과를 방치했고, 교수수녀는 내년부터 종교학과 신입생을 받지 않겠다고 자진해서 미리 학교에 요청했다.

더 지독한 것은 지난 20여 년간 가톨릭대 종교학과 학생들이 종교학 심화 과목 수강을 하지 못해서, 취업을 위해서든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서든 그들이 전과한 것을 마치 그들의 기회주의적 속성과 종교학의 무가치함으로 몰아붙이는 듯한, 학교 측의 태도였다. 이 몰상식하고 반교육적인 상황에서, 종교학을 공부하려 대학원에 입학한 학생이 지난 1년 동안 강의와 지도해줄 교수가 없어 방황하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돌덩어리가 심장에 쌓였다.

서강대 학생으로서 종교학과 교수님들이 예수회 신부들에게 당하던 수모를 지켜보던 것과는 또 다른 아픔이 나를 삼키려 했다. 내 아이를 잃을 때 아무것도 못 하고 굳어가던 나를, 종교학과를 없애려는 현실 앞에서 또다시 겪어내는 일은 끔찍함 자체다.

종교학과 학생들이 내 아이들처럼 안타깝고 미안하고 짠했다. 좀체 나서지 않는 나는 종교학과 대학원 졸업생과 재학생들에게 연대를 호소했다. 그 결과 20년이 넘도록 서서히 없애오던 종교학과 학부를 되살릴 수는 없었지만, 대학원은 존속하기로 했으니, 한국의 단 세 개 대학교에만 있는 종교학과는 목숨만 간당간당한 실정이다.

50년 동안 나는 좋을 대로 끌린 것에 심취하며 살아왔다. 경쟁과 비교에 둔감하고, 뭔가를 꼭 이루겠다는 욕구나 목표가 별로 없었기에, 적어도 욕심쟁이는 아닌 줄 알았다. 그런데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무력하게 내 생명 같은 아이를 잃은 트라우마가 나를 집착하게 한다. 매달리게 한다. 20대부터 내 삶과 정신을 매료시키고 이끌어온 학문인 종교학이 죽어가는 상황을 그저 눈뜨고 지켜보는 것이 무척 괴롭다. 그렇다고 결정적인 행동에 나서지도 않고 있다.

상실의 고통과 무력함의 후유증에 붙들린 나는, 어린 날 쫓겨났다 돌아온 방안에서 매일매일 내 멋대로 음악을 듣거나 망상에 잠기거나 만화나 책을 보며 지낸다. 그 누구도 이런 내 일상을 간섭하거나 참견하지 않는다. 나는 지금 진정 모든 종교인이 바라마지 않는 낙원에서 희희낙락하는 것인가? 아니면 바쁜 업무와 인간관계로 스트레스 만땅인 직장인들 엿 먹이는 쓰레기 글 나부랭이를 쓴 것일 뿐인가?

[출처] <맘물림> 2018년 6월 통권 제42호, 신앙인아카데미

유정원
5학년이 되어 나만의 ‘지천명’에 다가가 삶을 따스하게 품고픈 아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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