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모와 함석헌 "나는 '국민'이란 말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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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영모와 함석헌 "나는 '국민'이란 말이 싫다"
  • 유대칠
  • 승인 2018.06.26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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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칠의 아픈 시대, 낮은 자의 철학 30]

철학은 누구의 손에 있느냐에 따라 다른 모습을 띤다. 때론 희망이 되기도 하고, 때론 절망이 되기도 한다.

친일파 서정주(1915-2000)가 “천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였다”며 죽음을 애도한 동양철학자 김범부(1897-1966)는 그 유명한 ‘국민윤리’를 주장하고 강조한 인물이다. 그가 말하는 국민윤리란 무엇일까? 한 가정에서 ‘무조건’ 자식이 부모에게 효를 실천해야하듯 국민도 국가를 향하여 무조건 충성해야 한다는 논리를 담고 있다. 이러한 논리는 1961년 쿠테타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발행한 <최고회의보> 2호에 실려 있음을 볼 때, 당시 이러한 논리가 어떤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였는지 생각해 볼 수 있겠다.

 

박종홍과 김범부

김범부의 국민윤리와 박종홍의 국민교육헌장

부모와 자식 사이의 자연적인 인륜 관계를 국민과 국가권력 사이의 관계로 변질시킨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어쩌면 말 잘 듣는 국민으로 교육시키는 데 있진 않았을까? 국가는 하나의 거대한 가정이고, 권력자는 부모와 같은 존재이며, 국민은 그 권력자에게 충성을 다해야 하는 자식이란 무서운 발상이 이러한 논리에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김범부가 대학의 외부에서 잔인한 국가철학을 주장하였다면, 대학의 내부에선 박종홍이 있었다. 물론 이승만 시절부터 활발한 활동한 안호상과 같은 인물도 있었지만, 박정희의 시대, 박정희의 철학이 되어준 철학자는 박종홍이다. 그는 국가재건최고회의의 사회분과 위원이었고, 1970년대엔 교육문화 담당 대통령 특별보좌관이었다. 그는 권력과 매우 가까웠다. 1968년 서울대를 은퇴 한 후, 안호상 등과 함께 ‘국민교육헌장’을 기초하였다. 아마 그 첫 구절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의 생각과 무관하게 그 헌장은 우리에게 우리 존재의 이유를 가르쳐준다. 바로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란 거다. 

 

다석 류영모와 함석헌. 그림=김세인

류영모와 함석헌의 국가주의 비판

김범부와 안호상 그리고 박종홍이 이와 같이 권력자와 친한 권력자의 철학을 만들고 있는 동안 이들과 다른 철학을 만든 사상가들도 있었다. 류영모(1890-1981)와 함석헌(1901-1989)이 그러한 인물이다. 그들은 확실히 다른 길로 갔다. 이들은 굳이 노장사상을 자기 철학의 수단으로 삼았다. 그리고 바로 그 노장사상으로 당시 권력자의 옆에서 오염된 유교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류영모는 아래와 같이 말했다.

“학생을 국가의 동량이라고 하는데, 그 따위 말은 집어치워야 합니다. 애당초 민족국가라는 말이 틀렸습니다. 국가의 ‘가(家)’는 집어치워야 합니다. 이 ‘집 가’의 가족제도 때문에 우리나라가 망한 게 아니겠습니까? 전 세계 인류를 생각하면 국가와 민족이라는 것도 말이 안 됩니다. 민족이라는 것을 넣을 데가 없습니다. 그런데 교육당국에서는 국가의 동량과 민족의 광명이란 슬로건을 내겁니다. 이것은 안 됩니다. 이렇게 하다가는 한 나라만 망하는 게 아니라 전 인류가 망하게 됩니다.” (1956년 11월 22일 <다석 강의>)

류영모의 제자인 함석헌 역시 다르지 않았다. 함석헌은 박종홍과 안호상 등이 좋아한 그 ‘국민’이란 말을 싫어했다. 국가권력자의 아래에서 마땅히 그들에게 충성해야할 것 같은 그 ‘국민’이란 말을 싫어했다. 그러면서 유교를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 오염시키고, 그 오염된 불량품으로 백성을 속이는 권력자들를 향하여 분노하였다.

“이 나라의 정신적 파산! 사상의 빈곤! 한다는 소리가 벌써 케케묵은 민족 지상, 국가 지상, 화랑도나 팔아먹으려는 지도자들, 이 민족의 정신적 빈곤을 무엇으로 형용할까?”(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 

민중을 속이려는 권력자와 그들의 야심에 동참한 철학자들 앞에서 함석헌은 ‘사상의 빈곤’을 보았다. 그 ‘사상의 빈곤’을 이겨내기 위해 함석헌은 ‘생각하는 씨알’, ‘생각하는 민중’의 소중함

이 과연 어떠한 것인지 깨우쳤다. 그리고 그 깨우침이 류영모의 씨알을 만나 그의 씨알 철학이 된다.

민중은 지배당하지 않는다

촛불 이후 우린 더 이상 또 다른 어떤 영웅을 기다려선 안 될 것이다. 스스로 생각하는 민중, 생각하는 씨알, 힘들어도 기꺼이 고난을 더불어 이기며 나아가는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 자신이 희망이니 말이다.

국민윤리로 민중을 지배하려던 시대는 실패했다. 촛불은 그 잔혹한 오염된 철학과 교육의 실패를 보여주었다. 아무리 권력자들이 민중, 씨알을 자신의 뜻으로 조작하고 지배하려 하여도 결국 씨알은 씨알의 역사를 만들어간다. 그 많은 철학자들이 권력자의 편이 되어 속이고 왜곡하였지만, 결국 씨알은 후퇴 없이 차근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생각하니 기분이 좋다. 왠지 우리의 미래에 희망을 걸어 보고 싶어지니 말이다.

유대칠 암브로시오
중세철학과 초기 근대철학을 공부한다. 
대구 오캄연구소에서 고전 세미나와 연구, 번역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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