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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얼굴, 어떻게 볼 수 있을까?자비가 넘치는 그리스도-1

우리가 신앙의 눈으로 하느님을 바라본다면, 있는 그대로의 그분을 볼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가 하느님을 맞대고 볼 것이다. 옛적에 한 남자가 랍비에게 와서 질문을 던졌다. “랍비님, 한 때는 우리가 하느님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더 이상 그분의 얼굴을 볼 수 없을까요? 하느님의 얼굴을 보기 위하여 그만큼 높이 도달할 수 없으니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랍비는 매우 늙었다. 그는 인생에서 수많은 것을 보아왔다. 랍비는 눈을 감고, 하얀 수염을 쓸어내리며 깊은 한숨을 지었다. “젊은이여, 그건 전혀 그런 것이 아니라네. 하느님의 얼굴을 볼 수 없는 것은 그만큼 몸을 낮출 수 있는 사람들이 거의 없기 때문이지. 얼마나 슬픈 일인가, 그렇지만 사실이라네. 그러니 굽히는 것을, 절하는 것을, 무릎을 꿇고 몸을 낮추는 것을 배우면 하느님을 마주 볼 수 있을 걸세!”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추천서

창세기의 시작에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당신 모습으로 사람을 만드셨다”(창세 9,6)는 이야기를 듣는다. 하느님의 모습이라는 말은 성경 곳곳에 나타나고 우리에게 낯익은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우리의 얼굴, 몸 그리고 존재하는 모습에 의해 거룩한 분의 진리와 아름다움을 반영하고, 거룩한 분의 형상대로 창조된 것이다. 바오로 사도는 새로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부활에 대한 믿음을 받아들이는 데에 주저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권고한다: “우리가 흙으로 된 그 사람의 모습을 지녔듯이, 하늘에 속한 그분의 모습도 지니게 될 것입니다”(1코린 15,49).

말씀과 형상(모상)이라는 두 가지 상징들은 바오로의 가르침 속에 계속 떠오르고 있다. 바오로는 초기 그리스도인들과 우리들에게 각자가 ‘그리스도의 추천서’라고 상기시킨다:

“우리의 추천서는 여러분 자신입니다. 우리 마음에 새겨진 이 추천서는, 모든 사람이 알고 있으며 또 읽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분명히 우리의 봉사직으로 마련된 그리스도의 추천서입니다. 그것은 먹물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느님의 영으로 새겨지고, 돌판이 아니라 살로 된 마음이라는 판에 새겨졌습니다.”(2코린 3,2-3)

바오로는 그리스도인들이 세례를 받은 후 세상 속에서 살아가며 존재하는 방식, 그들의 새로운 성소를 각인시키려고 한다. 그 새로운 성소는 두렵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고귀한 부르심과 책임을 의미하지만, 은총과 진리가 가득한 성소이기도 하다:

“주님은 영이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너울을 벗은 얼굴로 주님의 영광을 거울로 보듯 어렴풋이 바라보면서, 더욱더 영광스럽게 그분과 같은 모습으로 바뀌어 갑니다. 이는 영이신 주님께서 이루시는 일입니다.”(2코린 3,17-18)

하느님의 선물, 그리스도

바오로는 표현하기 위하여 경험해야 하고 알아야 하는 것을 가르치려고 한다. 그는 “하느님의 모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선포하는 복음의 빛”에 대해 묘사한다. 우리는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영광을 얻는다. 그분은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이다. “어둠 속에서 ‘빛이 비추어라’ 하고 이르신 하느님께서 우리 마음을 비추시어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느님의 영광을 알아보는 빛을 주셨다”(2코린 4,6).

“그분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모상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맏이이십니다. 만물이 그분 안에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든 땅에 있는 것이든,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왕권이든 주권이든, 권세든 권력이든-만물이 그분을 통하여 또 그분을 향하여 창조되었습니다. 그분께서는 만물에 앞서 계시고 만물은 그분 안에서 존속합니다. 그분은 또한 당신 몸인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그분은 시작이시며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맏이이십니다. 그리하여 만물 가운데에서 으뜸이 되십니다. 과연 하느님께서는 기꺼이 그분 안에 온갖 충만함이 머무르게 하셨습니다. 그분 십자가의 피를 통하여 평화를 이룩하시어 땅에 있는 것이든 하늘에 있는 것이든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만물을 기꺼이 화해시키셨습니다.” (2콜로 1,15-19)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새 생명을 입음으로써 이 하느님의 모상이 되라는 소명을 받고 있다. “그리스도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물이 숨겨져 있기 때문”(콜로 2,3)이다. 그리스도 안에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난 이들은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합니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오른 쪽에 앉아 계십니다. … 여러분은 이미 죽었고 여러분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여러분도 그분과 함께 영광 속에 나타날 것입니다”(콜로 3,1-4).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은 “새 인간을 입은 사람입니다. 새 인간은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모상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워지면서 참 지식에 이르게 됩니다. …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며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콜로 3,10-11).

초기 교회는 이 내용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로마의 클레멘스는 이렇게 말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는 하느님의 얼룩 없고 탁월한 모습을 거울 속에서처럼 본다.”

 

사진출처=pixabay.com

지상에서 천국을 만나다

세례 때에 시작된 그리스도 안의 이 새로운 생명은,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하여 하느님 나라가 더욱 더 풍성하게 다가오므로, 지금 이 지상에서 역사 안에 성장하고 성숙하며 발전되어야 한다. 전례는 믿는 이들에게 하느님에 관한 지식을 가르치고 만나게 할 뿐만 아니라, 그들을 하느님께 더 가까이 이끌고 있다. 그것은 진리의 성령으로부터 나오는 은총과 생명이다.

전례를 통하여 우리는 하느님 안에 살고 있다. 우리의 생명, 삶은 이 볼 수 있는 세계로부터 볼 수 없는 세계로 옮겨가는데, 그것은 자리를 바꿈으로써가 아니라 생명 그 자체와 그것의 방식이 바뀜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런데 우리가 하느님을 향하여 움직이는 것이 아니며, 우리가 그분께로 올라가는 것도 아니다. 그분께서 오시고 우리에게 내려오심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분이 지상에 내려오고 그분 자신의 모습을 가지고 오신다. 그분은 양들이 길을 잃고 헤매는 곳에 오셨다.

그분은 우리를 이곳에서 움직이게 하지 않았다. 이 지상에 남아 있으면서도 우리를 천국에 있는 것처럼 만드셨고 우리를 천국으로 이끄시지 않고 천국의 생명을 나누어주셨다. 우리에게 천국을 굽혀주시고 내려오게 함으로써 그렇게 하셨다. “희망은 항상 영혼을 보이는 아름다움으로부터 그 이상의 것을 보도록 이끈다. 인식되는 것을 통하여 숨겨진 것에 대한 갈망에 불을 지핀다”고 니싸의 그레고리 성인은 말했다.

우리는 하느님의 모습 안에서 머물고 그분을 바라보도록 초대받고 있다. 우리는 진리, 희망, 자비, 정의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는가? 그리고 희망, 진리, 정의와 자비가 우리를 바라보도록 허락하는가? 강렬하고 고요하게 그리고 충실하게 그분을 바라보는가? 유한하고 소멸하는 존재인 우리가 무한한 존재를 바라본다. 우리를 영원히 구원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시는 하느님의 관심과 연민 앞에서 빠져나갈 길이 없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보듯이

하느님은 마치도 한 사람이 어두운 한 밤중에 희미한 촛불을 들고 해안가에 서서 망망한 대해를 바라보는 것처럼 우리에게 알려질 수 있을 뿐이다. 그 사람이 얼마나 많이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별로, 거의 아무것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물을 잘 볼 수 있다. 그는 자기 앞에 바다가 있다는 것을, 그 바다가 너무나 거대하고 그래서 한꺼번에 바다를 다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우리가 하느님에 대해 아는 것도 이와 똑같다. 하느님의 모상 앞에 선다는 것은 바다의 한쪽 모서리에 서는 것이고 천천히, 의도적으로 물결 속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빛과 자유로 변해간다는 것을,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긴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살이 되신 말씀, 예수님의 모습은 우리 모습을 드러나게 한다. 서로에게 비인간적인 행동을 하는 우리를 벗기고 로하고 치유하며 용서하고 어루만진다. 그리고 하느님께 복종하고, 지구의 모습에 자비와 함께 정의의 왕국을 가져오려고 애쓴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보듯이 우리의 모습, 우리의 영혼, 우리의 삶을 바라보자. 하느님의 얼굴, 하느님의 눈은 연민과 명료함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우리는 그분께서 우리에게 꿈꾸는 대로 변화되라는 초대를 받는다. 우리가 하나가 되고 갈라짐이 없으며 집에 있을 때까지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계신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지키고, 우리를 바라본다. 하느님은 모든 것 안에 모두가 되신다.

우리보다 먼저 신앙을 받아들인 사람들의 오래되고 장엄한 기도인 시편의 말씀대로 기도하자. 하느님의 모습을 찾아 애쓰는 그들처럼 우리도 기도하며 하느님의 모습을 찾아보자:

“하느님, 당신은 저의 하느님, 저는 당신을 찾습니다. 제 영혼이 당신을 목말라 합니다. 물기 없이 마르고 메마른 땅에서 이 몸이 당신을 애타게 그립니다. 당신의 권능과 영광을 보려고 이렇듯 성소에서 당신을 바라봅니다. 당신의 자애가 생명보다 낫기에 제 입술이 당신을 찬미합니다. 이렇듯 제 한 평생 당신을 찬미하고 당신 이름 부르며 저의 두 손 들어 올리오리다.”(시편 63장)

[출처] <자비가 넘치는 그리스도>, 미건 맥켄나
[번역문 출처] <참사람되어> 2011년 9월호

[ 가톨릭일꾼 www.catholicworke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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