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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외로움의 땅은 하느님에 대한 기아의 땅이다기도의 핵심으로-19

"하느님, 당신은 저의 하느님, 저는 당신을 찾습니다. 제 영혼이 당신으로 목말라 합니다. 물기 없이 마르고 메마른 땅에서 이 몸이 당신을 애타게 그립니다."(시편 63,1)

기도의 삶은 우리를 어디로 이끄는가? 내적인 여정의 끝을 향해 가면서,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분의 십자가에 동참한 후, 우리는 외로움의 낯선 땅으로 들어간다. 평화가 그보다 앞서 있는 것 같다.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을 거치면서 우리는 평화를 얻는다. 마치도 십자가를 벗어버린 것처럼, 부활의 순간이 찾아온다. 상처들은 치유되지 않았으나, 더 이상 괴롭지는 않다.

우리는 다르다. 이제 우리는 하느님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달라졌다. 오로지 하느님만이 중요하다. 이것은 감격스럽고 경이로운 생각이다. 하느님의 십자가 수난에 어떤 식으로든지 우리가 참여하지 않았다면 이런 생각은 헛된 생각이 될 수 있다.

이제 모든 사람들이 우리에게 속하고 우리의 한 부분이 되며, 우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속한다는 의미에서 달라졌다. 또한 동시에, 우리는 하느님께만 속하고, 전적으로 그분께 속한다. 우리와 다른 이들이 구분되고 동시에 아무런 구분 없이 모두가 하나로 섞여진다. 존재하는 분명한 구분은 영적인 것으로,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온 것에서 나온 것이며 결코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외로움의 땅이다.

 

사진출처=pixabay.com

이 땅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 말이 없다. 외로움의 땅은 즐거움, 기쁨의 땅이다. 그것은 하느님과 일치하는 땅이다. 외로움의 땅은 하느님에 대한 기아의 땅이다. 외로움의 땅은 하느님께 속하는 땅이고 하느님 홀로 중요하다고 깨달은 땅이다.

이 땅의 비밀은 하느님에 대한 굶주림이 우리 안에서 불길처럼 자라난다는 것이다. 실상, 그것은 불이다. 또한 동시에, 인간의 사랑도 강렬해진다. 외로움의 땅에는 오로지 한 가지 생각, 한 가지 꿈, 한 가지 열정, 한 가지 염원만 있다. 그것은 사람들을 하느님께로 이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느님께 가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스도가 전 생애동안 가장 깊게 경험한 것은 외로움이었고, 특히 겟세마니 동산에서 진하게 느꼈다. 외로움의 땅에서, 우리는 아마도 조금이겠지만 깊은 열정으로 하느님이 누구인지 알게 된다. 우리는 그때 모든 사람들에게 그분을 주려는 강렬한 염원으로 갈망한다.

그러자 우리는 사람들이 그분을 받아들이길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일부, 상징을 그분한테 드릴 것이나, 온 존재를 다 드리길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외로움의 땅에서 걷는다. 그 땅에서 다른 사람들을 마음대로 조작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느님이 그런 행위를 허락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이 그곳의 책임자이고, 우리가 아니다. 외로움의 땅에서 걷고 있는 사람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중이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20). 그렇다고 우리가 여전히 죄인들이 아니라는 것도 아니요, 하느님의 무게가 계속 우리를 무겁게 짓누르지 않는 것도 아니다. 다만, 모든 사람들을 하느님께로 이끄는 부르심은 여전히 남는다는 뜻이다.

 

사진출처=pixabay.com

외로움의 땅으로 들어가려면, 우리 자신의 모든 요구들이 하느님만을 향해야 한다. 수많은 요구들은 아직 남아있다. 사라지지 않았다. 이 요구들은 외로움의 땅에서 순례자들이 입는 유일한 짧은 겉옷, 우리의 겉옷을 구성한다. 때때로 이 겉옷은 짧은 머리처럼 보이고, 또 다른 때에는 부드럽고 폭신하다. 겉옷은 내가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을 상징한다. 즉 우리가 서로를 원하는 방식은 하느님이 우리에게 원하는 방식과 다르다는 것이다. 이 기이한 여정의 결실들 중의 하나는 외로움의 땅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에 의하여 보상을 받고, 그분 안에서 모든 사람을 되돌려 받는다는 것이다.

인정의 욕구, 우리 마음속의 모든 것을 말해야 하는 욕구, 필요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구, 다른 사람들을 나 자신에게 돌리는 욕구, 나의 지성으로 다른 이들을 감동시키려는 욕구, 나의 역량-이 모든 욕구, 필요들이 떨어져 나간다. 외로움의 땅에서, 우정은 단순하고 즐겁다. 왜냐하면 모든 욕구들이 그리스도로 집중되고, 나 자신의 초라함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을 하느님께 데려가려는 불타는 한 가지 염원이 이 모든 것들의 영향을 약화시키는 것 같다. 인간의 마음은 할 수 있는 만큼 멀리 하느님께 전적으로 사로잡히기 위하여 자신을 연다. 이 놀라운 실제의 빛으로 우리는 그분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한다.

처음에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닌 존재의 상태로 축소된다. 지성의 날개를 접고, 마음이 열리면서 지성은 그리스도의 빛을 받는다. 이제 우리는 아빌라의 대 데레사가 “나와 금화는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나, 금화, 그리고 하느님은 모든 것이다,”라고 말했던 것을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데레사의 말을 바꾸어 말하면 이렇다: 나는 나 홀로 아무도 어떤 곳으로 이끌 수 없다. 그러나 만일 내가 하느님으로 나 자신을 가득 채우도록 허용한다면, 나는 많은 사람들을 하느님께 인도할 수 있다.

세례 때에 시작되었고 성체성사, 견진성사, 그리고 사랑받는 존재에 대한 관상으로 이어지는 길은 수난과 십자가를 거쳐 우리를 외로움의 땅으로 인도한다. 그것은 신비한 평화와 깊은 즐거움의 땅이며, 또한 외로움의 땅이기도 하다. 하느님과 전적으로 합일되기 전의 마지막 단계가 바로 외로움의 땅 상황이다. 어떤 이들에게 아마도 많은 사람들에게 합일은 우리의 죽음 전에 올지도 모른다. 만일 우리가 서로를 사랑한다면, 만일 우리의 가슴이 충분히 열린다면, 그리고 만일 하느님이 그렇게 되기를 원한다면.

[번역문 출처] <참사람되어> 2018년 1월호
[원출처] <기도의 핵심으로>, 캐더린 도허티

[ 가톨릭일꾼 www.catholicworke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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