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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아픈 사랑, 예수 부활하다

[한상봉 칼럼] 

엔도 슈사쿠(遠藤周作)가 지은 <그리스도의 탄생>(1984, 홍성사)은 놀랍게도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가 아니라, 그리스도교의 탄생에 대해 다루고 있다. 아마 예수님의 죽음 이후에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진면목이 재발견됨으로써, 그리스도교가 탄생했다는 뜻일 것이다. 이 글에는 예수님에 대한 제자들의 배신과 상봉이 짙은 빛깔로 배어 있다. 그들은 어설프게 헤어지고, 더 깊은 차원에서 다시 만났다.

막판에 제자들이 예수를 떠나고, 심지어 배신한 까닭은 무엇일까? 당시의 민중들과 마찬가지로 제자들 역시 예수님에게서 강력한 지상의 군주를 기대했다. 하늘의 군대를 거느린 메시아가 단박에 로마제국과 예루살렘의 귀족들을 쓸어버릴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기껏 나귀를 타고 입성해서, 대사제와 빌라도에게 항변조차 제대로 못하고 저주받을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한 인생 실패자였다. 무더운 예루살렘의 사월에 벌어진 일이었다.

예수님이 체포당하던 그날 밤 모든 게 끝장났다. 예수님은 ‘돌을 던져도 닿을만한’ 거리에서 피땀을 흘리며 기도했다.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에 남아서 깨어 있어라.”(마르 14,34) 하였으나, 제자들은 피곤에 절어 잠들어 있었다. 예수님만이 홀로 깨어 닥쳐올 고통을 예감하며 신음하였다. 정작 성전경비대가 예수님을 연행하러 왔을 때, 제자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물론 그분에 대한 마음을 아예 접을 수는 없었지만.

베드로가 가야파의 저택을 기웃거린 것은 그런 미련 때문이었을까. 제자집단의 대변인을 자처하던 베드로의 마음은 곧 제자단 모두의 마음이었다. 그들은 확신이 없고, 허약하고, 비겁하고, 그래서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배신할 수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비겁함에 ‘인간적으로’ 통곡하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었다. 그래서 남은 것은 두려움이었다. 그분이 얼마나 자신들을 원망할지 가늠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by Ade Bethune

그래도 너를 사랑한다

당시 처형당하는 자들은 십자가 위에서 구경꾼들에게 넋두리를 늘어놓거나, 저주를 하거나 기도를 올리곤 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무슨 말씀을 하실지, 그 말씀이 분명 자신들을 향하리라 예상했다. 예수님이 오전 9시에 못 박히고, 정오부터 어둠이 덮쳐오고, 오후 3시에 숨을 거두었다. 그동안 예수님은 있는 힘을 다해 자기를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끊길 듯 끊길 듯 이야기를 건네고 있었을 것이다.

엔도 슈사쿠는 그 말에 집중한다. 죽기 직전에 예수님이 하신 유명한 그 말씀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마르 15,34)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라는 말이다. 이 말을 두고, 사람들은 예수님의 하느님에 대한 절망과 호소, 슬픔과 애원을 읽는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당시 유대인의 습관을 몰라서 하는 말이라고 엔도 슈사쿠는 전한다.

예수님은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소리쳐 부르건만 구원은 멀리 있습니다.”(시편 23,2) 하는 절망적인 호소에서 “제 목숨을 당신 손에 맡기니, 주 진실하신 하느님, 당신께서 저를 구원하시리이다.”(31,6)까지 이어지는 시편을 외우고 계셨을 것으로 짐작한다. 예수님은 절명의 순간에도 충분히 하느님을 신뢰하였다.

더욱이 예수님은 몽롱한 의식 속에서도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 23,34) 하고 말하였다. 이 마지막 남긴 유언을 제자들은 나중에 십자가 아래 모여 있었던 마리아 막달레나와 살로메 등 여성 제자들에게서 당연히 전해 들었을 것이다. “그분이 뭐라고 하셨어?” “... ...” 그들은 예수님이 자신을 괴롭힌 사람들과 자기를 저버린 제자들을 향한 원한이나 증오의 말을 한 마디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자기들에게 하느님의 노여움이 내리는 것도 바라지 않으셨다는 것을 알았다. 벌을 바라기는커녕 제자들의 구원을 위해 스승이 기도했다는 것도 알았다.

제자들은 충격을 받았다. 그들이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사랑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자비란 이런 것이었다. 그 자비와 용서를 신뢰하지 못해 자살을 선택한 유다만 불쌍했다. 십자가 위에서, 격심한 고통과 혼탁한 의식 속에서도 여전히 자기를 저버린 이들을 사랑하려고 필사적으로 애쓰는 예수님, 제자들은 이런 사랑을 처음 경험했다. 그리고 이런 사랑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루카 23,46)라는 하느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 안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어떤 예언자도 이만한 사랑과 이만한 신뢰를 가진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백인대장은 “참으로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마르 15,39)고 말할 수 있었다.

엔도 슈사쿠는 이때 비로소 제자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그분이 평소 말씀하신 게 무슨 뜻인지 알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마을과 호숫가를 떠돌며 함께 지낸 나날들, 수수께끼 같았던 이야기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현실에서 무력했던 한 사람에게서 더 영원한 무엇이 있음을 발견했다.

“예수님은 현실에서 죽었지만 새로운 모습으로 그들 앞에 나타나서, 그들 속에서 ‘살기’ 시작했다. 다시 말하면, 그들 속에 예수님이 부활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진정 부활의 본질적인 의미의 하나는 이 제자들의 예수의 재발견인 것이다.”

엔도 슈사쿠는 이 사건 이후에 제자들의 가치관이 바뀌었다고 전한다. 무력한 사람이 힘 있는 사람으로, 버림받고 쫓기던 사람이 가장 환대받는 사람으로 바뀐 것이다. 꼴찌가 첫째가 되고, 섬기는 사람이 다스린다는 말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왜 애통하는 사람이 위로를 받게 되는지 알게 되었다. 복음서 어디에서도 부활한 예수님이 제자들을 타박하거나, 배신의 이유를 물었다는 말은 들을 수 없다. 예수님은 그들을 만날 때마다 “평화”를 빌어 주었고, 요한 복음서에서는 그분이 빵도 집어 주시고 생선을 집어 주셨다고 전한다. 그래서 엔도 슈사쿠는 “예수님은 실제의 부활사건 전에 ‘부활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사진출처=poweroftruth.net

이명박은 부활하지 않는다

예수님처럼, 기자회견에서 “제 재임 중 일어난 모든 일의 최종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 더 이상 국가를 위해 헌신한 공직자들을 짜맞추기 식 수사로 괴롭힐 것이 아니라 나에게 물어 달라.”고 말한 전직 대통령이 있다. 실제로 복음서에서는 예수님만 연행되었을 뿐, 다른 제자들은 한 사람도 붙잡혀 가거나 처형당한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안타깝게도 정작 검찰조사가 시작되자, 모든 불법행위를 부인하고, “불법행위가 있었다면 나랑 상관없이 아랫사람들이 알아서 저지른 것”이라 강변했다.

이 불행한 대통령은 예수님처럼 모든 수하들이 결정적인 순간에 등을 돌리고, “대통령이 시킨 일”이라고 진술했다. 그러자, 이 대통령은 “자기들 죄를 덜려고 거짓말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대통령 대선후보 경선에서 상대 후보가 도곡동 땅과 BBK 소유주 논란을 일으키자 “여러분! 이거 다 새빨간 거짓말인 거 아시죠?” 하고 목청을 돋운 적이 있었다. 그는 지금도 여전히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은 다 ‘거짓말’이고, “바라건대 언젠가 나의 참모습을 되찾고 할 말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고 구속되면서 말했다. 그리고는 검찰조사에 응하지 않고 예수님처럼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이 대통령이 복음서를 많이 읽기는 한 모양이다. 십자가 위의 예수님처럼 대한민국이 나를 박해하고 있지만, “나는 그래도 대한민국을 위해 기도할 것”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소망교회 장로이며, 대단한 신심가이다. 빨강색 봉을 들고 교회당 주차장에서 주차요원으로 활동도 했다. 대통령이 되고서도 2011년 3월 3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부부가 함께 겸손하게 양손을 모은 채 무릎 꿇고 기도해서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이 대통령에게 마지막 남은 과업은 십자가에 매달리는 일뿐이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때 그 자리에도 수하들은 없을 것이다. 아내 김윤옥과 아들 시형 씨 등 가족들은 따라서 울 것이다. 문제는 부활이다.

예수님은 원망하는 마음마저 버리고, 속옷조차 제비뽑기로 병사들이 나눠가졌으며, ‘가난한 채’ 돌아가셨다. 그래서 하느님이 나머지를 모두 채워주실 것이다. 제자들은 그를 다시 기억해내고, 그분의 사랑 때문에 흐느끼고, 그분처럼 살기로 작심할 것이다. 그렇게 그들 안에서 부활할 것이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끝끝내 땅에 묻어 둔 차명재산들이 사방에서 에워싸고 그를 ‘죄인’이라 고발할 것이다. 돈을 빌리려다 해고당한 운전기사가 그의 인색함에 치를 떨 것이다.

한 사람은 세상을 위해 나를 죽였지만, 또 한 사람은 나를 위해 나라를 팔아먹었다. 그는 스스로 뱃속을 가득 채웠기에, 하느님께서 채워주실 복이 없다. 그러니 부활은 언감생심이다. 사두가이파 대사제의 얼굴을 한 대통령은 예루살렘 성전처럼 그의 재물과 함께 무너져 내릴 뿐이다. 그는 그릇된 종교심의 가장 추악한 얼굴을 보여 주었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 가톨릭일꾼 www.catholicworke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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