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경식, 벚꽃이 질 무렵 그리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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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경식, 벚꽃이 질 무렵 그리운 사람
  • 양승국 신부
  • 승인 2018.04.23 10: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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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신부]

벚꽃이 질 무렵이면 늘 머릿 속에 떠오르는 그리운 사람이 한분 계십니다. 4월 18일 오늘로 선종 10주기를 맞이하는 선우 경식 요셉 원장님입니다.

대체로 한 인간 존재는 태어나서, 주어진 삶을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나고...죽고 나서는 세월과 더불어 사람들의 뇌리 속에서 차츰 잊혀집니다. 그렇게 한 존재가 천천히 역사의 뒤안길로 소리 없이 사라지는 것이 통상적인 우리네 인생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를수록 그가 떠난 자리가 더욱 커보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그가 남긴 영웅적인 모습이 남아있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또렷이 기억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그가 남긴 아름다운 발자취가 남아있는 사람들 가슴 속에 강렬히 되살아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선우 경식 요셉 원장님께서 그러하십니다. 오늘 선종 10주기를 맞아 원장님의 묘소에는 그분을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원장님을 추모하는 미사도 봉헌하고, 살아생전 좋았던 추억들을 회상하고, 다른 사람들 건강은 다 돌봐주면서 정작 당신 건강을 돌보지 못했던 것을 아쉬워하며 그렇게 하루를 보냈습니다.

 

미사 내내 제 머릿 속에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2018년 평신도 희년을 지내고 있는 한국 교회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선우 경식 요셉 원장님께서는 평신도로서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가고, 어떻게 그리스도를 증거할 것인가를, 온 몸과 마음으로 증거하셨던 좋은 모델이라는 생각 말입니다.

대형 종합병원에서, 아니면 개원의로서 여유있고 편안한 삶을 사실 수도 있었는데, 선우 경식 요셉 원장님께서는 우리 사회의 가장 변방, 가장 낮은 곳에 병원을 세우셨습니다. 다른 종합 병원에서는 우리 사회 거물급 인사, 거부들을 VIP 고객으로 모시려고 다들 혈안인데, 원장님에게 VIP 고객들은 노숙인들, 외국인 근로자들, 가출 청소년들, 의료보험 혜택을 못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제가 요보호 청소년 시설 담당자로 일할 때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몸과 마음이 아픈 아이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어떤 아이는 거의 종합병원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치료비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할수 없이 요셉의원에 무료 진료 의뢰를 신청했었는데, 원장님께서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즉석에서 허락해주셨습니다.

너무 많은 아이들이, 틈만 나면 요셉의원을 들락날락하다보니 원장님께 너무 송구스러웠습니다. 죄송한 마음을 표현하자, 즉시 하시는 말씀, “요셉 의원은 바로 이 아이들 때문에 있습니다. 아무 문제 없습니다. 아무 걱정 마시고 계속 데려오십시오!”

선우 경식 요셉 원장님께서는 노숙인들의 아픈 곳을 치료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어떻게 하면 그들의 인생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을까 늘 고민하셨습니다. 그런 고민의 결과는 노숙인 자활시설의 설립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선우 경식 요셉 원장님께서는 참 신앙인이셨습니다. 저희같은 수도자들이 부끄러울 정도로 기도생활, 영성생활에 충실하셨습니다. 사막의 성자 샤를르 드 푸코 신부님의 영성에 깊이 매료되셔서, 예수의 작은 형제회 재속회원으로 사셨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직원들, 봉사자들, 노숙인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고 싶어하셨고, 그들을 하느님께로 인도하고 싶어하셨습니다.

원장님께서는 선종하시기 불과 한달 전에도 매일은 아니었지만, 자주 요셉의원에 나오셨습니다. 그리고 그해 사순절, 요셉의원 직원, 봉사자들을 위한 사순 피정을 준비하셨습니다. 영광스럽게도 저를 강사로 초대해주셔서 참 기뻤습니다.

당시 저는 대전에서 사목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강의를 마치고 영등포역으로 들어가는 저를 오래도록 지켜보시며 배웅해주셨습니다. 안타깝게도 그게 지상에서 원장님을 뵌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그때만 생각하면 저는 아직도 크게 아쉬워하며 가슴을 칩니다. 열차표, 그거 얼마나 한다고, 다음 열차 탔었더라면, 여유있게 차라도 한잔 하면서, “원장님 그간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 땅의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 큰 일을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정말 기뻐하실 것입니다.”라고 말씀드리면서 감사의 인사를 드렸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직도 후회를 하고 있습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요한 복음 6장 51절)

살아생전 평생토록 지상의 빵, 세상의 빵이 아니라, 생명의 빵, 영원한 생명을 주는 빵을 추구하셨던 선우 경식 요셉 원장님께서는 분명히 지금 이 순간, 그토록 그리던 천국에서, 그토록 사랑했던 주님 품안에 안겨, 그분께서 나눠주시는 영원한 생명의 빵을 원없이 드시고 계시리라 저는 확신합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살레시오 수도회 관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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