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시스템과 떡갈나무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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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시스템과 떡갈나무 혁명
  • 신승철
  • 승인 2016.05.09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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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철의 Ecosophia

[신승철 칼럼]

몇 년 전 <철학공방 별난>이라는 제 연구실 창문 앞에 상자텃밭 농사가 제법 풍성하게 잘 돼서 토마토며, 상추며, 가지 등이 주렁주렁 매달렸습니다. 상자텃밭 주위로 나비가 살랑살랑 날아다니는 그 우아하고 평화로운 모습을 만끽하는 것도 일상의 소소한 재미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언제부터인가 벌레가 생기더니 채소를 마구 파먹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참 이상한 것이 애벌레를 보는 족족 잡아다가 멀리 던져버리는데도 자꾸 생긴다는 점이었습니다. 분명 애벌레가 시멘트 바닥을 기어서 찾아올 일도 없었기에 불가사의한 일이었습니다.

연구실에서 공부하다가 애벌레를 떠올릴 때마다 나쁜 생각이 들어 에프킬라에 눈이 갈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충격적이었습니다. 바로 우아하게 날개 짓 하던 나비의 유충이 바로 그 징그러운 애벌레였다는 사실입니다. 어리석은 저는 그제서야 자연과 생명이 서로 보이지 않게 연결되어 생태계, 즉 에코시스템을 만들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한상봉

자연과 생명의 에코시스템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서로 상호의존하며 자신을 유지합니다. 우리는 생명과 사물, 영혼의 그물망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셈입니다. 저의 사소한 습관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지구에 영향을 줍니다. 예를 들어 과도한 육식 습관은 소에게 먹일 옥수수 사료를 소비하게 만들어, 제 3세계 민중들의 기아 사태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줍니다. 또한 무심코 버린 담배꽁초 하나가 자연 생태계에서 썩으려면 몇 십 년이 걸려서 지구에 하중을 줍니다.

제가 맛있게 먹는 과자는 인도네시아의 정글을 파괴하고 재배되는 팜유의 생산을 가속화시켜 지구생태계를 파괴합니다. 제가 저녁 때 먹은 새우는 망그로브 숲을 파괴해 쓰나미 피해와 탄소순환계에 이상을 일으킵니다. 저희가 즐겨 먹는 곡류를 발효시킨 주류들은 매년 600만 명의 제 3세계 민중이 기아와 영양실조가 직간접적인 원인이 되어 사망하는 현실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보이지 않는 연결망은 참 많습니다. 자연의 연결망, 사회의 연결망, 마음과 영성의 연결망이 그것입니다. 모두 연결망이기 때문에 생태계라고 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최근에는 네트워크라는 전자적 그물망도 등장했습니다. 프랑스 철학자 펠릭스 가타리는 <세 가지 생태학>(2003, 동문선)이라는 책에서 자연생태, 사회생태, 마음생태를 말합니다.

먼저 자연생태를 생각할 때, 우리는 자연을 내버려두면 저절로 재생된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자연생태의 보존과 복원에는 인간의 계획과 거대 프로그램, 제도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얘기입니다. 또한 사회생태를 생각할 때, 사회구조를 현란하게 분석하면서도 대안적 질서는 왜소하게 말하는 전문가주의로부터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는 작은 공동체와 보이지 않는 공동체, 민중적 꼬뮌 등에서 대안을 찾아야 합니다.

또한 마음생태를 말할 때, 완고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변화시키고, 뜻과 지혜와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해서 응답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가운데 특이한 생각을 가진 어느 누군가를 만드는 작업은 늘 중요합니다. 자연생태, 사회생태, 마음생태는 각각 자연과 인간의 관계의 변화, 사회적 관계의 변화, 주체성 생산이라는 과제를 갖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사람들은 환경변화에 대해서 민감해졌고, 위기의식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어디에서부터 시작할지 상당히 마음 쓰게 됩니다. 생명 위기 시대에 그리스도인의 실천적 과제는 너무도 광범위해서 시작점을 찾지 못하고 원점으로 돌아올 때가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완고했던 마음의 변화입니다. 영성적인 변화라고도 할 수 있지요.

페스코 채식인, 일상의 작은 변화가 더 큰 변화로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점은 생태계처럼 우리의 사회와 공동체도 연결망이라는 점입니다. 특히 네트워크는 생태계와 유사하게 작은 기계부품들의 연결접속과 기능연관에 의해서 작동되는 전자적 그물망입니다. 반복으로 작동하는 기계부품 단위들이 서로 연결되어서 전체 네트워크가 작동되기 때문에 작은 기계부품에서 생기는 변화에도 민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색다른 반복을 창안하는 작은 변화를 만들어내는 우리의 실천이 전체 네트워크에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발생시킵니다.

우리의 마음의 변화가 초래한 일상에서의 작은 실천이 우리와 연결된 이웃, 가족, 친구, 직장동료 등에게 영향을 주어 정말로 돌이킬 수 없는 변화의 초석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제 경우에도 채식의 한 유형인 우유, 달걀, 생선은 먹지만 육고기는 먹지 않는 페스코 채식인(Pesco Vegetarian)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의 엄청난 연쇄반응과 주위에서의 이야기들, 아내와 저 사이에서의 수많은 대화들이 만들어졌던 경험이 있습니다.

생태계에서도 작은 도토리 하나가 만든 떡갈나무 혁명이 있습니다. 작은 도토리 한 알은 곧 사라지거나 썩어버립니다. 그런데 다람쥐 한 마리가 도토리를 모아서 창고를 여러 군데 만들어 둡니다. 도토리는 여러 개가 모여야 서로에게 영양분이 되어 나무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다람쥐는 워낙 여러 군데 도토리 창고를 만들기에 그 중 깜빡 잊어버리는 것도 간혹 생깁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떡갈나무가 싹 트기 시작합니다.

도토리 한 알이 만든 떡갈나무 혁명

떡갈나무 혁명은 생명이 서로 보이지 않게 연결되어서 새롭게 탄생하는 사례를 잘 보여줍니다. 떡갈나무 혁명은 생명 탄생 자체가 혁명의 순간이라는 점을 알려줍니다. 하나의 생명은 유일무이하고 특이하며 수많은 자연, 동물, 식물, 영성, 사물, 미생물 등의 예술작품입니다. 우리는 생명을 너무나 뻔하게 보는 문명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피조물인 생명은 유일무이합니다. 예를 들어 제가 공부하는 연구실 주변에 있는 길냥이들에게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그러자 떡갈나무 혁명이 마음속에서 일어나 그 각각의 특이함과 유일무이함을 느끼고 감응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일은 자신을 바꾸는 일로부터 시작되나 봅니다. 자신을 바꾸면 자신과 연결되어 있는 주변 사람들에 대한 고정관념이 바뀌고, 완고한 마음에 빈틈이 생기고, 생각을 달리하게 되는 과정이 생깁니다. 적어도 태도를 결정해야 한다는 점에서 주변 사람들과 배치에 깊은 변화를 줍니다. 그래서 혹자는 앞으로 생태적 전환은 자기로부터의 혁명, 분자 혁명, 떡갈나무 혁명에서 비롯될 것이라고도 말합니다. 즉, 자신의 삶을 변화시킴으로써 혁명가도 혁명운동도 없는 시대에 도처에서 이루어지는 떡갈나무 혁명처럼 자기로부터의 혁명을 하자는 얘기입니다.

저는 도처에서 도토리 한 알이 만든 떡갈나무 혁명을 곳곳에서 발견합니다. 도시텃밭에서 야채를 심는 사람들,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 미생물 세정제를 사용하는 사람들, 재생 화장지를 사용하는 사람들, 저녁 때 동물과 산책하며 뛰어 노는 사람들, 길냥이들에게 밥을 주는 캣맘들, 전원스위치에 멀티탭을 달아서 끄는 사람들, 텔레비전보다는 대안미디어를 선호하는 사람들, 공유경제에 희망을 거는 사람들, ‘아나바다’를 신조로 사물에 영혼을 불어넣는 사람들, 육식 문명, 자동차 문명, 아파트 문명, 마트 문명 등의 통속적인 문명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사람들, 이 모든 사람들이 떡갈나무 혁명가이자 영성적인 사람들입니다. 물론 우주, 자연, 생명, 사물, 식물 등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떡갈나무 혁명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떡갈나무 혁명의 시작과 끝 그것에는 우리 자신을 변화시킬 영성과 마음이 있습니다.


신승철 바오로
동물보호 무크지 <숨>에서 동물권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고, 현재까지 식품의약품안전처 실험동물윤리위원으로 생명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고 있다. 2012년에 ‘성미산 마을 기초연구조사’ 사업에 참여한 경험을 토대로 협동조합과 공동체, 도시재생, 생태철학 등에 대해 연구 중이다. 현재 동국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면서, 문래동 예술촌에 ‘철학공방 별난’이라는 연구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욕망자본론>, <갈라파고스로 간 철학자>, <눈물 닦고 스피노자>, <식탁 위의 철학>, <루저의 심리학>, <녹색은 적색의 미래다>, <마트가 우리에게서 빼앗은 것들>, <철학, 생태에 눈뜨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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