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로메로] 중립이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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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로메로] 중립이란 불가능하다
  • 마리 데니스 등
  • 승인 2018.03.19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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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로메로-11

로메로는 살바도르 사회의 지배적인 경제정치 구조들에 침투해 있는 사악한 죄의 힘을 예리하게 파악하였다. 이러한 구조들은, 바오로 사도가 그의 서간에서 인용한 것처럼, “권세와 권력”에 절대적인 복종을 요구하였다. 조직화된 가난한 사람들을 겨냥한 무자비한 폭력은 부유한 지주들 편을 드는 특권층의 구조들을 보호하려는 욕구의 직접적인 결과였다.

로메로는 한편으로 그러한 구조적 불평등의 필요불가결한 측면을 받아들이면서 한편으론 물리적 폭력을 고발할 수 있었다. 마치도 이 두 가지 형태의 폭력이 연결되지 않는 것처럼 발언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진정성 때문에 폭력의 구조적 뿌리까지 고발하였다. 그는 기존 상황에 복종하면서 하느님께 복종할 수 없었다. 그는 하느님을 절대적인 존재로 받아들였기에, 사람들에 해를 가하는 모든 법, 정부, 군대에 복종하지 않겠다고 선포한 것이다. 로메로는 “신성모독”으로 간주되었다. 국가가 당연하게 요구하는 권리, “조국”에 대한 충성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와 군대의 힘 앞에 서면서 로메로만큼 그렇게 분명하고 단호한 주교들은 거의 없었다:

"우리는 이곳에 중립이란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너무나 명료하게 봅니다. … 그리고 이곳에서는 신앙에 관하여 가장 근본적인 것이 역사 속에서 표현됩니다. 그것은 우리가 생명의 하느님을 믿을 것인가, 아니면 죽음의 우상들을 섬길 것인가의 선택으로 나타납니다."(로메로, <목소리 없는 이들의 목소리>에서)

아마도 권력가들의 관점에서 보면 로메로의 지독한 “죄”는 가난한 사람들이 그들 자신을 조직하고 옹호하는 권리를 가졌다고 믿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도 백성들의 조직하는 권리를 손상할 수 없습니다. … 그것은 인간의 권리입니다. 이런 조직 단체들이 요구하는 것은 정당하므로, 들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정의를 요구하고 있는 시위를 탄압하지 않고 공동선을 위하여 우리 백성들 다수의 외침에 관심을 갖기 위하여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그러한 이유로 그리스도께서도 올바른 것을 지지하며 그것을 옹호합니다. … 조직하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 그리스도인에게 죄란 하느님의 관점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로메로, 1979년 9월 16일 강론에서)

복음화는 사목적 응답과 예언자적 선포, 개인적인 연민과 구조적 변혁 모두를 포함해야 한다. 로메로가 정의한 죄는 모호함, 합리화, 기존 상황의 타당성, 질서의 필요, 국가안전이나 이윤의 최대화의 필요 등을 칼날처럼 꿰뚫고 들어간다. 개인적인 죄나 구조적인 죄 모두는 억압이 간접적이거나 즉각적이든 상관없이, 방어할 수 없는 사람들의 생명을 삼켜버린다.

"제가 다시 한번 우리나라에 죄악의 구조들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단순히 일상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죄악의 구조들은 사악합니다. 왜냐하면 그 사악한 구조들은 죄의 열매를 생산해 내기 때문입니다: 죄의 열매는 살바도르 사람들의 죽음입니다 – 즉각적인 탄압이나 장기간의 탄압에 의해 발생되는 갑작스러운 죽음들은 구조적인 억압에서 오는 것으로, 엄연한 현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재물의 우상화,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절대 권력의 우상화, 사유재산의 우상화, 개인의 안전마저도 제도화해야 한다는 미명 아래 국가안전체제 속에서 정치권력의 우상화 등등을 고발합니다."(로메로, <목소리 없는 이들의 목소리>에서)

[원출처] <오스카 로메로-삶과 글에 관한 성찰(1917~1980)>, 마리 데니스, 레니 골든, 스코트 라이트
[번역문 출처] <참사람되어> 2017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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