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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슬픔의 대륙에서 찾아온 기쁜소식, 교황 프란치스코행동하는 교황, 파파 프란치스코-1

교황 프란치스코는 2013년 3월 13일 슬픔의 대륙에서 봄소식처럼 찾아온 ‘기쁜 소식’이었다. 라틴아메리카는 유럽의 식민지였으며, 군사독재에 신음하던 슬픔의 대륙이었다. 이제 유럽 교황의 시대가 저물고, 아르헨티나에서 새로운 빛이 시작되고 있다.

교황이 주목한 것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대한 기억이다. 그중에서도 <사목헌장>의 “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뇌, 현대인들 특히 가난하고 고통 받는 모든 사람의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 제자들의 기쁨과 희망이며 슬픔과 고뇌이다. 참으로 인간적인 것은 무엇이든 신자들의 심금을 울리지 않는 것이 없다.”라는 첫 구절만큼 가련한 인생들에게 그야말로 심금을 울리는 문장은 아마 없을 것이다. 가난한 이들의 삶에 각인된 슬픔과 고뇌를 복음이 주는 기쁨과 희망으로 뒤바꿔 보자는 게 교황의 생각이다. 그러자면 교회는 이 노선에 걸맞게 체질을 개선하고, 뿌리부터 생각을 고쳐먹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보여준 미덕은 ‘교황직’마저 개혁할 뜻이 있다고 밝힌 것이다.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 3,30)는 세례자 요한의 말처럼, 교황은 하느님 앞에서 겸손하여 콘클라베 이후 동료 추기경들의 순명서약을 나란히 서서 받았다. 그리고 가장 가난한 형제였던 ‘프란치스코’를 이름으로 새겼다. 그리고서 교황은 아시시 프란치스코처럼 “자신의 안위를 떠나 용기를 갖고 복음의 빛이 필요한 모든 ‘변방’으로 가라는 부르심”을 따르자고 사람들을 불러 세우고 있다.

 

<행동하는 교황, 파파 프란치스코, 한상봉, 다섯수레, 2014

예수 자신이 보잘 것 없는 유다의 변방 갈릴래아의 목수였듯이, 교황은 유럽의 식민지였던 땅에서 이민자의 아들로 살았다. 요한 23세 교황이 그러했던 것처럼, 성령의 바람은 대서양을 건너 땅끝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로마를 불러 들였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에게 다미아노 성당을 부탁했던 것처럼, 무너지는 가톨릭교회를 다시 일으켜 세울 일꾼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일은 나자렛의 가련한 처녀 마리아가 메시아를 낳았듯이, ‘변방’ 아르헨티나에서 이미 시작된 일을 로마에서 마무리하려는 것이다. 로마를 ‘영원한 도시’라고 하지만, 그 마저도 ‘영원한 시골’에서 시작된 것이다.

나자렛 예수 없이 로마 가톨릭은 없다. 이제 가난한 노동자 예수를 기억하고 우리시대에 생생하게 다시 불러내는 일만 남아 있다. 그러니, 교황이 누누이 거듭 말하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교회의 신원을 되찾기 위한 필수적 요청이다.

이런 점에서 ‘교황 + 프란치스코’라는 다소 어색하지만 가장 다행스러운 조합에 거는 기대가 크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일본천주교회의 의도처럼 ‘천황’(天皇)에 버금가는 ‘교황’(敎皇)이라기보다, ‘교종’(敎宗)이라 불러 마땅하다. ‘교종’이라는 칭호마저 부담스러울 프란치스코 교황에게는 그저 ‘파파’(Papa)라고 부르는 게 더 어울릴 지도 모른다.

〈교황청 연감>(Annuario Pontificio)에서는 교황직을 로마의 주교,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 사도들의 계승자, 서방교회의 최고 성직자, 서방의 총대주교, 이탈리아의 수석주교, 로마의 총대주교, 바티칸 시의 군주 등으로 부른다. 그렇지만 ‘파파’는 ‘아버지’라는 뜻으로 비공식적이며 덜 엄숙하고 친밀한 호칭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도적 권고 <복음의 기쁨>에서 “길 떠나는 교회는 문을 활짝 열어 놓은 교회”라고 말하면서, “때때로 우리는 방탕한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당연히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라는 그림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다.

그 아버지는 아들의 지난 행적을 묻지 않는다. 그저 안아 줄 뿐이다, 어머니처럼. 헨리 나웬은 “돌아온 아들 위에 몸을 구부리고 그의 어깨를 손으로 어루만지는 노인의 렘브란트 그림을 지금 다시 바라보면서 ‘아들을 팔에 껴안는’ 아버지를 느끼기 시작 할 뿐만 아니라 아이를 쓰다듬고 자신의 따뜻한 몸의 체온으로 그를 감싸주며 그가 태어난 움으로 끌어안는 어머니를 느낀다.”고 말했다. 그처럼 교회는 흠 많고 상처 입은 인간과 세상을 치유하는 ‘야전병원’이기를 교황은 희망했다.

마찬가지로 교황은 죄에 대한 심판관도 아니고, 은총에 세금을 매기는 세리도 아닌 ‘열린 마음을 가진 어머니’ 같은 아버지, 파파(papa)로 남고자 한다. 강우일 주교는 ‘교황’ 대신 ‘교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그 이유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가난과 단순함을 본받아 이름을 택하신 그 분의 복음적 영혼과 삶을 드러내는데 임금이나 황제를 연상시키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게 느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교황이든 교종이든 파파든, 호칭보다 중요한 것은 그분의 영성이다. 내 삶에 균열을 일으키면서 비집고 들어오는 ‘복음’이다. 피상적인 우리의 삶을 뒤흔들고 거듭거듭 나를 매료시키는 복음이다.

 

사진=한상봉

프란치스코 교황은 “우리의 끝없는 슬픔은 끝없는 사랑으로만 치유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말이 프란치스코 교황을 이해하는 ‘열쇠말’이다. 슬픔을 사랑으로 치유해 기쁨으로 살아가도록 돕는 게 교회이며, 그리스도인의 의무라는 소식이다. 교황은 거듭 새삼 “예수님께서 어떤 사람과 말씀을 나누실 때 그의 눈을 사랑이 가득 찬 깊은 관심의 눈길로 바라보십니다.”라고 말한다. 눈먼 이에게 가까이 가실 때, 사람들이 당신을 먹보요 술꾼이라고 비난할까 두려워하지 않고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실 때, 죄인인 여자가 당신 발에 향유를 바르도록 놓아두실 때, 밤에 찾아온 니고데모를 맞이하실 때, “그분은 늘 열려 있었고, 사랑스럽게 바라보셨다.”는 게 교황의 생각이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인간의 고통을 어루만지기를, 다른 이들의 고통 받는 몸을 어루만져 주기를 바라십니다.”(<복음의 기쁨>, 270항)

이점에서 사실상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웃에게 눈을 감으면 하느님도 볼 수 없습니다.”라고 말한 베네딕토 16세 교황이나 “교회의 길은 인간의 길”이라던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생각과 다름없다. 그분들 모두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이 사랑의 행진을 따라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다만 이분들이 세속화된 유럽의 교회에 대한 염려가 지나친 나머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선언한 ‘개혁’에 대해 분명한 태도를 보이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오히려 프란치스코 교황은 알비노 루치아니 추기경, 33일 동안이지만 겸손하고 개혁적인 교황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요한 바오로 1세 교황을 더 많이 닮은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세상에 열린 신앙을 드러내기 위해 안으로는 교회 자신을 개혁하고, 밖으로는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타자를 위한 존재’가 되려는 열망에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길에서 되풀이해서 “교회 밖으로 떠나라”고 요청한다. 늘 떠나는 교회는 예수의 제자들처럼 행장을 거창하게 차릴 필요가 없다. 세상의 호의에 기대어, 그 사람들의 선한 의지를 믿으며 ‘희망 없이’ ‘망설이지 말고’ 떠나라고 말한다. “등산 한번 가려고 하는데, 장비를 갖추지 못해서...”라고 매번 말하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사실상 등산 갈 생각이 없는 사람이다. “돈이 있어야 이웃을 돕지...”라고 늘 말하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남을 도와줄 생각이 별로 없는 사람이다. 사랑이란 조건도 없고, 여기까지, 라는 한정도 없다. 그래서 사랑은 늘 ‘현재진행형’이다. 사랑에서 ‘과거분사’는 필요 없고, ‘미래진행형’은 의미 없다.

슬픔의 대륙에서 찾아 온 교황은 그 슬픔의 백성을 위로해 주었던 마리아를 ‘복음화의 별’이라 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부유한 자를 빈손으로 내치시는” 하느님을 찬양하는 마리아는 교황에게 “온유한 사랑의 혁명이 지닌 힘을 믿는” 분으로 다가온다. 마리아는 “정의를 추구하는 우리에게 따스한 온기를 가져다주시는 분”이다.

대중신심을 귀하게 여기는 교황은 성모발현에서도 깊은 뜻을 길어낼 줄 안다. 프랑스 루르드의 성모는 14살의 가난한 소작농 소녀에게 나타나셨고, 스페인 파티마의 성모는 세 명의 목동에게 나타났다. 라틴아메리카의 브라질 아파레시다의 흑인 성모는 어부들에게 나타났으며, 멕시코 과달루페의 메스티조 성모는 인디언 원주민에게 나타났다.

그처럼 마리아는 가난한 이들에게 ‘먼저’ 자신을 드러내시는 분이다. 교황은 그 마리아는 다른 이들을 도우시려고 ‘서둘러’ 당신 마을 떠나시는 ‘도움의 성모’라고 말한다. 그러니, 이제 우리에게 남은 몫은 그분과 동반하는 일이다. 그분과 더불어 특별히 가난한 이들의 삶의 현장으로 ‘서둘러’ 가는 일이다. 교황은 그곳에서 만나는 ‘복음의 기쁨’으로 우리를 지금도 초대하고 있다.

[출처] <행동하는 교황, 파파 프란치스코, 한상봉, 다섯수레, 2014

한상봉 이시도로
<가톨릭일꾼> 편집장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 가톨릭일꾼 www.catholicworke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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