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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부인, 여긴 잠자는 곳이 아닙니다.”기도의 핵심으로-9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리고 나서 어린이들을 끌어안으시고 그들에게 손을 얹어 축복해 주셨다. (마르 10,15. 16)

많은 사람들은 모든 것을 엄밀히 조사해야 한다고 여겨서, 일단 그렇게 한 다음, 하느님께 돌아서서 말한다, “자, 주님, 다 됐습니다. 저는 여러 번 이 문제를 살펴보았고, 저는 이렇게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믿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우리는 하느님에게 우리들의 결정을 따라달라고 요구한다. 우리의 지성이 때때로 그분의 지성과 일치한다고 감히 믿는다. 그러나 이런 우리의 행동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우리는 하느님한테 문제를 맡기면, 우리가 십자가에 못 박힐까봐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옳다.

우리 힘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절대로 잊지 말자. 모든 소명의 핵심은 기도다.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알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하여 기도한다. 예수님이 그렇게 말했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요한 15,5). 그렇다면 기도는 무엇인가?

기도는 무엇보다 미사다. 우리는 성찬례의 희생 안에서 하느님을 경배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린다. 그분과 친교를 나누며, 우리는 전 세계와 친교를 나눈다. 하느님과 소통하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하느님을 받아들일 때, 사람과 소통하게 된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 삶의 기반이다.

세례를 받는 순간, 성부, 성자, 그리고 성령이 인간의 영혼 안으로 들어온다. 삼위일체가 우리 안에 거처를 정한다. 우리는 하느님을 만질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완전함에 초대되었고 다른 사람들은 아니다. 트라피스트들은 그렇고 교구사제들은 아니다. 수녀들은 초대되었고, 평신자는 아니다.”

그러나 진실은 모든 세계가 복음을 살아감으로써 완전한 상태에 초대받았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세례성사에 의하여 관상가가 된다. 왜냐하면 모든 각자는 그의 영혼 안에 삼위일체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한상봉

기도는 사랑이다. 묵상은 사랑하는 하느님의 말씀에 빠지는 것이다. 그렇게 단순하다. 우리는 하느님 앞에 앉아서 도대체 무슨 말을 그분께 해야 할지 몰라서 헛기침하며 말을 더듬을 필요가 없다. 그냥 자연스러우면 된다.

어떤 신부는 아침에 성당에 가서 묵상하는 것에 대하여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그저 거기에 있는 것뿐입니다”라고 그는 말한다. “자고 싶으면, 얼른 그렇게 하십시오. 그런다고 나쁜 묵상이 아닙니다. 묵상은 마치도 우리 아버지의 집에 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곳에 가서 여러분 형제의 방에 들어가 기지개를 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형제와 가깝고 그가 자기 방을 썼다고 당신에게 무어라 하겠습니까. 여러분의 형제는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시카고에서 나는 교회에 들어가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하고 싶었다. 때는 빈민가의 더운 여름날이었다. 성당에 갔을 때 나는 의자에 누웠고 그냥 아기처럼 잠들어버렸다. 두 시간쯤 지나, 성당 관리인이 나타나 말했다, “여보세요 부인, 여긴 잠자는 곳이 아닙니다.”

잠이 덜 깬 상태에서, 나는 대답했다, “아니요 당연히 잘 수 있습니다. 내 아버지의 집이니까요”

그렇다고 교회에서 자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기도가 단순하고 자연적이라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하느님은 우리가 사랑하는 존재이고, 따라서 우리는 그분께 응답한다. 우리는 그분의 말씀 하나 하나에 사랑을 느끼고 거기에 매달린다. 우리는 귀로, 정신으로, 마음으로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러면 그 말씀은 우리를 날아오르게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도들 중 한 사람이었다면, 그날 그분이 말했던 것을 깊이 생각하며 밤새 깨어있지 않겠는가? 우리는 말씀 하나 하나를 소중히 여겼을 것이다. 묵상은 우리의 사랑하는 친구가 말씀했던 모든 것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형제라고 믿는다면, 그때에 우리는 조금씩 조금씩 그분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의 마음이 더 순수해지고 더 아이 같아지면, 그분의 얼굴이 더 선명해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는, “주님, 저에게 어린 아이의 마음을 주십시오, 그리고 어른으로서 그 마음을 살아갈 큰 용기를 주십시오,”라는 기도가 될 것이다. 우리의 기도는 지속적이 될 것이고, 전혀 무겁거나 어렵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사랑은 언제나 우리 눈앞에 있고, 우리의 기도는 우리의 내면에 있을 것이다. 하느님은 우리의 아버지시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형제시다.

[번역문 출처] <참사람되어> 2018년 1월호
[원출처] <기도의 핵심으로>, 캐더린 도허티

 

[ 가톨릭일꾼 www.catholicworke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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