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 낯선 분] 예루샬라임, 평화의 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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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 낯선 분] 예루샬라임, 평화의 터전
  • 송창현 신부
  • 승인 2018.03.06 12: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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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래아와 예루살렘- 4
사진출처=blicktx.blogspot.com

예루살렘은 기원전 20-19세기의 이집트 문헌에 “루샬리뭄”(Rushalimum)으로 언급된다. 그리고 기원전 14세기의 엘-아마르나(el-Amarna) 편지들에서는 “우루살림”(Urusalim)으로 소개되고, 기원전 7세기의 산헤립 명각(Sennacherib inscription)에서는 “우루슬림무”(Uruslimmu)로 불린다. 예루살렘의 히브리어 이름은 “평화의 도시”, “평화의 터전”이라는 의미를 가진 예루샬라임(Yerushalayim)이다.

구약 성경에서 예루살렘이 처음 언급된 것은 여호 10,1인데, 그 외에 “아리엘”(이사 29,1), “오홀리바”(에제 23,4), “주님의 도성”(이사 60,14), “도성”(예레32,24; 에제 7,23), ”야훼 삼마“(에제 48,35), “살렘”(시편 76,3), “모리야”(창세 22,2), “여부스”(여호 18,28), “시온”(2열왕 19,21), “다윗 성”(2사무 5,7), “거룩한 도성”(느헤 11,1; 마태 4,5), “거룩한 산”(1에녹 26,10)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린다. <희년서>에 따르면, 예루살렘은 시나이 산, 에덴동산과 함께 가장 거룩한 장소 세 곳 중의 하나이다. 이 문헌은 시온 산을 “세상의 배꼽”(희년서 8,19)이라고 부른다. 제2차 유다 봉기를 진압한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예루살렘을 아엘리아 카피톨리나(Aelia Capitolina)로 불렀다.

해발 640-770m의 석회암 고원에 자리 잡은 예루살렘은 유다 산악 지대에 위치한다. 산위에 위치한 곳이기 때문에 성경에서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간다”라고 표현한다. 지중해의 텔 아비브(Tel Aviv)로부터 약 50km 떨어진 예루살렘의 서쪽에는 유다 지역의 산들이 있고 동쪽으로는 사해(Dead Sea)로 내려가는 유다 광야가 있다. 예루살렘에는 세 개의 계곡이 있는데, 키드론 계곡(Kidron Valley), 티로포에온 계곡(Tyropoeon Valley), 힌놈 계곡(Hinnom Valley)이다.

예루살렘의 산등성이들은 군사적인 장점으로서 이 도시를 보호하여 군사 요충지가 되게 하였다. 이러한 지리적 조건은 무역에는 불리하게 작용하였다. 사실 팔레스티나의 주요 무역 중심지는 산악 지대가 아니라 지중해 해안 평야 지대에 위치하였다.

고고학적 발굴에 따르면 예루살렘에서 구석기 시대의 거주지가 발견되었다. 여호 10장에 따르면 여호수아는 아모리족의 다섯 임금을 처형하였는데, 이들 중에는 예루살렘 임금 아도니 체덱이 있었다.

창세 14,17-20은 크도를라오메르에게서 승리를 거둔 후 아브람이 소돔의 임금과 멜키체덱을 만난 이야기이다. 여기서 멜키체덱은 살렘의 임금이며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사제로 소개된다. 멜키체덱은 아브람에게 빵과 포도주를 가지고 왔고 그를 축복하고, 하늘과 땅의 창조자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을 찬미한다. 그리고 아브람은 멜키체덱에게 십일조를 바쳤다. 사실 고대 근동에서는 임금들이 사제로 활동하였다. 그리고 후대 전승에 따르면 창세기 본문의 살렘은 예루살렘을 가리킨다. 창세 22장에서 아브라함은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려고 모리야 땅에 있는 어떤 산으로 간다. 2역대 3,1에 따르면 솔로몬이 성전을 세운 곳은 “모리야 산”이다. 아브라함은 하느님이 마련하신 숫양을 번제물로 바치고 그곳의 이름을 “야훼 이레”(창세 22,14)라 하였다.

기원전 1000년경 다윗은 여부스족이 차지하고 있던 시온 산성, 곧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다윗 성이라 하였다(2사무 5,6-10). 예루살렘은 유다 지파의 영역 안에 있어서 다윗 왕조의 정치적 안정을 이루기에 적합한 장소였다. 다윗은 수도를 헤브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김으로써 왕조의 권위를 높일 수 있었다. 그리고 다윗은 판관 시대 말에 필리스티아인들에 빼앗겼다 되돌려 받은 계약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겼다. 이것은 예루살렘이 정치적 중심지 일뿐만 아니라 종교적 중심지라는 것을 보여준다.

다윗 임금이 수도로 삼은 “다윗 성”(2사무 5,7)은 예루살렘의 동쪽 언덕에 위치한 작은 거주지였다. 이곳은 예루살렘에 있는 유일한 샘과 가깝고 양쪽으로 깊은 두 계곡이 있었다. 다윗은 계약 궤를 이 성 안으로 옮겼고, 그의 아들 솔로몬(기원전 965-928년)은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였다. 그는 도시를 확장해야 했는데, 계곡들 때문에 능선을 따라 북쪽 방향으로 이동하였다. 1열왕 9,15에 따르면, 솔로몬 임금은 주님의 집과 자기 궁전과 밀로 궁을 짓고, 예루살렘 성벽을 세웠다.

송창현(미카엘) 신부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성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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