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無녀, 돈과 빽과 운이 없는...가족 해체를 바라보며
상태바
3無녀, 돈과 빽과 운이 없는...가족 해체를 바라보며
  • 진수미
  • 승인 2018.02.28 11: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황금빛 내 인생>(KBS2, 2017.09.02~)

[진수미 문화칼럼]

막장드라마란 “보통의 삶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자극적인 상황이나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이어지는 드라마”를 의미한다. 때로 “막장드라마의 자극적 요소를 극적 요소로 훌륭하게 업그레이드한 명품 드라마”가 제작되기도 하므로, 막장이라고 무작정 비난할 것은 아닌 것이 현실이다. 즉, 막장 코드를 활용하면서도 사회의 아픈 상황을 환기,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사회적 의미를 곱씹게 하는 저력 있는 드라마도 가능하다. 이를 달성하면서 마지막 스퍼트를 앞둔 드라마가 있다. <황금빛 내 인생> 이야기이다.

방송극 측은 “흙수저를 벗어나고 싶은 3無녀에게 가짜 신분상승이라는 인생 치트키가 생기면서 펼쳐지는 황금빛 인생 체험기를 그린 세대불문 공감 가족 드라마”라고 내용을 설명한다. ‘3無녀’는 “돈과 빽과 운이 없는 계약직 사원”으로 출발한 서지안(신혜선 분)을 가리키는 말이다. 3無는 없는 것이 갖춰지면 뭔가를 성취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보다 더 우울한 단어를 우리는 알고 있다. 가능성 자체를 내려놓은 N포 세대 말이다.

지안의 3無 상황은 3포 세대라는 표현을 환기한다. 연애, 결혼, 출산을 거부한 세대 말이다. 거부는 힘없는 자들이 행사할 수 있는, 최소의 권력이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새로운 가족 구성을 불가능하게 하는 선택을 통해 저항을 가시화하고 있다. 이를 대표하는 것이 비혼(非婚) 커플이라 명명된 서지태(이태성 분)와 이수아(박주희 분)의 로맨스이다. <황금빛 내 인생>은 이러한 2030세대의 상처를 드러내는 한편, 부모 세대의 방황과 절망을 그림으로써 5060세대의 공감까지 불러일으킨다.

 

경제공동체 가족, 가부장의 운명

작가 소현경은 <내 딸 서영이>에서 부성의 절절함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되돌아보는 작품으로 주목받은 바 있다. <황금빛 내 인생>의 서태수(천호진 분)도 이러한 주제를 전달하기 위한 캐릭터이다.

그는 사업 실패 이후 축적된 가족의 무관심과 냉대, 아내 양미정(김혜옥 분)의 무리한 욕심과 지안의 탈(脫) 가족 선언에 충격을 받고, 상상암이라는 병명을 얻는다. 그러다 가족의 노력으로 상황이 극복되는가 했을 때 상상암이 오진이었음이 알려진다. 그는 암 보험금을 딸의 해외연수 자금으로 쓰는, ‘아낌없이 주는’ 가부장의 모습을 보여준다. 집안 경제에 도움이 됨으로써 자신의 의미를 확인하는 남성 판타지가 재현된 것이다.

구세군 냄비 곁에서, 방황하던 태수가 암에 걸린 것 같다는 자각에 두 눈을 빛내는 장면은 죽음을 유일한 탈출구로 생각하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이는 가족의 빚을 갚기 위해 자살을 선택하는, <세일즈맨의 죽음>의 세일즈맨 아버지를 연상시킨다. 태수도 한때 잘 나가는 ‘상사맨’이었다. 이들은 자본주의 사회의 전위부대다. “팔아야 산다!”가 모토인 이 직종은 자본주의하(下) 가족경제의 유일한 주체로 내몰린 고단한 남성의 삶을 대표한다.

남편은 더 이상 보호자가 아니다

기시감이 드는 설정보다 <황금빛 내 인생>에서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가부장 중심의 경제공동체(가족)의 경제적 중심의 해체와 젊은 세대의 새로운 가치관이다. 양미정은 남편 태수의 상상암 소식에 삶의 변화를 꾀한다. 이전에 그녀는 물질적 욕심으로 상징되는 존재였다. 이유가 어쨌든 친딸을 재벌가에 보내, 경제적으로 윤택하게 살게 하려고 거짓말을 서슴지 않는 어머니, 이를 반대하는 남편에게 당신을 믿을 수 없다고 막말을 하는 아내였다. 그러니 태수가 “당신이 나를 믿고 살았나? 돈을 믿고 살았지”라고 일갈해도 납득이 되는 캐릭터였다.

그랬던 그녀가 변했다. 태수가 죽음을 갈망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당신을 반려자로 생각 않고 보호자로 생각하고 살았던” 시간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한편, 그의 경제적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인근 마트의 계산원으로 일하기 시작한 것이다. 생각해보면 한국의 대중서사는 오래 전부터 가부장의 수입에 의해 유지되는 가족 공동체와 이를 지키려는 여성의 노력을 재현해 왔다.

김기영 감독은 영화 <하녀>(1960)에서, 하녀가 아들을 죽인 데 분노한 남편이 하녀를 죽이고 경찰서에 가겠다고 외치자, 동식 아내가 죽은 아이가 불쌍해도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며, 당신 없이 우리 식구가 어떻게 사느냐고 울부짖는, 냉철한 재현을 보여주었다. 가족 해체의 상황에 몰리면, 아내들은 노동을 선택한다. 경제적 힘을 키워서 부재하는 가부장을 대신하고자 하는 것이다. 역으로, 이는 가부장의 권위가 경제력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삶은 개인적으로, 해결은 집단적으로”

경제적 자립은 서로에게 의존하지 않기 위한 개인의 기초적인 노력이다. <이상한 정상 가족>(동아시아, 2017)에서 김희경은 가족 문제의 해법으로, 스웨덴이 선구적으로 행했던, 개인적 삶의 독립성을 보장하되 개인 삶의 질을 위협하는 사태의 해결은 집단적으로 처리해 나가는 방식을 제안한다. 여기서 말하는 집단은 국가와 사회를 가리킨다. 이들 집단에 의해 사회적 안전망이 구축되었다면, 태수가 사업에 실패했을 때 급격한 계층 하락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또 할머니의 암 치료를 위해서 태수 가족이 채무를 지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황금빛 내 인생>에서 벌어지는 가족 간 문제에도 개인 존중, 집단 해결의 해법은 적용될 수 있다. 태수가 상상암 증상과 우울증을 보였을 때 가족은 태수의 선택을 존중했고 해결을 집단적으로 모색했다. 지태와 수아가 낙태 문제로 대립했을 때 지태는 수아의 선택권을 인정, 존중함으로써 함께 문제를 해결했다. 그러므로 답은 이렇다. 개인적 선택을 존중하되, 해결은 공동으로 모색하는 것이다.

젊은 세대의 독립 공간, 셰어하우스

<황금빛 내 인생>은 젊은 세대의 새로운 메시지를 전달한다. 자기 적성을 파악하고 대학 입학을 포기한 지호(신현수 분)는 자신의 길을 개척하면서 가족 문제에 크게 휘둘리지 않는 젊은 세대의 당당함을 보여준다. 해성가의 딸 지수(서은수 분)도 지안과 다르게 자신의 생각을 당당하게 말함으로써 재벌가 삶에 대한 대중의 비판을 ‘사이다’처럼 해주는 면모로 매력을 발산했다.

<황금빛 내 인생>은 지난 4개월 간 TV프로그램 선호도 1위(9.8%)에 연속 오르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셰어하우스의 젊은이들이 보여주는 세상에 주눅 들지 않는 처신이 주는 메시지도 그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3무의 상황에 절망해서 죽음까지 선택했던 지안의 변모를 가능케 했다.

드라마가 완결되지 않은 상태이므로 평가를 하기에 시기상조이지만, 경제공동체로서 가족의 민낯을 드러내고 해법을 모색하는 드라마라는 점에서 <황금빛 내 인생>은 막장을 넘어서는 힘을 보여주었다. 대장정의 마지막 페이지를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진수미 카타리나
글쟁이. 더불어 잘사는 세상 연구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