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완전연소와 불완전연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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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완전연소와 불완전연소
  • 심명희
  • 승인 2018.02.19 00: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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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명희 칼럼]

어릴 적 어른들이 집안에 안 계실 때 연탄불 관리는 내 몫이었다. 처음에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연탄불을 확인하러 부엌을 들락거렸다. 혹시 연탄불이 꺼질까 해서다. 유일한 난방이 연탄이기 때문에 추운 겨울에 냉골에서 지내는 건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어느날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연탄불이 꺼져 있었다. 불구멍 조절을 깜빡 잊은 것이다. 연탄불은 활활 타서 이미 재가 되었다. 하는 수 없이 옆집 아주머니에게 도움을 청하러 달려갔다. 그랬더니 아주머니는 생전 처음 보는 물건을 가지고 와서 간단하게 연탄불을 활활 타오르도록 만들었다. 하도 신기해서 이게 뭐냐고 묻자 “번개탄!” 불쏘시개다.

약국에서 환자들에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비타민’이다. 개인의 건강 상태에 따라서 먹고 안 먹고를 선택하지만 우리 몸을 연탄에 비유할 때 비타민의 존재란 먹은 음식을 완전하게 태워서 몸에 필요한 영양분과 에너지를 만들어주는 불쏘시개 같은 것이다.

그러나 연탄이 잘못 타면 치명적인 독성물질인 일산화탄소, 연탄가스 중독 같은 ‘불완전 연소’가 일어나듯이 우리 몸에 비타민이 부족하면 독성물질이나 피로물질 때문에 몸의 균형이 깨진다. ‘완전연소’가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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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며칠동안 독감처럼 지독한 속앓이를 했다. 바이러스가 아니라 사람 때문이었다. 그를 안지 십수 년, 같은 직장에서 오랫동안 함께 지내면서 열악한 근무조건에도 불구하고 불평 한마디 내색 없이 묵묵하게 일하는 그의 성실과 인내에 감동과 존경을 품었다. 비록 약사와 직원의 관계지만 우리는 동료로서 흉허물 없이 지내면서 서로에게 힘을 주는 사이였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그가 드디어 승진을 했다. ‘주임’이라는 직위가 그에게 주어진 것이다. 35년 만에 얻은 감투였다. 열아홉 살,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입사하고 받은 첫 승진이라서 모두들 내 일처럼 좋아했다. 그런데 그때부터 그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주임으로서 아랫사람을 향한 독선과 강압에 견디지 못하고 떠나는 직원이 하나 둘 생겼다. 그는 30년 동안 당한 부당한 대우에 한풀이를 하듯이 아랫사람에게 자신이 겪은 상황을 강요하고 합리화 했다.

자연히 그와 아랫사람들 간에는 틈이 벌어졌고 파벌이 생겼고 그는 자기 사람과 아닌 사람을 철저히 구별하고 차별했다. 부서장의 충고와 경고에도 굽히지 않고 ‘주임’이라는 권력으로 직원을 통제하고 감시했다. 30년 근속이라는 자신의 이력과 텃세를 훈장과 방패로 삼아서 자신을 향한 비판과 불만들을 부당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그와 결정적으로 갈라지게 된 건 신입직원인 혜진이 때문이었다. 그녀는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3년이나 취업을 기다리다가 고졸이 채용조건임에도 불구하고 하는 수 없이 이곳에 지원을 했다. 야무지게 논리를 앞세우는 그녀는 어설픈 명령 앞에서 딱 부러지게 이의를 제기했다. ‘논리 혜진’이라는 별명까지 얻으면서 합리적이고 적극적인 일처리로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직속 상사인 주임에게는 건방지고 예의 없는 신입으로 받아 들여졌다.

고분고분 하지 않으니 주임의 눈 밖에 날 수 밖에 없었고, 직원 관리라는 명목으로 자신 외에는 누구와도 가깝게 지내지 말라는 엄명까지 받고나니 그녀는 혼란스러웠다. 일주일에 한 번 내가 근무하는 날이면 그녀는 내게 하소연을 했다. 그러나 나도 어쩔 수 없었다. 주임이 되고 나서 그는 나를 멀리 했기 때문에 그에게 감히 이 문제를 먼저 꺼낼 수 없었다. 직원들도 그녀의 혹독한 시집살이를 짐작했지만 감히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용기는 없었다. 이 조직의 터줏대감이라는 긍지와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그의 자존심과 권위를 무너뜨리는 일이고 인간적인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드디어 누군가는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야 할 날이 왔다. 혜진이가 사직서를 냈다. 그녀는 사직의 이유를 부서장에게 설명했고, 나는 사직은 부당하다고 그녀를 변호했다. 자연히 내 비판의 화살은 주임을 향했고 부서장의 강력한 지시로 그는 마지못해 그녀에게 사과를 했다.

혜진의 사직서를 변곡점으로 그와 나의 우정은 끝났다. 그가 주임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누구보다 기뻐했었다. 이제야 그의 헌신과 희생이 보상을 받는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그 후 3년 동안 그는 낯선 사람처럼 괴물로 변한다고 느꼈다. 이전에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니었다. 무엇이 그를 변하게 했을까?

혜진의 사직서 사건이 생긴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한 알바생이 그를 고소했다. 인격이고 인권이고 다 무시하고 종 부리듯 해서 수치스러워서 그대로 넘길 수 없다고 했다. 정년퇴직을 앞둔 그에게는 최고의 불명예다.

연탄은 완전연소 해야 한다. 타서 완전히 재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좋은 연탄이다. 사람도 삶도 그렇다. 산다고 다 사는 것이 아니다. 완전연소를 해야 한다. 어둡고 지친 삶에서 어느 날 번개탄이나 비타민 같은 선물이 찾아올 때가 있다. 삶을 완전 연소시키라는 뜻일 게다. 연탄처럼 자신을 태워서 세상을 이롭게 하라는 뜻일 게다. 그의 인생에 찾아온 ‘주임’이라는 불쏘시개와 비타민으로 마지막 남은 직장생활을 완전연소 시키길 기대한다.

 

심명희 마리아
약사, 선우경식기념자활터 봉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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